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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7월 24일, 한 러시아 공산주의자가 작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바로 전연방 볼셰비키 공산당의 서기장, 니나 알렉산드로브나 안드레예바 여사였다. 대다수 로갤러들은 이 이름이 생소할 것이다. 국내에서는 90년대 초 소련에 대한 국내 언론 보도에 이름이 거론되거나, 노사과연 같은 스탈린주의자들의 글에서 등장하는 정도로만 알려졌기 때문이다. 크렘린의 위기를 해봤다면 그의 이름과 그가 스탈린주의자였다는 것 정도는 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소련사에서 중요한 행적을 남겼는데, 그가 신문에 게재한 글과 그로인해 촉발된 일련의 사건은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을 논할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스탈린주의자가 아니고, 그의 입장에 모두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한 공산주의자의 죽음을 기리는 뜻에서 안드레예바의 생애를 간략하게 소개하려 한다.


초기 생애

안드레예바는 1938년 레닌그라드의 노동자 가정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항만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공장 기술자였다. 대조국전쟁에서 아버지는 전사했으며, 오빠와 여동생 역시 그때 죽었다고 한다. 우등생이었던 안드레예바는 레닌그라드 공대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고 화학을 전공했다. 이후 석영유리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다 모교인 레닌그라드 공대의 교수가 되었다. ‘싸비예트스카야 라씨야’ 신문의 편집장의 증언에 따르면 안드레예바는 꽤나 훌륭한 교육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콤소몰 당원이었던 안드레예바는 1966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나는 내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와 안드레예바 사건

1988년 3월 13일 ‘싸비예트스카야 라씨야’ 신문에 안드레예바의 글 ‘나는 내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가 게재되었다. 고르바초프의 연설에서 따온 제목의 이 글은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일부 결과물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이었다. 이 편지는 소련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 파장은 중앙정치에 까지 전해져 공산당 정치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심지어는 서방 세계의 자본주의 언론들도 이 글에 대해 ‘반유대주의적’ ‘도발적’이라며 공격할 정도였다.


고르바초프와 그 지지세력(개혁파 혹은 수정주의자)들은 안드레예바의 글을 ‘신스탈린주의’, ‘반유대주의’, ‘러시아 민족주의’, ‘반페레스트로이카 선언문’이라고 비난하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심지어 이 글의 배후에 고르바초프의 정적이자 레닌주의자인 예고르 리가초프가 있다거나 쿠데타의 축소판이라는 둥 편집증적이고 음모론적인 반응마저 나왔다.


실제 글의 내용은 친고르비 세력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드레예바는 글에서 고르바초프의 정책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대신, 당시 사회에서 나타난 이념적 문제를 주로 다뤘다. 일부 작가들의 작품에서 나타난 스탈린에 대한 역사왜곡을 비판하고, 이것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했으며, 자유주의, 민족주의 등 반사회주의적 이념 경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또한 스탈린을 무작정 옹호하지도 않았다. 안드레예바는 1930~1940년대 소련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맑스-레닌주의 원칙에 대한 연설을 인용하며 끝을 맺는다. 이 글의 전문을 번역해서 월스에 기고했으니, 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알고싶다면 월스 8월호와 번역문의 일독을 권한다.


하여튼 개혁파의 주장과 달리, 이 글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은 아니었고, 반고르비 세력이 배후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고르비는 처음 이 글을 봤을 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글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커지자 입장을 180도 바꿨다. 그리고 그의 측근 야코블레프와 함께 이 글을 반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고르비는 문제의 글에 대한 진상규명을 명령하고 안드레예바의 글을 실은 신문 ‘싸비에트스카야 라씨야’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리고 안드레예바의 글은 반페레스트로이카 세력의 음모라는 소문이 퍼졌다. 정치국에선 몇 달 동안 이 문제가 논의되었고, 야코블레프는 고의적으로 긴장되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를 필두로한 개혁파 정치국원들은 안드레예바의 글을 반페레스트로이카 스탈린주의 쿠데타 음모라고 공격했다.


개혁파의 안드레예바의 글에 대한 공격은 곧 반대파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변모했다. 개혁파 의원들은 다른 정치국원들에게 자신들과 견해를 같이할 것을 강요하고, 안드레예바를 비난하지 않는 의원들을 공격했다. 리가초프는 개혁파의 주요 공격 대상이었는데, 그 정도가 어찌나 심했는지 리가초프는 당시 정치국 회의는 스탈린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이 ‘마녀사냥’은 계속되었다. ‘싸비예트스카야 라씨야’의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하고, 고르바초프는 정치국을 소집해 의원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결국 정치국은 결의안을 통해 ‘싸비예트스카야 라씨야’의 편집장 발렌틴 챠이킨을 비난하고 리가초프에게 경고조치를 내렸으며, 안드레예바의 글에 대한 공식 반박문을 내놓기로 했다. 야코블레프가 작성한 반박문 ‘페레스트로이카의 원칙: 혁명적 사고와 행동’이 ‘프라브다’지에 실렸다. 그리고 ‘싸비예트스카야 라씨야’는 안드레예바를 옹호한 것에 대한 자아비판을 강요받았고, 그를 비난하는 사설을 실어야 했다.


리가초프와 반개혁 세력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었다. 결국 리가초프는 자신이 맡고 있던 이념 담당직을 야코블레프에게 넘겨야 했다. 반개혁 세력은 큰 타격을 입었고, 개혁파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를 기반으로 고르비와 더욱 강경한 개혁정책을 밀어붙여, 페레스트로이카는 근본적인 소련 체제는 유지하는 개혁에서 본격적인 탈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사민주의 도입으로 전환되었다.


한편, 이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안드레예바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당국의 압박으로 그는 교수직을 내려놓아야 했고, 남편이 심근경색을 겪기도 했다. 


이후의 삶

안드레예바 사건 이후, 안드레예바는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1년 8월, 그는 ‘소련 공산당 볼셰비키 플랫폼’이라는 당내 반페레스트로이카 세력의 대표가 되었고, 11월 ‘전 연방 볼셰비키 공산당’을 창당해 서기장이 된다. 이 정당은 현재까지도 남아있지만, 법외정당으로 활동하며 의회민주주의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또한 북한과도 몇 차례 교류를 한 것으로 보인다. 1992년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1999년엔 김정일과 직접 만났다고 한다.


또한 그는 러시아 연방 공산당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연방 공산당에 대한 질문에 공산당은 공산주의가 아닌 사회민주주의 정당인데 공산주의자인척 하며 반 푸틴 운동에 소극적이고 소련 해체에 책임이 있는 노멘클라투라들이 당원으로 있다는 것을 들며 비판했다.


그리고 2020년 7월 24일 그는 81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볼셰비키당은 안드레예바의 죽음을 알리며 그를 ‘소련의 애국자이자 통찰력 있는 정치인, 불굴의 볼셰비키이자 기회주의와 투쟁한 자’라고 평가했다. 한편 그의 숙적이라 할 수 있는 고르바초프는 현재 89세의 나이로 아직까지 정정하다.


소련 붕괴 이후 안드레예바의 삶에 대한 내용이 많이 부실한데, 영어 자료는 다 안드레예바 사건쪽에 집중되어 있고 러시아 웹사이트 쪽을 찾아봐야 알 수 있을거 같은데 찾아보기도 귀찮고 글이 너무 길어질 거 같아서 그냥 안드레예바 사건을 위주로 썼음. 대신 위에서 말했듯 ‘나는 내 원칙을 저버릴 수 없다’의 전문을 허접하게나마 번역해서 월스에 기고했으니까 한번 읽어보는걸 권함.


참고자료
-영어, 러시아어 위키피디아 니나 안드레예바 문서
-'공산주의를 방어하며'의 안드레예바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 http://www.idcommunism.com/2020/07/nina-andreeva-woman-who-stood-against-gorbachevs-perestroika-dies-at-81.html
-안드레예바의 2013년 인터뷰: https://www.sensusnovus.ru/interview/2013/03/04/15856.html
-노사과연의 번역 '배반당한 사회주의: 쏘련 붕괴의 배후': http://lodong.org/wp/archives/9201#ENDNOTE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