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회적 투쟁과 사회 혁명에서 대중과 아나키스트의 역할
사회 혁명의 핵심적 세력은 도시 노동계급, 농민 대중, 그리고 노동 인텔리겐치아의 일부이다.
참고 : 노동 인텔리겐치아는 도시 ·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방식으로 착취되고 억압받고 있지만, 인텔리겐치아들은 노동자와 농민에 비해 단결력이 약한 경향이 있다. 이것은 부르주아지가 인텔리겐치아에게 노동자와 농민에 비해 경제적 특권을 허용하여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텔리겐치아 계층의 가장 불우한 일부만이 사회 혁명에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다.
아나키스트들과 국가주의 정당들은 대중이 사회혁명과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하여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볼셰비키와 그와 유사한 경향들은 대중이 오직 파괴적인 혁명 본능만을 가지고 있어,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작업은 국가의 정부를 구성하는 당 중앙위원회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아나키스트들은 노동 대중들이 거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이 가능성의 실현을 막고 억제하는 장애물을 치우기를 열망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가 가장 핵심적인 장애물이라 믿는다. 국가는 대중의 권리를 빼앗고,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 기능을 앗아간다. 국가는 미래 “언젠가”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국가는 노동자 혁명의 첫날, 노동자들의 손으로 파괴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어떠한 형태로도 다시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스스로 운영하는 노동자 조직의 단결한 연방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 체계는 일당독재와 같은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 조직을 배격할 것이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소비에트, 공장 위원회를 설치과정은 사회적 해방의 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의 서글픈 오류는, 적절한 시기에 국가 권력의 조직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시정부에 대해 그러했고, 그에 뒤이은 볼셰비키 권력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볼셰비키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부르주아 국가를 재조직했고, 그 국가를 지지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말살했다. 볼셰비키는 국가가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향한 첫 걸음을 상징하던 소비에트와 공장위원회의 자유로운 체계를 무너트렸다.
아나키스트의 행동은 혁명 전과 혁명 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 지점 모두에서 아나키스트들은 투쟁의 목표와 그 목표를 실현할 방법에 대한 명확한 인지를 가진 조직된 세력으로써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혁명 전 시기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근본적 과업은 노동자와 농민들을 사회혁명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공식적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권위와 국가를 거부하는 것에서, 노동 해방의 완성을 선포하는 것에서 아나키즘은 계급투쟁의 철저한 원칙을 강조해야 한다. 아나키즘은 대중의 계급의식과 혁명적 비타협성을 갖추어나가야 한다.
특히 계급적 비타협성에 대해, 반민주주의에 대해,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의 반국가주의에 대해 대중에 대한 자유의지주의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대중적 아나키스트 조직 역시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의 작업이 필요하다. 한 편으로는 혁명적 노동자와 농민들을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이론적 기반에 따라 묶어낼 필요가 있다. (구체적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조직 건설) 다른 한 편으로는, 혁명적 노동자와 농민들을 소비와 생산이라는 경제적 기반에 따라 다시 묶어낼 필요가 있다. (혁명적 노동자와 농민의 생산 조직, 그리고 노동자와 자유농민의 협동조직) 노동자와 농민 계급이 생산과 소비에 기초하여 조직되고, 이 조직에 혁명적 아나키스트가 침투할 때, 이 조직은 사회 혁명의 가장 강한 지점이 될 것이다.
이 조직들이 아나키스트적 방법론으로 의식화되고 조직될수록, 이 조직들이 혁명의 순간 비타협적이고 창조적인 의지를 더 많이 드러낼 것이다.
러시아의 노동계급에 관하여 말하자면, 대중의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요구를 묶어두었던 볼셰비키 독재 8년간, 권력의 본성이 어느 때보다 잘 드러났다. 러시아 노동계급은 그 안에 아나키스트 대중운동 구성에 관한 거대한 잠재력을 숨기고 있었다. 조직된 아나키스트 투사들은 즉시 온 힘을 다해 그 요구와 가능성을 만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요구와 가능성이 개량주의로 타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 권력에 의해 부서지고, 그로부터 탈출할 길을 찾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혁명적 잠재력을 가진 빈농 조직과도 함께 해야 한다.
혁명시기 아나키스트의 역할은 자유의지주의적 이상에 대한 선전선동만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삶은 이런 저런 사상들의 선전을 위한 경기장이 아니다. 삶은 투쟁과 전략과 경제 · 사회생활의 운영을 위한 사상적 열망의 장이다.
다른 그 어떤 사상보다도, 아나키즘은 혁명을 선도하는 사상이 되어야 한다. 아나키즘적 이론에 근거할 때만 사회 혁명이 완전한 노동의 해방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 시기 아나키즘의 이상이 선도적 위치를 잡는 것은, 그 이론을 따른 사건의 방향성을 요한다. 하지만 이론적 추동력은 국가주의 당들의 정치적 지도력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지도력은 결과적으로 국가 권력만을 낳을 뿐이다.
아나키즘은 정치적 권력이나 독재 따위를 원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의 가장 큰 열망은 대중이 사회혁명으로 가는 바른 길을 택하는 것을,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사회 혁명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혁명의 방향성과 목표, 즉 자유로운 노동자의 이름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철폐하는 것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러시아 혁명의 경험이 보여주었듯, 이 과업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수많은 당들이 운동의 방향을 사회 혁명에 반하는 방향으로 지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아나키즘적 경향성을 통해 사회 혁명에 있어 스스로를 깊게 표현한다 하더라도, 이 경향성은 분산되고, 통일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자유의지주의적 이상으로 추동된 조직을, 아나키즘적 지향과 목표를 혁명에서 유지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조직을 만들지 못한 채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론적 추동력은 오직 이 목적만을 위해 대중이 건설한 집단을 통해서 표현되어야만 한다. 아나키스트 조직이 그 집단을 정확히 구성한다.
이 집단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의무는 혁명의 시기에 매우 크다.
아나키스트 조직은 그 주도권을 드러내고, 사회 혁명의 모든 영역에 총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혁명의 지향과 총체적 성격을 결정하는 과정에, 혁명의 긍정적 과업들에, 새로운 생산과 소비에, 농민의 문제에, 이 모든 영역에 참여해야 한다.
모든 문제들에 대해 대중은 아나키스트들로부터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혁명과 사회 구조에 관한 이론을 선언하는 순간부터,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질문에 대하여 명확하게 답변하고, 그 질문들을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일반이론과 연관 짓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으로 헌신할 의무가 생긴다.
아나키스트 총동맹과 아나키스트 운동은,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사회 혁명의 이론적 추동력으로써 자신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7. 이행기
사회주의 정당들은 ‘이행기’라는 단어를 “구체제 질서를 떨쳐내고 새로운 경제적 · 사회적 체계를 건설하는데(이 체계를 통해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은 이루어지지지 않지만) 필요한” 절대적 시기라 이해한다. 그렇기에 모든 사회주의 정당의 최소강령(그 목적을 자본주의 사회의 완전한 변혁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마주하는 즉각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행기 강령이다. 이를테면, 사회주의적 기회주의자들의 민주주의 강령이나, 공산주의자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령 같은 것 말이다.
이행기 강령들은 노동자의 이상, 즉 독립성과 자유와 평등을 완전히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정한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체계의 기구들인 국가적 강제, 생산수단의 사적 소우, 관료제 등을 당의 강령적 목표에 따라 남길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강령들을 반대해왔다. 아나키스트들은 착취와 대중 강제의 원칙을 유지하는 이행기 체계를 건설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노예제를 건설할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정치적 최소강령을 확립하는 대신, 아나키스트들은 언제나 즉각적 사회혁명을 주장해왔다. 사회 혁명을 통해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경제적, 사회적 특권을 박탈하고, 생산수단과 경제 · 사회생활의 기능들을 노동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나키스트들은 이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행기에 대한 개념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해도 구체제적 요소를 갖춘 어떠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도 분명히 반사회적이다. 이행기는 언제나 구체제적 요소들이 다시금 힘을 찾고 사회를 퇴행시키는 위협이 되어왔다.
이에 대한 가장 혹독한 예시는 볼셰비키들이 러시아에서 확립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라 할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완전한 코뮌주의를 향한 이행기적 단계에 불과해야 한다. 현실에서 이 단계는 늘 그래왔듯, 노동자와 농민이 제일 바닥에 있는 계급사회의 재건으로 귀결되었다.
코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의 중점은 모든 개인들에게 혁명의 첫 날, 그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기반을 쟁취하고, 개인의 평등한 관계에 관한 원칙을 확립하는 것까지 포괄해야 한다. 풍족함에 대한 문제는 원칙의 문제가 아닌 기술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
새로운 사회가 세워지고 유지되어야 할 근본적 원칙은 관계의 평등에 관한 원칙과 노동자의 자유와 독립성에 관한 원칙이다. 이 원칙은 사회 혁명을 위해 일어난 대중의 가장 중요한 근본적 요구를 대변한다.
사회혁명이 노동자의 패배로 끝나서 다시 투쟁과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되건, 아니면 노동자의 승리로 끝나서 노동자가 토지, 생산수단, 사회적 기능의 수단을 손에 쥐는 경우가 되건, 어떤 경우에라도 노동자들은 자유로운 사회의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한 번 시작되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완성해나가는 것이 코뮌주의 사회의 건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생산과 사회의 기능들을 노동자가 장악하는 것은 국가의 시대와 비국가의 시대를 정확하게 경계 짓는 선이 될 것이다.
만약 아나키즘이 고통 받는 대중의 대변자가 되고 싶다면, 사회 혁명의 깃발이 되고 싶다면, 아나키즘은 옛 체제의 흔적 위에 강령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행기라는 기회주의적 경향들처럼 근본적 원칙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을 가장 날카롭게 발전시키고, 적용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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