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파시슴이 문화와 공존 불가능하단건 오랜 통념중 하나였다.
그러나 파시슴이 정치,사회,문화를 혁신하여 새로운 민족 공동체를 만들려는 신화로 이해할 때. 파시즘 연구를 더이상 정치사, 경제사로 한정 시킬수는 없게 되었다.
즉슨 파시즘의 언어와 수사는 대중의 이성보단 감정,정서에 호소하고 이를 발판으로 동원과 지지를 이끌어낸다.
이제 파시슴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파시즘의 문화 흔적은 뭐든 진지한 탐구의 대상으로 생각해야됐다.
그러나 이러한 탐구는 그자체에 함정을 가지고 있다.
바로 파시슴의 정치적 의도와 무관한 문학적ㆍ심미적ㆍ상징적 측면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흐를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렇기에 강한 정치적 텍스트를 비정치화 시킬 위험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파시슴의 심미적 요소에 매료되어 미학의 정치화를 망각하고 파시슴 전체를 심미화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파시슴의 연구 방식이 에초에 반파시슴이였고 그로 발생한 오류들을 감안하면 이런 새로운 합의들의 가치는 유의미하다.
바로 파시슴이 어떻게 대중의 지지를 받았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한점에서.
그러나 여전히 ''모든것을 이해하는것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것''이라는 말처럼 새로운 해석은 파시슴의 마력에 빨려들어갈 위험이 있다.
파시슴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시도한 주목할 만한 성과는 파시슴의 측면을 선동과 선전에 집중한 기존 해석과 달리 파시슴과 대중의 완전한 일체감을 설명함으로써 기존해석의 단점을 극복한다.
그러나 여전히 파시슴은 독제적 강압으로 이뤄졌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다시말해 지지와 거부가 혼재되는 특이한 상황이다.
아마도 내일은 보수주의와 파시슴이 올라갈것
월스 기고 기한이 오늘 자정까지라 음.. 여위치 않다면 <지면상 한계로 싣지 못한 좋은 글들>란에 싣는게 어떠할지..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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