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얼마 전 한 자유투사의 개소리가 담긴 짤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유투사의 개소리야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그에 대한 반박문이 더 기가 찼기 때문이다. "애초 자본주의는 언제나 수리적인 현실도출을 하지만 사회주의는 철학적인 인문사고에 더 치중하는 편이라 둘을 동등선에 비교 한다는 게 더 이상한 것" 우익 프로파간다에 대한 반박문마저 이런 인상비평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사회주의=현실과 동떨어진 사이비 유토피아주의라는 우익 프로파간다가 잘 먹혀들어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보았다. 애초에 맑스-엥겔스부터가 스스로를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구분하면서 '과학적 사회주의'로 선언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당시 수준에서의 합리적 비판을 위해 자본론을 집필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현실적인 사회주의 운동을 위해 운동의 주체가 될 노동자들의 규합에 적극적이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자유투사들에 의하면) '수리적인 현실도출을' 하는 주류 경제학을 사회주의가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왜곡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서술한 이 책이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서론 - 경제학자들과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경제 운영의 주체에 대한 논의에서 국가 대 시장의 이분법을 내세우고 시장을 옹호하는 측을 신자유주의로 규정하고, 신자유주의의 기원을 자본주의 내에서만 찾는다. 이 책은 이러한 이분법을 비판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기원이 자본주의 뿐 아니라 사회주의에도 있으며, 신고전파 경제학과 신자유주의를 분리해서 보고 국가 대 시장의 이분법을 넘어서야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경제 문제에 대한 정책 제언이 모인 이념으로 놓고, 경쟁적 시장, 작은 권위주의적 정부, 주주와 경영진이 통제하는 위계적 기업,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를 골자로 한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신고전파 경제학과 분리해서 인식해야 하며, 모든 신고전파 경제학을 신자유주의로 넘겨짚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거꾸로 신자유주의가 사회주의 경제학이 만들어낸 신고전파 경제학의 학문적 성과를 전유하였고, 그 과정에서 신자유주의가 사회주의적 기원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주의와 신고전파 경제학의 관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경제학자들의 학문 교류,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사회주의 논의의 전유와 배제 과정을 서술한다.
2. 신고전파 경제학과 사회주의: 시초부터 1953년까지
현대 신고전파 경제학은 대체로 자본주의 경제를 설명하고 그 이데올로기를 유지,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되기 때문에 신고전파 경제학이 온전히 자본주의 진영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극초창기에는 어느정도 그러했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경제학 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체제를 생각하던 입장이서 기존의 개념인 시장, 가격, 화폐를 동원하는 신고전파 경제학은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 경제학에 불과했다. 자유방임을 옹호했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역시 사회주의를 유토피아주의로 치부했다. 이 둘의 간극을 메우기 시작했던 인물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부인 레옹 발라이다. 그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 토지와 자원의 국유화, 자유시장을 통해 전민중이 노동자인 동시에 자본가가 되는 사회를 지향했다. 한편, 사회주의와 신고전파 경제학은 서로를 비판하는 동시에 서로의 학문적 유산을 적극 차용하였다. 사회주의 진영은 신고전파 경제학과 반사회주의 진영의 비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경제 이론을 사회주의 경제 모델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신고전파 학자들은 사회주의 국가를 경제 모형 설계에 활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장 균형과 중앙계획이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랑게를 비롯한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자유시장 하에서 사회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국가가 생산물을 중개, 분배하는 시장사회주의 모델이 탄생했다. 이러한 연구는 중부유럽의 시장사회주의자들, 런던 정경대의 페이비언 등의 세력이 주도하여 이루어졌다. 소련에서도 이러한 연구가 있었으나, 스탈린 집권 후 관료체제 하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연구는 위축, 고립되었다. 이들이 부활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세계대전 당시 미소 양측의 군부에 의해서였다. 군부는 전쟁 승리를 위해 효율적인 분배, 생산 계획을 필요로 했고, 여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신고전파 경제학은 다시금 그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3. 1950년대 경제학자들의 새로운 초국가적 대화,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냉전 하에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동구권과 서방 경제학자들의 학술 교류는 지속되었다. 이들은 교환 연구, 국제 학회 및 학술지를 통해 공론장을 세울 수 있었으며 이곳에서 소련식 중앙계획 사회주의와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논의를 가장 빠르게 채용한 곳은 유고슬라비아였다. 유고는 코민포름 축출 이후 생존을 위해 외교적으로는 비동맹 노선을, 경제적으로는 소련보다 더 진보한 사회주의를 지향했다. 이를 위해 맑스-레닌주의 이론에 따른 국가의 점진적 사멸을 위한 분권화, 노동자 자주관리를 실현하고, 경제 시스템 설계를 위해 시장경제와 신고전파 경제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유고슬라비아는 이러한 변혁을 국내를 넘어 비동맹 세력, 국제기구를 동해 해외, 특히 제3세계에 수출하고자 하였고, 이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을 통해 하나의 모델로 전파되었다.
4. 구야시 공산주의와 헝가리의 신고전파 경제학
한편 제2세계에 남아있던 헝가리 역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논의가 활발했고, 이러한 연구는 임레 너지의 주도 하에서 경제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정부가 직접적인 통제가 아닌 간접적인 시장 조정을 통해 경제를 계획하는 경제적 메커니즘을 기획하고자 하였다. 1956년 헝가리 혁명 시기 이를 주도했던 페퇴피 서클은 이들 개혁경제학자들과 유고슬라비아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개혁경제학자들 역시 이에 노동자 평의회 건설, 분권화 등을 주장하며 화답했다. 그러나 소련의 개입으로 헝가리 봉기가 진압된 이후 개혁경제학자들은 탄압에 직면했고, 생존을 위해 야노시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이들의 협력은 이전의 노동자 평의회, 분권화 주장 기각, 그리고 경제개발 계획에의 적극적 참여의 형태로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 탈정치화를 선택한 학자들은 수리경제학 및 계량경제학 연구로 선회, 순수학문으로서의 경제학 연구에 몰두한다. 그 결과 헝가리는 1968년 신경제메커니즘을 도입, 국가가 금융적, 경제적 수단으로 시장을 조정하고 각 기업에 인센티브와 자율권을 보장하는 독자적인 경제 체제를 세웠으나, 당초 기대한 노동자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5. 국제적 좌파와 국제적 우파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사회주의 연구
앞선 장들이 동구권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이 사회주의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을 살펴보았다면, 이 장에서는 거꾸로 신자유주의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알려진 우익 싱크 탱크 및 기관들이 거꾸로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사회주의 대안의 연구 및 공론장으로 활용된 사례를 서술한다. 이탈리아의 경제사회문제연구센터(CESES)는 이탈리아 재계가 공산당의 영향력을 약화하고 자본주의를 비호하기 위해 세워진 싱크탱크로, 하이에크, 프리드먼 등의 우익 학자와 몽 펠르랭 협회 등 우익 조직들의 적극적인 참여 하에 기동하였다. 그러나 이 조직은 1950년대 이후제1세계와 제2세계 모두를 부정,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 세력들이 동서의 교류장이자 사상적 공론장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시장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아나키스트, 동구권 망명인사 등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이 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개방적인 논의와 양 진영의 수렴을 지향하였다. CESES는 서구권의 동구권 연구의 한 축으로 활동하면서 이들 연구에 있어 수정주의적 관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서구권에 사회주의 이론과 사상을 보급, 교육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그 후원자인 이탈리아 재계의 눈총을 살 수 밖에 없었고, CESES는 그 역할이 축소되었고 종국에는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유의미한 성과를 내었는데, 좌익 입장에서는 사회주의 대안에 대한 다양한 논의 공론장을 일시적으로나마 세웠고, 우익 입장에서는 이들 공론장에서 나온 학문 성과를 자본주의 유지보수에 활용하는 한편 '동구권이 자본주의를 수용했다'는 자본주의 프로파간다에 활용할 수 있었다.
6. 시장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1970년대 이후 신고전파 경제학은 스스로의 이론적 배경에 대한 비판과 경제 모델 실현을 위한 제도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론적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학파에서의 비판이 있었는데, 이는 신고전파 경제학이 전제한 합리적 개인, 균형 이론 등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논의는 신고전파 경제학과 시장사회주의자들이 지향했던 자유로운 시장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 조건과 그 실현에 있었다. 헝가리의 경우 경쟁적 시장을 달성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장려, 경영자의 기업가정신 고취, 그리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정부와 학자들의 방향이 엇갈렸다. 정부는 분권화와 노동자 자주관리를 위해 기업을 기초노동자연합조직으로 분할, 계약을 통해 경제를 구성하는 계약 사회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경제학계는 이것이 결국 국가주의로 이행할 것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노동자 자주관리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스라피언 경제학, 신좌파 경제학, 오스트리아 학파 등 다양한 학파의 비판을 수용하면서 노동자평의회의 기업가정신 고취, 국유 독점기업의 노동자 통제 등을 주장하였다. 미국에서는 우익 학자들이 신고전파 경제학을 사적 소유의 강제, 작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중앙집권화된 기업을 옹호하는 논리에 적극 활용하는 한편, 노동자 참여, 경제민주주의 등의 다양한 대안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논의들은 현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양측을 극복하고 시장사회주의라는 대안으로 이행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7. 1989년 이후
그러나 1989년 이후 동구권의 급격한 변화는 이러한 시장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가능성을 신자유주의화로 후퇴시켰다. 민중의 급진적인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요구에 맞서 당 관료와 엘리트 계층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이전까지 적으로 삼았던 우익들과 신자유주의라는 동맹을 맺었다. 우익들은 사유화 실현 및 사회주의의 붕괴를 얻었고, 동구권 엘리트들은 권위주의적 정부와 중앙집권 기업에서의 기득권과 사유화를 통한 막대한 부당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좌파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나 대중들은 신자유주의적 해법이 아닌 노동자 자주관리, 독점기업의 해체 등 보다 급진적인 대안을 요구했지만 이러한 요구는 우익 프로파간다와 엘리트의 배신 속에 묵살되었다. 그 결과 보다 진보적인 사회주의로의 개혁이라는 동구권 민중의 목소리는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로 왜곡되었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이 책은 마치 환빠들이 환단고기를 처음 읽었을 때와 같은 뽕을 나에게 주입시켜주었다. 주류 경제학이 우익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현실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좌파적 대안들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했다는 것은 '환'민족이 바이칼호까지 터전으로 삼았다는 사실에 비견할 만 했으며, 동구권의 경제학자들이 신고전파 경제학에 입각해 노동자 자주관리, 노동자평의회를 주장하고 우익들이 자본주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세운 국제기구와 학계를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공론장으로 썼다는 사실은 치우천왕이 만주벌판을 내달리는 것과 같은 통쾌함을 선사해줬다. 게다가 전자는 후자와 달리 역사적 사실이 아닌가!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전공인 '부르주아 학문'에 더욱 힘써 사회주의 건설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어야 겠다는 감상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복해야 할 지점 역시 보여주고 있다. 70년대 이후 동구권의 경제학자들 역시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를 체감하고, 비판 경제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 그 중 하나이다. 주류 경제학의 이론적 배경인 '합리적 개인' '완전경쟁시장'은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하나의 가설을 우익들은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모시며 자본주의를 정당화하고 있지 않나?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현실과 동떨어져 현체제를 옹호하는 주장은 과감히 비판하고 쳐내서 우리의 학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다른 지점은 관료제의 문제이다. 1989년 동구권의 개혁 요구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로의 반동으로 이끈 것은 결국 노멘클라투라 계층이었다. 이들은 한때 혁명을 이끈 엘리트였으나, 관료화되어 기득권을 축적하면서 현실사회주의의 신흥 지배계급으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민중의 개혁에 대한 요구로부터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자본주의 진영과 동맹하여 현실사회주의를 붕괴시켰고, 그 결과 자본주의는 대항마의 붕괴를, 이들은 기득권과 막대한 자본 축적을 누렸다. 결국 권력이 전민중이 아닌 일부에게만 돌아간 결과 그 일부가 기득권화되고, 반동으로 치달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엘리트 계층의 출현은 효율적인 조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견제하고 기득권을 나눌 것인가? 계속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현실사회주의 역사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부분을 본다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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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라피언은 신리카도주의 경제학이라고도 하는데 신고전파의 한계효용이론을 비판하면서 고전적 가치이론에 입각한 경제 분석을 시도한 학파. 대표적인 학자가 피에로 스라파라 스라피언이라고 부름
신좌파 경제학은 신맑스주의 경제학이라고도 하는데 분석맑스주의 경제학, 칼레츠키의 임금주도성장론 등 60-70년대 코민테른 밖의 비판적 맑스주의 경제학을 통칭한다고 알고 있음
혹시 딴데 퍼가도 괜찮겠스빈까?
ㅇㅇ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