벵골 대기근의 진실 두둥탁하면서 처칠이 해외로부터의 식량원조를 차단하지 않았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과연 진실일까?
이는 부분적으로 진실이며, 대체로 거짓이라고 말해도 된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아니 씨발? 부분적으로 진실은 뭐야? 맞으면 맞는거고 틀리면 틀린거지 부분적으로 맞다는건 뭐야?"라고 할 것이다.
물론 처칠이 해외로, 특히 호주로부터 곡물 수출을 받아 벵골이 지원한 것은 맞다. 이에 대한 증거로 드는 것이 1944년 4월말에 처칠이 루즈벨트에게 쓴 편지로
"작년에 벵갈에서 심각한 기근이 있었고, 최소한 70만명이 죽었습니다. 군수물자 수송을 줄임으로서, 1944년 첫 9달동안 호주로부터 35만톤의 밀을 인도로 보내도록 지시 했습니만, 이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수송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 마당에 추가로 부담을 드리기 죄송 스럽지만, "일본"에 대항하는 우리의 공동작전에 인도의 안정적인 상황이 필수적 임을 감안하여, "호주"에서 인도로 밀을 운송하기 위해 더 많을 배들을 할당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라는 것을 주요 증거로 삼는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시사점이 하나 있다. 벵갈 대기근은 1942년에 시작되어 1943년에 피크를 찍었다. 즉 대기근 2년동안의 수출 금지 여부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처칠의 전쟁내각은 대기근 2년동안 수출을 억제했을까?
The Secretary of State for India, Leo Amery, was on one side of a cycle of requests for food aid and subsequent refusals from the British War Cabinet that continued through 1943 and into 1944"Mansergh & Lumby 1973, Documents 59, 71, 72, 74, 98, 139, 157, 207, 219, as cited in A. Sen 1977, p. 53"
실제로 거부했다.
그만 알아보자.
암, 다 죽고 쌀 한톨 던져주면, 안한거지 암.
논영의 妻七 대단하다 -녹림대학교 마적과 수석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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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는 일부 맞는 말이긴 함. 그런데 과잉 대응한 것도 맞고, 육로로도 분명 충분히 지원 가능했던건 맞음. 애당초 버마가 섬나라도 아니고, 인도 대륙하고 연결되 있었던 면도 있는데, 버마에 한해 청야전술로 해석하는 것이 더 옳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함
인도 내부에서는 쌀농사가 안되나 봅니다?
인도랑 버마가 연결되어있는데 왜 불가능한지 모르겠네요. 거기 무슨 바다로 떨어져 있기라도 합니까? 애당초 버마를 포함해서 영국령 인도였는데
ㅇㅇ 금지함 인도 내부 수출도 금지했고, 버마 자치령에서의 자체적인 수입도 금지했음. 물론 그 이유가 일본이 버마를 점령했을때, 식량을 주면 안된다는 청야전술적 논리로 이해는 안되는 것은 아니긴 함.
내가 알기론 영국령 버마에 뱅골이 포함된 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잘못 알고 있었네, 영국령 인도지방이었음. 그런데 인도 내부에서의 수입이 끊긴건 확실함. 이게 물론 2가지 이유, 하나는 영국 정부에서의 수입 금지 조치도 있었고 둘째는 지역 자치제로 인해 생긴 무역장벽으로 인해, 기근의 위협으로 영국령 인도 내부에서의 식량수출을 거부한 것임. 이게 결국 1944년 이후 인도국민회의가 자치령에서 독립으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있음
물론 웨이블이 43년 10월부터 구호활동을 실행하기도 했음. 그런데 그 이유중 하나는 9월에 인도 국민회의가 크게 압력을 가한 것도 존재함. 또 처칠이 개입하기 시작한 1944년 이전인 1943년 12월에는 이미 뱅갈 지역에 풍년이 남. 문제는 너무 많이 굶어 죽어버려서, 이걸 수확할 사람이 없었다는게 문제임. 물론 처칠이 전적인 책임은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42년부터 지속적인 뱅갈의 식량요청을 의도적으로 거부한 점과 식량 생산수단을 말살해버렸다는 점은 분명 처칠의 책임이 크고, 비난받아 마땅한 면이라고 생각함.
말살했다는게, 어선 태운거 말한거임. 흉년이면, 물고기라도 잡아서 밥벌이 할 수 있었는데 히스테리적으로 영국군이 배를 모두 태워버렸거든. 그리고 현지관료들이 영국 내각에 요청을 자주 했거든 인도 내부에서 수입해달라고. 물론 현지 각료들의 부정과 부패로 기근의 요소로 작용한 것도 맞고 태풍과 역병때문에 피해가 더 심각해진 것도 맞음. 그런데 뱅갈 대기근이 가장 심했던 뱅갈 동쪽부근에서 일본 침략이 예상되었고 벵갈 3개주에 대해서 식량을 전부 태워버리는 미친짓을 해버렸건든. 이건 뱅골 주지사인 존 허버트가 한 거기 때문에 처칠을 비난하기에는 약한 면이 있음. 문제는 그 이후인데, 이 똥을 처리하기 위해서,인도 국민회의 및 존 허버트, 영국군 장성등이 식량 수입을 위해 영국 전쟁내각에 요청하였으나, 대부분 거부되
식량수입을 상당한 삭감해야만 했음. 또한 식민지 자체적인 식량 수입이나 군대를 통한 식량 수입 또한 거부당함.이는 1942년 대기근 시작부터 1943년 8월 대기근 후반기까지 지속됨. 또 민간보다는 군대위주로 배급되어야만 했기에, 대부분의 민간인이 굶어죽기 쉬웠음. 적어도 처칠은 이에 대한 책임은 있음.
나도 똑같은 말 반복하는 것 같긴한데, 그러면 인도 아대륙에 식량수입이나 식민지 자체적인 식량수입은 허가하는게 맞는 판단이라고 생각됨. 영국 함선을 빌리는 건 내가 생각해도 일본이 해안을 장악하고 있는데 영국 해군을 통한 식량 생산은 분명 무리가 있었음. 내가 지적하는 거는 영국이 안도와줘서 나쁘다가 아님. 식민지 자체적으로 해결할려는 노력조차 영국 전쟁내각이 방해했기 때문에 일이 커졌다고 지적하는 거임.
인도 내부에서의 식량 수입. 인도는 주별로 자치 정부 따로 있는 걸로 암. 지금 말하는 건 인도 각 주끼리 식량 거래또한 금지당했다는 말임. 너가 예로 들었던 웨이블도 1943년에 식량을 가져와서 뿌렸는데 이는 다른 곳이 아니라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가져온 것임. 그 이전에는 뱅갈 주에서의 식량 수입이 전쟁내각에 거부당하거나 많이 축소되어서 들어갔어야 했음.
Ingredients of Famine Analysis: Availability and Entitlements Amartya Sen
ㅇㅇ 재밌는 토론이었음 공부가 많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