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26add4&no=24b0d769e1d32ca73cec86fa11d0283110260b998d7cfa8997b92765238f1b7e84a41d092e18085bdf70204acc1c682e70c6bccab9162e28357bd2296c2596d5668655d7d0fd8f9836831016f214072cab05f7b4ffc598e576b3267971d07229

사실상 핵심인 1부 2장부터 2부까지만 다룸
1.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이건 수많은 논란이 있겠지만 이책에선 하나의 문화혁명으로 정의한다.

''파시즘은 근대적 대중정치의 한 부류로서 특정한 민족 혹은 종족 공동체의 정치ㆍ사회ㆍ문화에 대한 총체적이고 혁명적인 변화를 목표로 삼는다.

이것은 신화적 믿음에 의거해 몰락과 쇠퇴의 위기에 직면한 민족 공동체가 혁명적 변화를 통해 포스트 자유주의 질서속에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 재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시즘이란 명사에 대한 정의의 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 가능하다.

ㅣ극단적 방법을 통해 민족 공동체를 재구성하려는 혁명적 시도.
ㅣㅣ지배적 엘리트의 대중주의
ㅣㅣㅣ대중주의를 추동하는 신화적 차원의 힘
파시즘의 신화는 민족주의의 신화이자 대중주의를 추동하는 신화다.

신화는 실제에 대한 비전 이미지의 마력을 활용한 감정적 힘이다.
소렐에 의하면 신화는 온갖 감정을 촉발하는 직관으로만 파악되는
이미지의 총체다.
바로 이점이 신화가 발휘하는 막대한 힘의 원천이다.

인간은 진위가능성을 무시하고 믿는경향이 존재하며 신화는 이러한 욕구충족의 기계로써 상상력을 자극하여 실제행동에 나서게 한다.

신화는 대중의 질서와 감정에 호소해 지지를 확보하고 이들을 동원하게 하는 힘이다.

소렐에 따르면 신화적 측면은 파시즘의 최소요소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과 호소력은 신화의 상상세계, 감정, 믿음, 즉슨 신화로 인해 촉발 되는 믿음의 수준에 달려있다.

''이러한 신화야말로 특정한 시간적 ,공간적 환경 속에서 어떠한 내용의 주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 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책, 성격, 문화, 의식, 상징등의 수준에서 어떻게 구현 될지 결정된다.

파시즘은 전통적 정치사상과 동일하게 이해될 수 없으며 체제가 아닌 태도로 결정된다. 즉슨 민중숭배의 틀의 신화다.

파시즘이 대중적 지지를 얻은건 파시즘의 신화적 힘으로 이해 되어야한다.
극단적 민족주의 또한 특징이다

파시즘은 인간의 개조 즉슨 파시스트형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인간 개조의 성격을 지닌다.

''민족 공동체의 적을 제거하고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창출함으로
써 실현될 파시즘의 이러한 극단적 민족주의의 신화는 파시즘에 전체주의적 성격, 그리고 극단적 남성중심주의 경향을 부여했을 뿐만아니라 파시즘이 “두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에 범계층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유일한 대중 운동” 이 될 수 있도록 했다. 파시즘이 목표로 하는 파시스트적 인간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정신생활 등 인간의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측면들이 동시에 변화하고그 변화가 권력을 독점한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의해 주도될 때 창출될 수 있다. 파시스트들이 그 성공 여부나 그것이 초래할 폭압적결과를 불문하고 스스로 자신의 운동을 전체주의적이라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파시스트적 인간형은 민족의 방어와 부활을 위해 단호하며 강건하고 폭력과 죽음을두려워하지 않는 전사적 인간으로 상정된 남성이다. 또한 파시즘은계급 간의 분열과 대립이 사라지고 계급 정체성 대신 민족 정체성으로 단합할 민족 공동체 건설의 신화를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직업 집단과 모든 사회 계급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합의' 의 파시즘 정의의 마지막 핵심 개념은 혁명이다.파시즘이 새로운 질서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띤 민족 공동체의 건설을 목표로 삼는다고 할 때 그것은 혁명적인 성격 또한 지닌다. 이러한 파시스트 민족 공동체는 과거의 특정한 시점에 존재했던 그어떤 것도 아니며 현재의 모습 또한 아니다. 그것은 새롭게 창조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반혁명과 다르며, 마찬가지로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려는 자유주의적 · 권위주의적 보수주의와도 궤를 달리한다.물론 파시즘의 혁명적 성격을 가리는 장막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보수주의 세력(예컨대 군대, 교회, 관료 집단, 대자본가 등)과 결탁했기 때문이며, 다른 한핀으로는 파시즘이 민족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시즘과 보수주의의 결탁은 공동의 적을제거하기 위한 일시적인 전략적 타협으로 보아야 한다. 권력을 장악한 다음 파시즘은 가능하면 보수주의 세력을 제거하려 했거나,여의치 않을 경우 이들과 늘 대립과 경쟁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수주의 세력 역시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파시즘과 연합하지만, 집권에 성공한 보수주의는 파시즘을 제거하거나 순화시킨다. 또한 파시즘이 과거의 이른바 건전하고 영광스러운시대를 환기시키고 역사적인 영웅들을 찬양할 때 그것은 그 시대로되돌아가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이를 발판 삼아 다시 한번 민족의 위대한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신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달리 말해 “특정 민족의 역사적 과거로부터 선별된순간들은 그것이 갖는 신화적 호소력 때문에 현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 활용된 것이다”. 이 점에서 파시즘은 근대와반근대, 혁명과 보수, 과거와 미래와 같은 '양극을 가진 기계' 의 모습을 띠지만, 이 기계가 만들어내는 상품은 언제나 미래라는 상표를 달고 나타난다.

파시즘에 대한 '새로운 합의' 가 기존의 파시즘 해석과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파시즘을 하나의 독자적인 혁명으로 규정한 데있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전통 모두에서 혁명은 인류의 진보와 연결된 '좋은 혁명' 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시즘과 같은 파국적 결과를 가져온 현상에 혁명의 자격을 부
여하는 일은 마치 이단처럼 여기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파시즘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20세기식 대중 동원 방식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여 지배 엘리트의 교체를 이룩했다. 권력을 장악한 파시즘은 모든 사회 집단을 포괄하는 대중 조직을 만들고 교육 제도를 개편했으며 다양한 매체를 동원하여 대중의 삶의 모든 측면들을 재구성하기 위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선을 와해시키려 했다.

'새로운 합의' 의 입장에서 볼 때 혁명적 현상인 파시즘은 또한 명백히 근대적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파시즘은 근대화의 위협에 직면한 일부 세릭의 반(反)근대주의로 치부될 수 없다. 물론 파시즘이 근대성이라 부를 수 있는 것 가운데 일부를 거부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파시즘이 자유주의, 사회주의, 의회민주주의, 합리주의 등 계몽주의의 유산과 단절하려 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파시즘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수용했으며 새로운 정보 기술을 비롯한 근대 과학 문명의 성과를 환영했다. 이러한 근대적 성격과 반근대적 성격의 공존이 파시즘과 근대성의 관계에 대한 혼란을 초래한 주요 배경이었다. 파시즘이 흔히 반동적 근대주의', 혹은 '근대주의적 반(反)근대주의처럼 서로 모순된 조어로 규정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파시즘의 근대성에 대한 태도를 규정한 것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민족 공동체의 유토피아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파시즘이 거부하고자 한 것은 그와 같은 민족 공동체 창조에 방해가 되는 근대성의 측면들이지 근대성 자체가 아니다. 파시즘은 근대화 과정과 함께 대두한 것으로서 근대성의 소용돌이' 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하여 인간들에게 근대화 과정 자체를 지배할 수 있는능력과 힘을 부여하려 한 정치적 근대주의의 한 유형으로 이해될수 있다. 이처럼 근대화 과정과 그 결과 자체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려는시도, 이른바 '근대성의 정복' 이 택할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가 파시즘이다. 요컨대 '새로운 합의' 의 관점에서 볼 때 파시즘은 독자적인 유형의 근대성을 추구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며, 이런 점에서 파시즘은 일종의 '대안적 근대주의' 6'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합의' 는 파시즘의 근대 혁명적 성격을 명확히 함으로써 파시즘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다. 이제 더 이상 파시즘은특정 계급의 대리인이나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키려는 반혁명 세력으로 평가될 수 없다. 또한 파시즘은 더 이상 반대 세력의 제거에만집착하는 허무주의적 파괴주의로 간주될 수 없다.

오히려 파시즘은 '창조적 허무주의 creative nihilism 의 일종으로서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할 민족 공동체의 유토피아를 창설하기위해 그것에 방해되는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의 대상으로 삼았다고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파시즘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민족 공동체의 창조적 부활로 실현될 새로운 유형의사회를 꿈꾸는 ‘제3의 길', 혹은 '제3의 세력' 가운데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합의' 가 파악한 제3의 길로서의 파시스트 혁명의 독창성이 가장 잘 드러난 영역은 그것이 시도한 경제, 사회 분야에서의변화가 아니다. 파시즘의 유기체적 민족관은 전체적으로 볼 때 기존의 사회 관계를 혁신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기때문이다. 사회 계층은 각 계층이 자신에게 적합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유기체의 활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파시즘이 사회주의를 비롯한 평등주의적 경향에 강하게 반발한 것은 그것이 사회계층 사이의 대립을 자극하고 궁극적으로는 평준화를 추구함으로써 민족을 병들게 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파시즘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파시즘은 권위주의적 국가의 지휘 아래 사회 계층 사이의 극심한 갈등을 없애고 자본가와 노동자가 조화롭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민족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신화가 실현될 것이라 판단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작동을 다른 방식으로 원활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파시즘과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규정한 것은 무엇보다도 파시스트적 민족 공동체의 혁명적 부활이라는 신화의 실현 여부였던 것이다.

근본적인 면에서 기존의 경제, 사회 질서를 사실상 유지하면서사회 계층 간의 갈등과 대립을 없애고 민족의 영광스러운 부활의신화를 이루기 위해 파시즘이 무엇보다 주력한 영역은 정치 문화와사회 문화였다. 파시즘은 이와 같은 문화 영역에서의 혁신을 통해인간의 가치관과 도덕을 개조하는 의식 혁명, 도덕 혁명, 혹은 정신혁명을 이룰 수 있으며, 한마디로 민족의 대의에 헌신하는 파시스트적 인간형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파시즘이 새로운교의의 열렬한 교도를 창출해내는 세속 종교와 같은 방식을 활용하거나, 거대한 대중 집회, 의식, 다양한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대중을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 개조하고, 또 그와 같은 일에 이들의 동
의와 참여를 이끌어 내는 작업에 골몰한 것은 바로 문화의 전반적인 변혁을 위한 것이다. 이점에서 '새로운 합의'가 도출한 파시즘의 정체성은 '문화혁명'으로 잘 요약될수 있다.''
대충 커찮아서 본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