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후반의 세계 인구 중 적어도 3분의 1의 인구에게 공식적인 철학적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마르크스 자신의 활동이 당대에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점이 여러 세대들에게 그토록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중 앞에서 연설한적이 거의 없으며 연설했을 때에도 그다지 매력적인 웅변술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적어도 20대까지 일개의 청년으로서 그는 오로지 그가 구상했던 광범위한 체계의 이론을 세밀하게 다듬는 데 깊이 몰두 했으며, 따라서 그는 일차적으로는 한 사람의 사상가였다. 대중들의 지위기 그의 이론적 관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는 거의 대중들과 접촉하지 않았다. 또한 그의 많은 저서들도 그가 살던 시대에는 폭넖게 읽혀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당대의 저명한 학자였던 밀의 사회와 정치 문제를 다룬 저작들 속에 마르크스의 이름은 하나도 없다. 더욱이 마르크스 자신이 전적으로 독창적이라 할 근거도 없다. 그의 경제 사상 대부분은 리카도에서 연원하며 그의 몇 가지 철학적 가정들과 방법들도 헤겔과 포이어바흐에게 발견된다. 또한 그의 계급투쟁적 역사관은 생시몽에게서, 노동가치설은 로크에게서 빌려온 것 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독창적인 면모는 그가 이러한 여러 가지 이론들로부터 하나의 통합적 사상체계를 증류해 냈고 그의 사상 체계를 사회분석의 강력한 도구로 삼았단 것이다.
(중간 파트인 마르크스 삶과 영향은 님들이 더잘알이라 생각해 건너뜀)
역사의 여러 시대의 마르크스 변증법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미 그의 기초 이론을 제시 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여러 가지면에서 독창적이라 생각했다. 그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새로운 시도이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첫째, 계급들의 존재는 단지 생산의 발전에 따르는 역사의 여러 단계와 깊이 관련된다. 둘째,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탈리아 독재를 초래한다. 셋째 이 독재는 모든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구성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런던에서 그는 [공산당 선언]에 나타난 그의 강령을 좀 더 과학적으로 세련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는 [자본론]의 서문에서 <현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의 법칙을 폭로하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운동 법칙이 바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되었다.
5252오마에 속은거냐고 킹무갓키짱 대신 소크라테스부터 포모까지 맑스 파트 연재가 되겠습니다 이연재는 언제든지 사진으로 대체 될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연재가 3개가 됐는데 하나라도 끝낼수 있을까?!
아 이거 실수로 끌올한 점 양해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