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바디우는 국민 형용사에 의해 한정된 인민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고발한다 프랑스 인민, 영국 인민과 같이 정체성에 의해 봉인된 인민은 단지 반동적인 정복자들에게만 어울리는 것이나 국가에 의해 정체성이 부여된 무기력한 전체를 의미할뿐이다 그러한 한정이 의미가 있는 경우는 외세의 식민지적 침략에 맞서 해방을 쟁취하고자 하는 정치적 과정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이 문제가 되는 상황뿐이다 오늘날 국가에 의해 추인되고 국민 형용사를 통해 봉인된 인민은 단지 선거에서만 의미를 갖는 잘 길들여진 인민이라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글은 이미 오래전인 1983년에 쓰여진 것이다. 부르디외는 인민적이라는 형용사가 만들어내는 관용구들이 적법한 언어에서 배재된 것의 집합을 형성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언어의 질서 안에 어떤 분할의 논리가 작동한다는 점을 드러내려한다 그는 그런 분할의 논리가 통속 언어와 거리를 두는 지배집단과 지배적 언어에 반항하는 피지배 집단의 분리를 함축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언어의 발화가 계급적이고 성적인 차원에서 각자의 논리로 분할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버틀러는 실질적인 인민 주권의 실행이 거리로 몰려나와 집회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발화 (우리는 인민이다)의 실천은 수행적인 실행을 통해서만 선언된다는 것이다. 디디-위베르만은 하나의 인민, 다시말해 통일성과 전체성으로서의 인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순간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다시금 재현되는 인민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인민의 모습 여러 인민들의 모습은 감각적인 것으로의 재현을 통해서만 그때그때 인식되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문학 작품들과 다큐멘터리, 사진들은 이미지를 통하여 인민을  감각 할 수 있게 만들었고 무권력의 선언 안에 있는 인민들을 보여주였다. 그러한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야 말로 사람들이 감동하기 시작하고 사유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된다. '미적*정치적 사유는 바로 그러한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키아리는 '인민' 개념이 적대적 외부를 통해 구성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오늘날 인민을 사유하는 데 있어 '인종'의 개념이 갖는 중요함에 방점을 찍는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프랑스(그리고 유럽 전체)의 보편주의적 인민이 사회적 인종들이 갖는 위계를 은폐 하면서 작동한다고 말한다. 백인, 유럽인, 기독교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인민은 인민에 속하면서 속하지 않는 '제3의 인민' '인민 밖의 인민'이다. 이들은 프랑스 사회의 구성, 인민  주권의 구성 가운데 끈임 없이 배재된다. 좌파 전선의 대선 후보 였던 장-뤽 멜랑 숑마저도 프랑스 국가의 역사와 규범, 정교분리의 방패 뒤에 숨어 식민지 이민자 출신 집단을 인민 밖으로 배재한다. 그는 이른바 '좌파 정치'가 여전히 인종적 특권을 해체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적(국민적) 정체성의 포로로 남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랑시에르의 짧은 글은 '포퓰리즘'을 겨누고 있다. 그에게 오늘날 미디어의 사냥감이 되고 있는 포퓰리즘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스타일을 지칭 하는것이 아니라 의회정치를 불신하고 거부하는 적대적 인민의 형상을 그려내기 위한 것이다 무지한 군중, 맹목적인 군중은 정부에 의해 취해지는 일련의 인종주의적 조치들과 관련이 없다. 지배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적 인민의 이념을 군중의 우험한 이미지와 결합시킴으로써 현재 의회 민주주의를 정당한 것으로 강변하는 일이다. 그 군중은 우리를 전체주의로 몰고 갈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무분별한 '인민' 포퓰리슴의 인민은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힌다는 것이 랑시에르가 보여주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