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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상검증부터


나는 이상주의자다.

인류 역사상 이상주의자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바르셀로나의 해방을 꿈꾸던 민중들은 파시스트 군홧발 아래 짓밟혔고,

페트로그라드의 성난 군중들은 스스로 쌓아올린 위태로운 탑 위에서 결국 추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이, 모순과 빈자들의 비명으로 가득한, 경쟁자의 탈락으로 썩어 고여가는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현실주의자', 이상주의자의 선민의식이라는 빌어먹을 색안경으로 바라봤을때는 '개돼지'라고 불리우는, 그들은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이상을 꿈꾸는것은 행복하다, 그러나 무참히 짓밟혔던 과거의 이상들과 변할것같지 않은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의 허무함은 이상주의자의 영혼을 결코 행복할 수 없게 한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가난한 집안의 별볼일없는 자식으로 태어나, 체제에 뒷덜미를 짓눌리며, 순응하며, 별볼일없는 삶을 살다가, 별볼일없는 삶을 별볼일없이 끝낸다.

나는 어리다, 그 동시에 젊다. 젊은 자는 무모하다. 그 심장에서 끓어오르는 피는 무모하게도 '별볼일 없는 삶'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차라리 1917년의 페트로그라드에서, 꿈꾸는 삶과 더 나은 미래를 외치다 압제자들의 흉탄에 바스러져갔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만족할만한 삶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지만 현실의 족쇄는 나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압제자의 총탄보다도 나의 영혼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이상주의자'라는 보기좋은 이름을 자칭하고서도 나는 지식, 특히 스스로 예찬하는 사회주의와 혁명, 마르크스의 이념 따위도 잘 알지 못한다.

'연대한 민중은 강하다!' 이 문장은, 분노로 무장하고 대의로 집결한 민중의 힘을 증명하는 격언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사회 앞에서 일개 개인은 한없이 나약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물론 나처럼 못 배우고, 못난 사람이면서도 두둑한 배짱으로 현실과 맞서 싸우는 자들도 있다.

그들 대부분은 고독히 바람 속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려갔다, 그렇게라도 합리화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배짱도, 능력도 없는 그저 그런 놈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압제자들의 아가리 속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묵묵히 걸어들어가고 있다.

현실에 깎여나가고, 서서히 사그라들어가는 이상주의자의 불타는 심장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