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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령 우리가 프랑스 대혁명 초기의 “우리는 인민의 의지에 의해 여기에 있다”는 슬로건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인민'이란 그 자체로 진보적인 명사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멜랑숑'이 인민에게 활동 무대를!”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때, 그것은오늘날 단지 읽어내기 힘든 수사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인민(민족,Volk)'이라는 말을 나치가 이용했을 때 그런 경향을 보였다고 해도, 우리는 '인민'이 파시스트적인 용어도 아니라는 점을 역시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도처에서 마린 르펜의 '포퓰리즘'을 비난할 때, 그것은 불명료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불과했다. 진실을 말하면 '인민'은 정치적 용어 목록에 실린 다른 많은 말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중립적인용어이다. 모든 것은 맥락의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더 자세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2. '인민의populaire'라는 형용사는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더 적극적이다. 이 형용사가 명사를 정치화하고, 억압과의 단절과 새로운 집단적 삶의 서광을 결합하는 아우라를 명사에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민 위원회', 대중 운동', '인민재판', '인민 전선', '인민 권력' 그리고 심지어는 국가적인 수준에서, '인

민 해방군은 물론 '인민 민주주의' 등과 같은 표현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된다. 확실히 어떤 가수 또는 어떤 정치인이 대중적populaire'이라는 것[인기 있다는 것은 어떤 가치도 없는 통계상의 지표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떤 운동 또는 봉기가 대중적이라는 것은 어쨌든그런 에피소드를 해방이 문제가 되는 역사의 영역에 속하게 한다.

3. 반대로, 형용사가 따라붙는, 특히 정체성이나 민족을 표시하는

형용사가 따라붙는 '인민'이라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4. '베트남 인민의 영웅적인 해방 전쟁'이라는 말이 정당하고 정치

적으로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흔

히 '해방'은 식민지적 탄압의 맥락에서, 더 나아가 용납할 수 없는 외세

의 침략이라는 맥락에서, 그 말을 특수하게 만드는 형용사가 따라붙는

'인민'이라는 말에 부인할 수 없는 해방의 외양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종' 이나 '야만'에 속해 있지 않으면,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적인

진영에서는 '미개인pcuplade', '민족 (종족Jethnics', '부족rbus' 등에 대해 말하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인민'이라는 말은 오로지 정복 자체를 통해 찬양받는, 힘 있는 정복자들에게만 어울리는 것이다.말하자면 '프랑스 인민', '영국 인민' 등은 어울리지만, 알제리 또는 베트남 인민은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정부에게'팔레스타인 인민은 더더욱 그러하다. 민족해방전쟁의 시대는 '국민[을 지칭하는 형용사 + 인민' 이라는 표현을 승인했다. 그것은 '인민'이라는 말에 식민지 사람들의 권리 - 종종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 를 부과함

으로써 이루어졌다. 자신만이 진정한 인민이라고 생각하는 식민주의자들은 그들에게 그 말을 적용할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5. 그러나 해방의 폭력적인 과정을 제외하면, 금지된 말을 전유하

는 운동을 제외하면, '국민 형용사 + 인민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별

가치가 없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이 그러하다. 왜

냐하면 바로 지금, 마르크스의 강한 선고가 보여주는 진리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결정적인 그 선고, 강하지만 잊혀진 그

선고는 다음과 같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들이 언제나 유목민이었던 것처럼 - 그들이 자본의 공장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영주

의 경작지와 농민의 가난에서 빠져나와야 했기에 - 프롤레타리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유목민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더더욱 조국이 없다. 농

촌에서 도시까지, 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럽과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카메룬에서 상하이까지 또는 필리핀에

서 브라질까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조국이란 없다. 도대체 그들이 어

떤 '국민 형용사 + 인민'에 속한단 말인가? 오늘날이야말로 노동자는

국제주의의 살아 있는 몸이다. 마르크스가 제1차 공산주의 인터내셔

널을 창설함으로써 계급 생성의 위대한 예언자가 되었던 그 당시보다.

오늘날이 더 그러하다. 국제주의는 공산주의의 주체화된 몸으로 이해

된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무언가가 실존할 수 있는 유일한 영토인

것이다.

6. '프랑스 인민'과 같은 유형의 표현들, '인민'이란 말이 정체성에

의해 봉인된 다른 문구들은 그것이 가진 반동적인 운명에 내맡겨져야

한다. 거기서 실제로 '프랑스 인민'은 단지 '국가가 스스로를 프랑스인이라고 말할 권리를 부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무기력한 전체'를 의미할 뿐이다. 이러한 조합은 정체성의 수립이 사실상 진행 중인 정치적 과정인 경우에만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알제리 전쟁 동안의 '알제리 인민' 또는 옌안의 공산주의 거점에서 표명된 중국 인민'과 같은 표현말이다. 이런 경우 주목해야 할 점은 어떤 형용사 + 인민'이 다른 형용

사 + 인민, 식민지 군대를 뒷배 삼아 반란자들에게 이 '인민'이라는 말

에 대한 모든 권리를 금지할 것을 주장하거나 반동적인 국가의 군대를 가지고 '반국가적인' 불순분자들을 절멸시키고자 하는 형용사 + 인민과 맹렬하게 대립하면서만 그 실재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7. 그러므로 형용사 + 인민'은 국가의 무기력한 범주(오늘날 각양각색의 정치가들이 지껄이는 '프랑스 인민'처럼)이거나, 이른바 민족 해방의 상

황과 결합된 전쟁과 정치적 과정의 범주이다.

8. 특히 의회 민주주의 안에서 '인민'은 실제로 국가의 법과 관련된 범주가 되었다. 미미한 인간 존재의 집단으로 구성된 '인민'은 투표라는 정치적 허상을 통해 당선자에게 정당성이라는 허구를 부여한다. 그것이 '인민 주권’, 더 정확하게는 '프랑스 인민의 주권이다. 만약 루소에게 주권이 여전히 실제적이고 활기찬 인민 회중assembléc

루소는 영국의 의회주의를 사기로 간주했다는 점을 상기하자 ·

의 주권이라면, 무기력하고 원자화된 다수 의견의 주권으로서의 이 [프랑스 인민의] 주권은 오늘날 명백하게 진정한 정치적 주체를 전혀 이루어내지 못한다. 대의제 절차의 법률적 준거물로서의 '인민'은 단지 국가가 지속적으로 존

재할 수 있고, 존재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한다.

9. 사람들은 어떤 존재냐고 물을 것이다. 여기서는 상세한 설명 없이 주장하고자 한다. 오늘의 국가가 갖는 실재는 절대로 투표가 아니라 자본이 필요로 하는 것과 그 필요가 항상적으로 요구하는 반 인민적 조치들(내친 김에 '인민의 populaire'라는 형용사는 확실히 긴장된 가치들을 파생시킨다는 점을 강조하자)에 바쳐지는 최상의 충성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는 점점 더 공공연해지고 있고, 점점 더 뻔뻔스러워지고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민주적인' 정부는 그들이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인민을 필경 자본주의화된 실체로 만든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당신이 보는 것만을 믿는다면, 프랑수아 올랑드 를 보라.

10. 그러나 '인민'은 '인민의'라는 형용사의 진보적 미덕에 잠재된
실재일 수 있지 않을까? '인민 회중'은 국가를 지칭하는 형용사들과 주권의 '민주주의적인 사법적 관리로 덧씌워진 인민과는 다른 의미에서,

'인민'에 대한 일종의 재현이 아닐까?

11. 다시 민족해방전쟁의 예를 들어보자. 이 맥락에서 '베트남 인민'은 실제로 국가를 가짐으로써만 세계의 무대에서 실존할 수 있는국민의 준거이기를 거부당한 인민이 실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민'이 정치적 과정의 명명에 참여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정치적범주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국가의 비실존에 대한 반작용 안에서이다. 문제가 되는 국가가 구축되고, 합법화되고, 국제 사회' 안에 기입되자마자 그 국가가 준거하는 '인민'은 정치적 주체가 되기를 그친다. 보편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국가 형식이 무엇이건 간에 인민은 국가가 형

성해내는 수동적인 전체이다.

12. 그러나 '인민'이 이러한 수동적 군중 안에서 독특성을 나타낼수 없을까? 예를 들어 1936년 6월 또는 1968년 5월의 위대한 점거 파업을 생각한다면, 인민

노동자 인민

이 거기서 프랑스 인민'이라는

표현으로 지칭되는 태생적 무기력에 대한 일종의 내재적 예외로 나타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 이미 스파르타쿠스와 반란을 일으킨 그의 동료들, 투생 루베르튀르'와 그의 흑인, 백인 친구들이 고대 로마 또는 식민지 아이티 섬

에서 진정한 인민을 형성configurer 해냈다고 말해야 한다.

13. 반박도 있겠지만, 국민을 지칭하는 형용사의 영향을 받은 '인 민'이란 말이 갖는 해로운 무기력조차도 국적과 법에 묶인 이 '인민'에 내적인 돌발을 통해 전복될 수 있다. 아랍의 봄'의 가장 강렬한 순간에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에 운집한 사람들이 '우리는 이집트 인민이 다'라고 단언했을 때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의 운동, 그들의 고유한 통일성, 그들의 슬로건은 기존에 있던 그들의 국민적 무기력에서 벗어난 이집트 인민, 국민을 지칭하는 형용사를 능동적으로 요구할 권리를 갖는 이집트 인민을 형성시킨다는 것이다. 왜

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여전히 도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고
거대한 정치 운동의 역동적인 형식 아래에서만 실존하기 때문이며, 이운동에 맞서 이집트를 대표한다고 단언하는 국가는 불법적이고 사라

져야 하기 때문이다.

14. 정치적 결정이 광장에 모인, 그 자리에 모인 새로운 인민의 수중에 있는 이상, 여기서 인민은 기존 국가의 소멸, 그것을 넘어 국가 그자체의 소멸을 함축하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언제나, 광범위한 대중 운동 안에서 확인되는 것은 마르크스가 모든 혁명적 정치의 지상 목표로 삼았던 국가 소멸의 잠재적인 필연성이다.

15. 어쨌든 국가의 정당성이라는 법적인 간접 수단으로 인민의 국가적 무기력에 형태를 부여하는 선거 과정을 통한 다수의 재현[대표]대신에, 또한 절반은 타협으로 이루어지고 절반은 강제로 이루어지는전제적 권위에 대한 복종 대신에, 우리에게는 전례 없는 정치적 방향설정에 따라 '인민'이라는 말을 북돋우는 소수의 [투사적] 분견대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인민'은 민족해방투쟁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새롭게 정치적 과정의 주체를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인민을 대표한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무기력을 파괴하고 정치적인 새로움의 몸을 이루는 것으로서의 인민이라고 선언하는 소수의 형식 아래에서이다.
16. 소수 분견대는 자신의 고유한 일관성을 넘어, 새로운 정치의몸이 되도록 하는 적은 숫자를 넘어, 수많은 경로와 행동을 통해 살아

있는 인민 대중과 항상 결속되는 한에서만 그들의 선언(우리는 인민, 진정한 인민이다)을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난 20세기에'공산당'이라고 명명된 특수하고 전문적인 이 분견대에 대해 말하면서, 마오쩌둥은 공산당의 정당성이 언제나 그가 대중과의 결속'이라고칭했던 것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보기에 그러한 대중과의 결속은 정치의 가능한 실재에 있어 알파와 오메가였다. 내재적 예외, 적극적인 분견대라는 의미로 파악된 인민에 다름 아닌 그 내재적 예외가 진정한 인민의 잠정적인 몸(집체, corps)이라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뒷

받침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장이 광범위한 대중 속에서 유효한 것으로즉시 인정될 때, 국가를 통해 종속적으로 형성된 무기력한 인민이라는

틀에 갇혀 그 정치적 능력과 지속적으로 유리된 사람들 쪽으로 그 활

동을 펼칠 때라는 점을 말해두자.

17. 그러나 또한 결집한 분견대를 아직 활성화하지는 않았지만,

국가가 구성한 '주권적 인민의 배치 안에 실제 포함되지 않음을 뜻하

는 인민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들이 국가적인방식으로, 공식적 인민이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하층민gensdu peuple'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경제 ·국가적 객관성의 경계에 있다. 지난 수세기 동안 국가적 고려의 대상이 되는 엄밀한 의미의 기존 사회는 세습적 귀족과 졸부들로 구성된

것이었기에, 실존하지 않는' 대중은 가난한 농민 대중이었다. 오늘날,스스로에게 '선진 사회 또는 '민주주의'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사회에

서 실존하지 않는 대중의 핵심은 최근에 나타난 프롤레타리아들 '이민

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그들을 중심으로 하여, 비정규직 노

동자들, 알바생들, 낙오한 지식인들, 대도시 변두리에 유배되고 격리된

모든 청년들이 모호한 전체를 구성한다. 이러한 전체를 인민이라 말하

는 것은 정당하다. 국가의 관점에서 공식적인 인민이 누리는 존경의

권리를 그들이 갖지 못하는 한에서 말이다.

18. 우리 사회에서 공식적인 인민은 '중간 계급'이라는 아주 이상

한 이름을 부여받는다는 점에 주목하자. 마치 중간인 것이 경탄할 만

한 것일 수 있다는 듯이……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명백한

귀족주의에 대항하여 중용 안에 있는 것의 탁월함을 설정해놓았다. 다

수 중간 계급의 창조야말로 민주주의적 유형의 체제에 있어 불가피한

버팀목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오늘날, 공식

적 선전을 담당하는 신문(다시 말해 거의 모든 신문)이 새로운 상품을 소

비하고자 하고,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중국의 중간 계급

이 5억 명에 달한다고(아주 열심히도 셌다) 말하며 즐거워할 때, 그들은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비슷해진다. 신문의 결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과 같다. 중국에

일반적인moyenne

민주주의가 임박했다. 민주주의에서 '인민'이란 중간 계급 사람들로 이루어진 만족스러운 전체이고, 그 중간 계급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중은 자본주의적 과두 권력의 민주주의적 합법성의 인정을 위해 존재한다.

19. 중간 계급은 자본주의적 과두정의 인민이다.

20. 이런 관점에서, 합법화가 거부되고, 신분증 발급이 거부되는말리인, 중국인, 모로코인, 콩고인 또는 타밀인 등은 그 자체로 인민의표징인데, 그것은 단지 과두정을 둘러싸고 합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짜 인민에게서 '인민'이라는 말을 떼어놓는 것인 한에서만 그러하다. 그것은 게다가 신분증 문제를 둘러싼, 그리고 더 일반적으로는 최근에 등장한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조직의 과정이 오늘날 모든 진보적 정치에서 중심적인 이유이다. 그정치는 공식적인 인민의 바깥에서 구성된 새로운 인민을 형성하는데,그것은 정치적 용어로서의 인민을 공식적인 인민에서 떼어놓기 위한것이다.

21. 결국 '인민'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부정적이다. 가장 확실한 첫째 의미는 항상 허구적인 것으로, 인종적이고 민족적인 유형의닫힌 정체성으로 봉인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인민'은 그것을 기초 짓는 픽션을 폭력적으로 실존하게 하는 독재국가의 구축을 요구한다. 더 은밀하지만 더더욱 크게 해로운 둘째 의미는그 의미의 유연함과 그 의미가 품고 있는 합의를 통해, '인민'에 대한인정을 국가에 종속시키는데, 이 국가는 합법적이고 좋은 것으로 가정된 국가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국가가 가능한 경우 성장을 조직하고, 어떤 경우든 자본이 포식하게끔 하는 헛된 생산물들을소비할 자유를 가진 중간 계급, 또한 일반적인 구조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할 자유를 갖는 중간

계급의 지속을 조직한다는 데 있다.

22.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에게는 '인민'이라는 말의 두 가지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그 역사적 실존이라는 목적에서

의 인민의 구성이다. 이 목적이 식민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지배 또는침략자의 지배를 통해 부정되는 한에서 그 인민은 구성되는 것이다.그래서 '인민은 실존하지 않는 국가의 전미래에 따라 실존한다. 두 번

째 의미는 공인된 국가가 소위 정당한 그 국가의 인민에서 분명하게

배제하는 소수 핵심 그룹에서 출발하여 그 자체로 선언된 인민이 실존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민은 기존 국가의 폐지라는 전략적 목적에서

자신의 실존을 정치적으로 긍정한다.

23. 그러므로 '인민'은 원점에서는 권력에 의해 그 실존이 금지된
기다리던[새로운] 국가의 실존을 지칭하는 정치적 범주 또는 종점에서

는 공인된 인민의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새로운 인민이 그 쇠퇴를

요구하는 기존 국가의 실존을 지칭하는 정치적 범주이다.

24. '인민'이라는 말은 국가의 가능한 비실존의 견지에서만 긍정

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국가란 우리가 창조하고자 열망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가이거나 우리가 사라지기를 열망하는 공인된 국가이다.'인민'은 민족해방전쟁과 같은 임시적인 유형 아래서 또는 공산주의

정치와 같은 결정적인 유형 아래서 그 전적인 가치를 갖는 말이다.

알랭 바디우-인민이라는 말의 쓰임새에 대한 스물 네 개의 노트

출처 인민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