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는 꼭 그렇게 암울한 시기는 아니었음.
예를 들어서 제1차 모로코 위기가 발생하자 독일과 프랑스 노동자들이 "저..전쟁? 어디에?" 하면서 날카롭게 파업각을 보여준게 그 예시.
그런데 대전쟁 시기에는 사민당은 물론이고 민간쪽에서도 반전의 분위기가 없었는가? 그놈의 자칭 정통파들은 이걸 굉장히 간과함.
뒤집어서 말해보자. 1차대전 당시 반전을 주창한게 누군가? 바로 세르비아 사민당하고 러시아 사회민주당 다수파(볼셰비키)임.
즉, 슬라브족이 상대적으로 반전에 관심을 가지고 게르만족은 상대적으로 반전에 소극적이었다는것을 알 수 있음.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왜 둘의 시각 차이가 여실했는가?
예전에 언급했지만 1차대전이 터질 당시 발칸의 이해관계를 두고 오스트리아의 동진정책과 러시아의 남진정책은 정면 충돌상황이었음.
이런 세력투사는 세르비아가 주도하는 제2차 발칸전쟁에서 대불가리아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절정에 달함. 이로서 오스트리아의 확장은 정지됨.
더 골때리는건 원래 오스만 견제용으로 놔둬버린 연합이 너무 커져버려서 이제 러시아조차 이걸 감당할 수 없게 된거임. 건들면 본국 여론이 폭팔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사라예보 사건이 터져버렸고 러시아는 좋든 싫든 세르비아에 개입해야했음. 러시아가 뭐가 쎄다고 독일-오스트리아 전선에 참여하겠냐.
또한 이런 슬라브 국가들이 확장이 왁왁 커져가면서 사회주의가 성장했던 주류 국가들,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에 반감이 커질수밖에 없었음.
한편 독일과 러시아와간의 사회주의 세력간에 이해관계 득실도 고려해봐야함.
볼셰비키는 반전 주장하고 사민당은 찬전 주장했는데 상식적으로 전자가 도덕적이라서 전쟁에 반대했을까?
1914년 당시 독일 사민당은 이미 원내 제1당이었음. 반면 볼세비키는 1912년 분열된 이래 450석중 15~20석을 차지하는 군소정당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볼셰비키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하듯 잃을게 없었고 사민당은 여론에 거스르면 폭삭 망하기 딱 좋았음.
게다가 사민당 입장에서 전쟁에서 지면 러시아가 자기들이 그나마 이루어놓은 사회주의적 성과를 (1848년에 그랬듯) 엎어버릴까봐 걱정했고
볼셰비키는 역으로 러시아가 패전하면 체제가 혼란해지니 기회가 찾아올 수 밖에 없었음. 실제로도 기회를 잡았고.
그러다보니 사민당조차 일단 '방어전쟁'을 조건으로 승낙했던거임. 당시 독일은 이걸 국가의 존망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반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슬라브 형제를 구한다는 대의명분은 있었지만 실속은 없었고 그래서 염전의식이 빠르게 쌓여갈 수 있었다는거.
(전쟁 끝난 이후조차 독립사민당 출신들을 종파분자로 간주했던게 당시 사민당이었다....)
덤으로 하나 더 말하자면 찬전이 정말 기존권력에 대한 투항이었으면 전후 85% 지지율로 성립된 흑적황대연정이나 대공황 이전 바이마르 공화국 내내 제1당을 안놓친걸 설명할 수 가없음. 당시 독일인들은 그걸 오히려 정상적으로 보았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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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엥겔스의 적자가 실망스러웠던건 사실이긴한데
허허허, 좋다 이 전쟁 동부전선만 막는다는데 의석 점유율 40% 건다. 야, 캐삭빵 떠!
흑적황 대투항
투항 안한 독립사민당 원외정당으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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옙 카우츠키는 드레퓌스 사건때도 침묵하는게 사민당에게 도움된다고 했습죠
완전 투항은 아님. 사민당은 그래서 서부전선은 강화노력을 자체적으로 지속했고 제한적이나마 생디칼리즘적 노동자자주관리제도 통과시킴.
볼셰비키도 그리 따지면 10월 혁명 이후에 즉각 평화 구호는 집어치우고 밍기적거렸음. 현실정치는 이상으로 해결이 안됨
간이고 쓸개고 다 뺀건 볼셰비키도 마찬가지라니까
난 장 조레스 잘 모름
난 조레스 이야기 안했고 처음부터 사민당 이야기에 볼셰비키만 곁들었음
당시 유럽인들이 1차대전의 본질이나 추세를 온전히 파악하는게 가능했다고 봄? 후세의 논리로 당사자를 재단하는건 불합리하다고 보는거지.
1903년때 대놓고 -그 개량-에게 유죄판결 내린게 사민당 당수 베벨이 아니라 데시벨이었나.(혹시나해서 말하는데 사회 본질에 대한 변혁을 포기하고 자기의 이권에만 집중하는 개량주의와 민주주의적 사회개혁정당으로의 개편을 요구하는 수정주의는 다름. 전자는 수정주의를 자신들의 행동에 방해가 될까봐 꺼려했음)
그리고 본문 내용 도데체 읽었는지가 의문인데 당시 독일인들은 이걸 러시아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발생한 방어전쟁으로 보았지, 제국주의적 전쟁으로 판단 안했다는데 왜 자꾸 사민당이 옳냐 아니냐 문제로 끌고가는거임. 난 사민당이 옳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그리 판단할 여지가 있었다라고 말하는건데.
전쟁의 본질을 빨리 간파할 수 있었으니까 갤주의 유니우스 팜플렛이 그리 고평가를 받는거지, 애초에 1차대전이 퍼진 직후에는 찬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나폴레옹 전쟁 이후로 장기간의 전면전이 없어서 전쟁의 참혹함을 예견 못한 유럽인이 대다수였던게 사실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독일 사민당 하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인이 가졌던 시대의 한계였음.
유대인 드립에 대해서는 드립으로 한건같은데 실제로 그게 당시 독일인의 실상이었음. 당장 가장 거대한 반나치조직인 사민당의 지하조직도 형식상으로는 수백만명에 달했지만 현실은 정기연락 정도가 고작이었고 당시 개개인에게 정치에 대항하는건 현실적으로도 이상적으로도 불가능했음. (출처 : 독일 노동운동사(1848년 혁명부터 21세기까지)) 그리
물론 독일인이 그렇다고해서 나치에 전면적으로 동의했던 것은 아니고 1939년부터 소극적인 사보타주 행위나 기타 저항운동이 어느정도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게 나치라는 반지성주의적 악을 막을 수준까지는 아니었던것도 사실이지. (출처 :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을 반대하지 못했고 결국 카이저 정권에 대한 굴종적인 태도로 인식될 수 있는건 물론 사실임. 근데 그걸 '사회주의의 배신이다!' '혁명을 포기하고 기성권력에 투항했다!'로 이해되냐고 하면 그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 그건 도의적인 책임과 법률적인 의무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봄.
덧글 안 읽음? 난 사민당에게 면죄부를 주자는게 아니라 당시 사민당은 다른 독일인과 평균적인 수준으로 대전쟁을 인식했다고 말하는건데.
차라리 장조레스를 들먹일꺼면 전쟁 끝나고 백색테러로 사민당 관련 인사들이 죽어나갈때 사민당 지도부가 침묵한걸 들먹어야지. 독일 사민당 이야기하는데 프랑스 사회주의자 한명 이야기나오는건 관련 있다고 봄?
사실 까놓고 말해서 게을렀다를 넘어서 1914년 시점에는 기득권화되는 조짐이 보였던것도 사실임.
그래, 독일인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그 때문에 그 시민들이 전쟁을 주도한거 자체는 죄가 아니야. 근데 전쟁 터지면 모두가 단결해서 그 전쟁을 막고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가자고 입 털었던 독일 사민당이라서 문제가 되는거지. 심플하게 말하면 중요한 핵심 공약을 단지 상황이 안 좋다라는 이유 하나로 저버린거임. 뭐 그걸 이해할 지지자들도 있지만, 적어도 정치 집단으로써 핵심 공약을 안지킨건 일반적인 인식으로 보더라도 단순한 '도의적'책임은 아닌거 같은데?
1891년 에르푸르트 강령 어디에 제국주의 전쟁의 방지가 사민당의 핵심강령이라고하는거? 에르푸르트 강령의 후반부(최소강령)만 보아도 사민당은 현실적인 모굪를 통해 사회주의를 획득하는 것을 추구한 정당이지, 제국주의 전쟁 방지가 핵심 목표가 아님. 게다가 제2인터내셔널의 구속력은 1904년 카우츠키 결의안 재확인을 통해 수정주의의 배격을 선언하면서도 실질적 조치가 전무했다는 점에서 이미 한계가 들어난 상황이었음.
프랑스같은 경우에는 1871년 보불전쟁의 패배로 인한 민족주의가 극단적으로 폭팔한 상황이지 유럽 전체에 일반적으로 통용될 상황은 아니라고 봄.
마치 '나는 그런 공약 한적도 없다' 라고 하는 기성 정치인 같군. 그렇게 말할거면 적어도 그 구속력 없는 인터네셔널 결의안에서 입이라도 털지 말든가.
그냥 서로가 서로 말 들을 생각이 없는것같은데.
내가 삭제함. - dc App
더 이상 격화되면 난장판 될거 같아서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