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인터내셔널은 로자가 활동했었고 1차 대전 발발로 인해 무너진 조직으로 유명한데, 이 조직은 한국과도 연관이 꽤 깊었음.

1차 대전 이후 2인터를 재건하려고 했었던 사람들이 1919년 8월 스위스 루체른에서 대회를 가졌었는데, 이때 임시정부의 조소앙이 한국 사회당 명의로 대회 참가와 발언을 요청하는 문서를 2인터에 보냈음.
(이 한국 사회당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만든 유령 정당이고,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은 1918년 이동휘가 러시아에서 만든 한인사회당임.)

그런데 2인터에서는 정당의 실제 유무 등 그런 것들을 확인해보지는 않았는지 참가 승인 전문을 보냈고, 이를 통해 조소앙은 이관용과 함께 대회에 참가해서 '한국 독립 승인 결의안'을 제출하였음.
이 결의안은 임시정부가 미국식의 자본주의도, 소련식의 공산주의도 아닌 삼균주의적인 성격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중도파 인사였던 조소앙의 사상을 잘 엿볼 수 있음.

이 결의안은 한국 대표단의 호소가 성공을 거두어, 25개국 대표들의 협의를 거쳐 정식으로 통과되었는데, 이는 한국의 독립이 국제 회의에서 최초로 승인된 역사적인 사건이었음.
파리강화회의 등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이 한국을 투명인간으로 취급할 때, 사회주의는 역시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

그러나 2인터를 재건하려던 사람들의 노력은 1923년 2인터와 2.5인터의 통합 등 192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루어졌지만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2차 대전 종전 이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창립되기 전까지, 2인터는 활동을 멈추게 되었음.
(이후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도 김철의 혁신 정당 활동으로 인해, 한국과 긴밀한 연관을 맺게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