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토지공개념 관련 글이 올라왔는데 마침 지금 읽고 있던 책에 관련된 내용이 있어서 짧게 정리해서 서평 올립니다.


인상비평의 시선으로 이 책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자기모순 그자체이다. 독과점 규제 완화에 앞장선 법관의 아들과 MS 출신의 경제학자가 내놓은 제안이 토지공유화라고? 그런데 그 토지공유화를 실현할 방법이 자유시장경제에 있다고? 그리고 자유시장경제 하에서 불평등이 완화될 것이라고? 일반적인 독자라면 당연히 이런 책은 허경영류의 전형적인 개소리로 치부하고 거들떠도 안 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모순을 견디는 것이 시장사회주의라고 믿는 나는 서점에서 이 책을 보자마자 흥미롭게 여겼고, 더군다나 당시 수강하던 경제학 수업의 교수의 추천사에 신뢰를 갖고 바로 읽어보기로 했다. (다만 돈이 없어서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


저자들은 현대사회가 경제 침체, 불평등, 정치갈등, 부패 등의 문제에 노출되어있고, 기존의 좌우파, 그리고 테크노크라트 모두가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포퓰리즘에 도전을 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들은 좌파와 테크노크라트가 공명정대한 정부가 효율적인 계획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과대평가한 결과 지나치게 중앙정부와 계획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 결과 비효율과 부패라는 결과를 맞이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유방임과 무한경쟁을 숭배하는 신자유주의자나 자유지상주의자인가? 그러나 이들은 그들과도 분명히 선을 긋는다. 이들에 의하면 밀턴 프리드먼, 하이에크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현존하는 시장 구조를 절대 선으로 규정하는 '시장 근본주의자'들이다. 동시에 자신들을 시장 구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시장 급진주의자'로 자처하며, 애덤 스미스, 헨리 조지 등을 자신의 사상적 대부로 내세운다. 이들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 헨리 조지, 그리고 자신들과 같은 '시장 급진주의자'들은 시장이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이라고 믿는 동시에 이러한 시장의 역할을 가로막는 독점을 제거하고 시장이 사회의 효용을 극대화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토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가? 이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이들은 헨리 조지의 지공주의에 대한 비평에서 출발한다. 모든 토지를 공공의 것으로 놓고 여기서 발생하는 토지 지대를 세금으로 환수하여 이를 사회 배당금으로 분배하거나 국가 재정에 사용한다는 그의 주장은 소유의 불평등을 해소할 것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토지를 소유하기 때문에 아무도 토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어떻게 토지의 가치를 평가할 것인가? 현실사회주의를 비롯한 계획경제의 지지자들은 정부가 '과학의 당찬 머리를 모아 빈틈없는 전략을 세워' 그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고 이를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 달리 경제는 상상 그 이상으로 복잡했고, 이로 인해 비판에 직면했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은 코즈였다. 코즈는 개인간의 거래만으로 충분히 효율적 분배가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는 그 의도와 별개로 지주들에게는 계시와 같았다. 우리의 착취를 내버려 둬라! 시장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다! 그렇게 지공주의는 대충 망했다...가 이들의 평가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지공주의의 실패 원인이 토지공개념 그 자체가 아닌, 그 실현 수단의 부족에 있다고 보았다. 위에서 언급했듯, 토지의 관리와 가치 평가가 문제이니, 이를 해결할 시스템이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이들에겐 당연하게도, 시장이다. 이들은 토지를 언제든지 팔릴 수 있는 시장에 의무적으로 내놓게 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토지의 가격을 지주 스스로 매기고, 정부는 지주가 평가한 가격에 맞춰 보유세를 매겨 지대를 환수하자는 것이다. 알박기나 매점매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통한 부당이득은 없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 지대의 일부를 '관리의 댓가'로 내주어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모든 재산에 대해 적용하여 세수를 대체하거나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스템 자체는 상당히 급진적인 대안이라고 보지만, 그 기저에 놓인 이론적 바탕의 한계와 기저에 깔린 철학의 보수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맑스가 이미 지적한 지공주의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맑스는 토지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수단을 자본가가 소유하여 노동의 댓가를 착취하는 것이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하였고, 따라서 토지 공유를 넘어서 모든 생산수단을 공유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지공주의는 착취의 한가지 형태에만 천착했다는 한계가 있다. 다만, 저자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보유세를 모든 재산에 대해 확장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를 모든 생산수단의 사회화에 활용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 가령,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 시도와 같이 기업의 자본에 보유세를 매겨 이를 임노동자기금으로 전환, 점진적으로 기업을 사회화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할 방법이 오직 부분적 사유재산의 허용에만 있냐는 것이다. 저자들은 신고전파적 해법에만 천착하여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형태로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로 일정한 지대 수익을 인정하는 것은 지주와의 타협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대표적인 해결책으로 엘리너 오스트롬의 제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잘 조직된 공동체에서는 합리적 선택에 의하건 문화적 가치에 의하건 관계없이 공동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일치되어 공유지를 안정적으로 관리함을 보였고, 이것이 오히려 소유권 정립에 의해 붕괴, 비효율을 낳음을 보였다. 즉, 잘 조직된 공동체는 공유재를 관리할 사회적 역량을 갖춘다는 것이다. 따라서 토지 소유권(내지는 점유권)을 개인이 아닌 법인, 또는 공동체에게만 주는 형태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농지개혁 시기에 농지 소유권을 농민이나 영농조합에게만 제한적으로 인정했던 것과 같이, 지역 공동체, 기업 내의 노동자평의회, 협동조합 등에게만 소유권을 인정하고 관리 책임을 이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안에서의 인간 실현과 계급 의식 강화를 함께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유고의 한계에서 보듯 집단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이행기에 잘 작동하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마지막 세번째 문제는 이들의 내놓은 제안의 근본적 한계를 파고든다. 과연 시장은 완벽한가? 그리고 그 안에서 평등이 잘 유지될 수 있겠는가? 저자들은 시장이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통해 충분히 최적인 분배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가정은 신고전파의 기본적 가정인 균형이론과 합리적 개인에 기초한다. 그러나 현대 경제학은 이들 가정이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준다. 시장 균형은 완전하게 공유된 정보, 합리적 개인 등 수많은 조건들을 요구하며, 이들 중 하나만 깨져도 그 최적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또한 개인 역시 합리성에 한계가 있으며, 이는 정보의 불평등, 사회문화적 경험, 경로의존성 등에 의해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시장이 어느정도 효율적인 배분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최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충분히 작다면, 또는 정책을 통해 큰 불균형을 제거한다면, 어느정도 타협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불균형이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본의 축적은 확대재생산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어, 잉여재산이 존재하면 그것이 계속해서 재생산되지만, 거꾸로 한번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이윤율을 넘어서는 이윤을 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거시적으로 완전균형시장이라고 할지라도 약간의 잡음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그것이 불평등을 낳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보의 불평등으로 그 잡음이 증폭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시장의 한계와 이로부터 발생하는 부의 축적을 막을 '보이는 손'은 필수불가결하다.


저자들이 제안한 토지에 대한 '래디컬 마켓'은 이들이 가진 자유주의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어쩌면 맑스가 말한 것처럼 '수탈자들이 수탈당하는' 광경을 연출하는 훌륭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노동계급을 위한 장치로 쓰기 위해서는 보다 신중한 탐구와 개량이 필요할 것이다.

+ 뒷부분 내용도 궁금하다면 댓글 주시길. 다만 뒷부분은 껄끄러운 내용이 좀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