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가능한 인민들, 상상적 인민들?
인민의 재현은 이중의 난제aporic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중의 어려움에 부딪친다. 그 이중의 어려움은 재현representation'과 인민이라는 두 용어를 각각 하나의 개념이라는 단일성 안에 포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에서 나온다. 한나 아렌트는 우리가 인간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한, 정치적 차원을 생각하는 데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정치는 바로 인간들이라는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들이라는 다수성은 갈등이든, 공동체이든, 각각의 경우에 다르게 변조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재현이나 이미지에 대실체화하는 것은 항상 가능하다. 그러나 전자는 인공적인 것으로, 모든
종류의 인민주의들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에 후자는 모든 정치 과학'이나 역사 과학의 주요 난제처럼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피에르 로장발롱Pierre Rosanvallon 이 프랑스의 민주주의적 재현에 대한 역사 연구의 제목을 발견할 수 없는 인민'이라고 붙인 것은 놀랍지 않다. 이 책은 시작부터 이미 “불편함malaise”을 강조한다. 즉, 민주주의
다시 말해 문자 그대로 “인민의 권력” - 의 불편함은 “정치적 선善”
으로서의 그것의 지평의 명백함과 “정치적 환멸”로서의 그것의 현실의 종종 파렴치하고 언어도단적인 미완수 사이에 걸쳐 있다. 다른 한편, 이 불편함 또는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에 내재적인 이 '어두움'의 부분이 가장 필수적일 뿐 아니라 가장 까다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재현의 문제로 전가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재현의 문제는 바로 위임과 형상화라는 두 가지 의미를 중심으로 어려움들이 연결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주제로 다루는 피에르 로장발롱이 카를 슈미트Curl Schunitt를 즉각적으로 참조하면서만 재현의 이 변증법을 상기시키는 것은 이상한 게다가 염려스러운 일이다. 카를 슈미트에게서 실제로 표상Reprisentation이나 상징적 형상화"로서의 정치적 재현과 대표Stellertretung나 위임”으로서의 정치적 재현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것이다.
우리는 카를 슈미트가 군주 권력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갖고 있어서 민주주의적 위임에 맞서 상징적 형상화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안다. 카를 슈미트는 1928년 (그의 주저 중 한 권인) 『헌법이론Verfassungslchre』에서 이렇게 말한다. 재현은 “아무 존재 장르와도 가능한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특별한(예외적인) 양식을 전제한다. 죽은,최소한의 가치나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은, 천한 어떤 것은 재현될 수없다. 그것에는 공적 존재로 고양될 수 있는, 실존을 가질 수 있는 상위존재 양식이 없다. 위대함, 탁월함, 장엄함, 영광, 존엄 그리고 명예 같은 단어들은 재현될 수 있는 고양된 존재의 이 특별함(또는 예외적임)을드러내려 한다.”
우리는 이런 시각 안에서 어떻게 '인민'이나 '인민들이 이를테면 재현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알다시피 카를 슈미트는 인민이라는 개념을 그것의 부정성과 그것의 무능함 안에서 통일하려 했다. 즉, 그에게 인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민은 이것이 아니고(예를 들어 사법관이나 행정부가 아니다) 저것이 아니다(예를 들어 온전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자가 아니다). 그에 따르면 인민이 할 줄 아는 모든 것은 그에게 지도자 Führertum로서, 최고의 '길잡이'로서 제시된 권력의 재현을 환호하는 것 ·이다." 피에르 로장발롱은 물론 카를 슈미트가 보여주는 '민주주의적 명백함'에 대한 증오의 반대편에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정치 신학』의 저자가 대표와 표상 사이에 세운 분리적 모델의 수감자처럼 나타난다. 즉, 그는 아마도 그것의 위계를 역전시킨다. 이제 위임은 상징보다 더 상위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민들의 재현을 한 번 더 인민들 자신에게 맞서게 하기 위해서이다. 마치 형상화된hgures 인민들은 필연적으로 상상적imaginaires이 된 것처럼 말이다. 마치 이미지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인민들은 반드시 환영적 llusoires 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세 개의 상상적 인민들이 피에르 로장발롱의 눈에 나타
난다. 우선, 여론이 "인민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알게 만드는 비조직적 방식”처럼(헤겔에 따르면), “환호의 근대적 형태" 처럼(또한 번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규정될 때 나타나는 의견-인민opinion-peuple이 있다. 다음, 국민-인민ration-peuple이 있다. '인민주의적 찬양'은 이 국민-인민에 사로잡혀서 그것을 야만족에서부터 이민자까지 배제시키는 실행자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감정-인민emotion-peuple이 있다. 이 안에서는 “근대적 대중들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이 비장한 양식으로 표명된다. 내용 면에서는 빈약한 이 감정의 공동체들은 어떤 단단한 관계도 맺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 융합을 실현하게만 만들고 인간들 사이의 의무들은 내포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장래도 약속하지 않는다. 옛날에 혁명의 사건-인민evénement-peuple처럼 변화에 대한 약속이나 행동력을 구현하기는커녕 감정-인민은 역사에 기입되지 않는다. 그는 결여와 어려움의 덧없는 그림자일 뿐이다"."
아마도 피에르 로장발롱은 여기에서 무엇보다 우선 “경기장”, “텔레비전 화면, 그리고 잡지 기사들을 겨냥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가혹한 진단을 받은 감정-인민'이라는 그의 표현 자체는 재현이라는 세 번째 개념에 의해 연결된 인민과 감정이라는 두 개념들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재현이 텔레비전 화면과 잡지 기사들의 인공적 감정들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확실히 카를 슈미트가 1933년에 합류한 전체주의적 위대한 길잡이들'을 실어 나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현은 바로 인민과 같다. 즉, 그것은 다수이고 이질적이고 복잡한 어떤 것이다. 재현 - 우리는 니체와 바르부르크 이래로 이것을 조금 더 정확히 안다 ㅡ 은 우리가 기호적 작동의 수준에서 '실신yncope'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또는 보다 형이상학적이거나 인류학적 수준에서 증후적 '찢김'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적대적이거나 역설적인 구조적 효과들의 담지자이다. 인민들과 그들의 감정들은 우리에게 따라서 철회
일반적 감각 세계에 대한, 그것의 고유한 발현들notions에 대한, 따라서 그것의 있을 수 있는 자원들ressources에 대한, 기본적으
로 플라톤적인 의례적인 철학적 철회 - 의 가치가 있는 이 거만한 비판보다. 더한 것을 요구한다.
변증법적 이미지들 앞에서 눈을 문지르기
따라서 헤겔이 인민에게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알게 만드는 비조직적 방식”이라고 명명한 것을, 또는 카를 슈미트가 '환호'라는 형태로 대중들에게 양도한 것(물론 카를 슈미트는 인민들의 항의들, 그들의 고통들, 그들의 저주들, 그들의 시위들', 또는 그들의 해방에의 호소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적게 말했다)을 약간 덜 거만하게 - 게다가 약간 덜 경멸적으로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피에르 로장발롱이 확언한 것처럼 만약 감정-인민이 상상적 인민이라 해도, 이것은 그들이 “내용 면에서 빈약하고, “어떤 단단한 관계도 없는”, “일시적 융합”을 할 수밖에 없으며, “어떤 장래도, (어떤) 행동력도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역사 안에 기입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간단한 이유는 감정들 자체가 이미지들처럼 역사에 기입된 것들이고, 1920년대와 30년대에 파시즘과의 투쟁의 맥락에서 역사성과 육체의 가시성 사이의 근본적 관계들을 재검토한 모든 사상가들(물론 나는 발터 벤야민, 아비 바르부르크, 카를 아인슈타인, 에른스트 블로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나아가 테오도르 아도르노에 대해 생각한다)에게 공통된 개념을 다시 취하자면, 그것의 가독성
Lesbarkeit 입자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감정들 자체는
- 벤야민이 만들어낸 훌륭한 개념에 따르면 이미지들처럼 변증법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선 그것들이 재현들과 매우 특별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재적인 동시에 분리적 관계, 표현인 동시에 갈등인 관계이다. 아비 바르부르크가 이미지들이 오랜 기간이 흐르는 동안 빚어내는 파토스의 형식들”의 “분극화polarisations”와 “탈분극화depolarisations” 작용을 관찰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그가 히스테리 증상들의 관찰을 통해 이미 식별한 요점을 강조했다. 즉, 무의식이 있다. 는 것은 정서affects와 재현 사이에
여기에서는 표현 그리고 저기에서는 갈등, 여기에서는 일치 그리고 저기에서는 불일치 — 복잡한 변증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사회의 역사가 그 역시 무의식 없이는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발터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말한 것을 명백히 해야 한다. “변증법적 이미지 안에서, 옛날은 (…) 정확히 한정된 시기에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즉, 인류가 눈을 비비면서 이 꿈 이미지rraumbild를 바로 그 자체로 지각한 순간이다. 바로 이순간에 역사가는 이 이미지를 위해 꿈 해석의 임무를 맡는다."
인류가 눈을 문지르지 않을 때
그의 이미지들, 그의 감정들 그리고
그의 정치적 행위들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나눠지지 않을 때 ㅡ, 이미지는 변증법적이 아니다. 감정들은 “내용 면에서 빈약하다. 그리고 정치적 행위들 자체는 “어떤 장래도 약속하지 않는다. 인민들을 발견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따라서 그들의 형상화의 위기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임의 위기에서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1935년의 글에서 아주 명확히 이해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들의 위기는 정치적 인간의 노출 조건들의 위기라고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경기장이나 상업영화 스크린의 “챔피언, 스타 그리고 독재자가 승리자가 되는 그곳에서, 시각적인 것을 변증법화해야 할 것이다. 즉, 다른 이미지들, 다른 몽타주들을 제작하고, 그것들을 다르게 바라보고, 연계된 분할들과 움직임을, 결합된 감정과 생각을 거기에 도입해야 한다. 결국 눈을 문질러야 한다. 즉, 재현을 정서와, 이상적인 것을 억압된 것과, 숭고화된 것을 증후적인 것과 문질러야 한다.
인민들의 재현은 우리가 권력들의 재현 안에 변증법적 분할을 도 입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다시 가능해진다. 피에르 로장발롱이 하듯이 토크빌의 민주주의적 전제들로부터 정치적 위임의 역사를 다시 추적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조르주 아감벤이 하듯이 교회
신부들의 신학적 전제들로부터, 그다음 카를 슈미트의 반민주주의적 전제들로부터 '지배'와 '영광'의 고고학을 다시 생각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발터 벤야민에게, 변증법화하는 것은 반대로 역사의 매 파편들마다 이 '이미지'가 다시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나타났다가 인식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의 연
약함 안에 인민들의 기억과 욕망을, 다시 말해 해방된 장래에 대한 형상화를 끌어넣는다. 이것은 이런 영역 안에서 역사가는 최소한의 일시적인 것들'이나 연약함들에 그의 시선을 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이 일시적인 것들은 '역사의 의미' - 우리의 현실성'이 그토록 믿고자 하는를 거슬러서 나타난다. 마치 그것들이 그때까지 생각되지 않은 역사성을 담은 신호들처럼 아주 멀리에서 와서 즉시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신호들 또는 변증법적 이미지들은 물론 연약하다. 집단적 감 정들의 연약성도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들의 위대한 변증법적 자원이 그런 것이다. 벤야민은 이렇게 상기시킨다. (1830년 7월 혁명 때) 전투의 첫날밤에 파리의 여러 장소에서 동일한 순간에 협의 없이 사람들이 시계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동질적이고 텅 빈 시간을 폭발시키는, 그리고 그것을 이 삽입된 신호에 의해 모든 시간성의 분해와 재조립이라는 특징을 가진 “유물론적 사료 편찬” 의 모델로 대체하려는 아마도 매우 “정서적인" 방식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인민들 자신의 연약함이 그렇다. 즉, 몇몇 공공 시계들의 파괴와 800여명의 7월 봉기자들의 죽음은 운동을 부르주아들과 왕당파들이 회수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발터 벤야민 — 1940년에 그에게 닥친 가장 큰 위회의 고간에 이 글들을 있다.
은 모든 시계들이 총질을 당하는 이 일종의 글 이미지를 인이나게 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것 앞에서 눈을 문지르기 위해, 그리고 이 잠 깨기 행위 안에서 역사가의 임무를 다시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역사가의 임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귀속된다. 오래전부터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지치지 않고 계속
베껴 써왔다.
익사가의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
지를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위험의 순간에 나
타나는 모습 그대로의 추억을 점령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
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이것은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
에게 느닷없이 제공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잡는 것이다.
이 위힘은 전통의 내용물들뿐 아니라 그것의 수취인들도
위협한다. 그것은 둘 다에게 동일한 것이며, 그들에게 지배
-
계급의 수단이 되도록 한다. 각 시대마다 전통을 막 지배하
려 하는 순응주의로부터 전통을 다시 빼내려 해야 한다.
우리는 '전통' - 모든 문화적 순응주의'와 구별되는 - 에 대한 이러한
주장을 즉각적 위험과 그것에 정치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위급성에
의해 지배되는 맥락 안에서 갑자기 발견해서는 안 된다. 벤야민은 프로
이트, 바르부르크와 잔존물들survivances의 인류학적 유효성에 대한 날카로운 의식을 공유했다. 그는 바타유나 아이젠슈타인과 잔존물들의 정치적 유효성에 대한 밝은 지각을 공유했다. 빌레트 도살장의 동물 고깃덩어리들 앞에서, 또는 멕시코 예배 행렬의 해골들 앞에서, 그리고 나중에 장 루쉬,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글라우버 로샤 와 같은 영화인들이 아주 명확히 보여줘야 했던 것처럼 눈을 문지르면서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이 역사적 - 그리고 또한 초역사적이다. 왜냐하면 이 지각은 긴 기간들과 사라진 연결점들missing links에, 억압된 것의 다른 시간성과 귀환에 결정적 자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 지각은 반드시 분할 - 인민들의 모든 재현이 이것으로 지탱된다 - 을 동반했다. 카를 슈미트가 권력의 전통에만 관심을 둔 곳에서 벤야민은 강하게 피압제자들의 전통을 대립시킨다.
즉, 피압제자들의 전통은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예외 상태가 규칙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 상황을 설명하는 역사의 개념화에 도달해야 한다.”
발터 벤야민이 동시에 역사가 - 그리고 아마도 예술가도 역시 - 의
임무를 인민들을 형상화하려는, 다시 말해 역사의 무명자들'에게 당당한 표상을 주겠다는 그의 의지를 통해 위치시켰다는 것은 더 잘 이해 된다. 즉, "알려진 (삭제된 구절: 시인들과 사상가들도 예외는 아니기에, 기념되는) 사람들의 기억보다 무명자들의 기억das Gedichenis der Namenlosen을 공경하는 것은 더 어렵다. 무명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역사적 건설이 헌정된다. 이 임무는 문헌학적 - 또는 벤야민이 말하기 좋아했던 것처럼 “미
시논리적micrologique" - 이며 동시에 철학적이다. 즉, 그것은 역사의 “순응주의자들" 이 결코 코를 (또는 눈을) 들이대질 않는 고문서들을 탐사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동시에 '이론적 골조'와 '건설 원칙'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실증주의적 역사가 전혀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이론적 골조'는 이미지들을 사상들에, 사상들을 사실들에 종속시키지 않는 것을 전제한다. 예를 들어 벤야민이 “피압제자들의 전통"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아마도 계급투쟁을 직접 가리키는 마르크스주의의 어휘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압제Unterdrickung라는 단어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개념적 어휘에 속한다는 것을 잘 안다. 프랑스말로는 '억제rpression’라고 번역되는 이 단어는 심리적 과정의 한 종류인데, 억압verdrangung은 그것의 특수한 종처럼 나타난다. 즉, 억제는 의식적인 반면에 억압은 항상 무의식적이다. 억제는 정서에 적용될 수 있는 반면에 억압은 재현에 대해서만 작동한다. 따라서 인민들의 전통적, 또는 더 잘 말하자면 순응주의적 재현들 안에 “억눌린retprime” 채 발견되는 것 자체를 형상화하면서 인민들을 “재현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다시 역사가의 임무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재현들 안에 억눌린' 것은 그것들의 사회적 비가시성이라는 지위
예를 들어 한나 아렌트가 파리아p.aria 라는 형상을 통해 『숨겨진 전통」에서 탐구하려 했던 것 - 뿐만 아니라, 헤겔이 개입된 육체의 행위들과 영혼의 발현들에 의해 정서를 표명하면서 "인민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알게 만드는 비조직적 방식"이라고 명명했던 것에도 관계된다.
뚜껑 열기, 헤테로토피아들을 가시적으로 만들기
가장 뛰어난 역사가들은 뚜껑
인민들에 대한 억제의, 압제의 뚜껑
- 을 여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부르크하르트'와 미슐레에서 현대의 작업까지 역사학의 일련의 걸작들을 열
거하는 것은 내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기에 모범적 방식
으로 뚜껑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폭발시켜 날려버린 세 개의 작품들을
간략히 상기시키고자 한다. 첫 번째는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 의
것이다. 고독의 역사
특히 신비주의적 고독
에서 출발해서 미셸 드
세르토는 이 관례적 “역사의 부재하는 것”을 건드리고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일정한 삶의 기술들” 에 내재한 사회적 저항의 행위들을 탐사하기에 이른다.
미셀 푸코는 알다시피 일탈의 역사, 그것의 제도적 처리의 역사- 수용시설의 정신병자들, 병원의 신체장애자들, 감옥의 죄수들, 그리고 성적인, 마지막으로는 게다가 문학적인(예를 들어, 레이몽 루셀의 작품) 일탈들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그도 역시 “건설 원칙"과 비판적 (다시 말해 철학적) 원칙으로 무장한 그의 고문서(다시 말해 문헌학적) 조사들에 따라 그런 "피압제자들의 전통”이 식별되고 모아지고 조직되고 맞설 수 있는 일정한 장소들을 구별하는 데 도달한다. 이 장소들을 그는 헤테로토피아들
hereroropies 이라고 명명했다. 이런 장소들이 완전히 보장된 자유의 기능적 보석상자들처럼 존재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나는 기능적으로 그것의 진짜 본성에 의해 급진적
으로 해방자일 어떤 존재를 믿지 않는다. 자유는 실천이
다. 따라서 사실 일정한 구속들을 수정하려 하는, 그것들
을 보다 유연하게 만들려 하는, 심지어는 그것들을 부수려 하는 수많은 기획들이 항상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획들 중 어떤 것도 단순히 그것의 본성에 의해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인간들
의 자유는 그것을 보장하는 기능을 가진 제도들과 법들에
의해 결코 보증되지 않는다. (…) 만약 우리가 자유가 실제로 실행되는 장소
어쩌면 그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
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대상들의 본성 덕분이 아니
라 역시 또 한 번 자유의 실천 덕분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
이다. 이것은 어쨌든 우리가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들을
행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빈민굴 안에
내버려 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정의상
자유의 기계는 없다. (…) 상호 관계들과 그것들 사이의 항
44
구적 격차들만이 있다.
헤테로토피아들은 이 가능한 격차들의 공간 자체를 규정한다. 거
기에서 뚜껑은 떨리고 약간 움직이고 자유의 뜨거운 증기가 지나가게 놔둔다. 유토피아들은 완벽하게 그러나 비실재적 - 그리고 푸코가 덧붙
읽어봐도 이해가 안되는레후
줄바꿈 자비좀ㅋㅋㅋㅋ ㅠ 올린 사진이 텍스트 내용이지?
아니 이어지는 내용
앱으로 바꿔서 그런듯
그럼 줄바꿈 정리좀 부탁하는 레후...
아 잠시만 차탈꺼라 조금 기다려주는 레후
다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