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의 서평이니 참고하며 봐주시길 ㅎㅎ,,

국가와 혁명

국가와 혁명에서는 기회주의는 무엇이고 마르크스주의의 본류는 무엇인가? 그것을 해명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마르크스 사후 50년에 '기회주의', 혹은 '사회배외주의'라 부르는 카우츠키류의 사회민주주의를 비판한다. 

국가는 계급대립에 따른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자 표현이다. 국가는 계급대립이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곳에서,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때에,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때에, 객관적으로 화해될 수 없는 한에서 생겨난다. (1장 29p) 

레닌은 계급 간의 대립 (부르주아 vs 프롤레타리아)이 화해할 수 있었으면 국가 또한 탄생했을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여 노동자를 착취, 억압하는 기구이며 그 수단은 상비군과 관료제이다. 여기에 함의된 것은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계급은 국가를 통해 화해할 수 있다'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생각이다. 레닌은 책의 초반부터 <국가란, 계급대립에 따른 화해불가능성의 산물이자 표현> 이라 하며 기회주의적 생각을 배제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나서 제일 먼저 생산수단을 국유화한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트서의 자기 자신을 지양하고 모든 계급차이와 계급대립을 지양하며 국가로서의 국가도 지양한다. ~~ 더 이상 억압해야 할 사회 계급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동시에 계급 지배는 물론 이제까지 무정부적 생산에서 비롯되었던 개개인의 생존 투쟁이 사라지고 아울러 그와 같은 생존 투쟁에서 생겨났던 투쟁과 폭력도 사라지게 된다. 또한 동시에 억압되어야 할 어떠한 것도, 즉 특수한 억압권력인 국가를 필요로 하는 어떠한 것도, 즉 특수한 억압권력인 국가를 필요로 하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회관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은 한 영역 한 영역에서 차츰 불필요해지고 그렇게 되면 국가는 스스로 조락한다. 인간에 대한 통치 대신 사물에 대한 관리와 생산 과정에 대한 지도가 등장한다. 국가는 '폐지'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사멸한다. (1장 42p)

레닌은 여기에서 국가의 폐지를 주장하는 아나키스트와 국가의 사멸이라는 엥겔스의 주장과의 차이를 명백히 지적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국가는 사멸한다는' 주장을 통해 국가란 변화하기 때문에 혁명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주장하는 기회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명백히 반박하고 있다. 국가의 사멸 과정은 얼마 동안 지속될 것인가? 레닌은 국가가 언제쯤 사멸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계급투쟁 이론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그 이전에 부르주아지가 만들어낸 것이며, 일반적으로 말해 부르주아지가 용인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계급투쟁만 인정하는 사람은 아직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계급투쟁 이론에 국한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삭감하고 왜곡하는 것이며 부르주아지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계급투쟁을 인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독재'까지 인정하는 사람만이 마르크스주의자이다. (2장 68p) 

이 부분이 진정으로 레닌의 사상을 일축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레닌에 따르면,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와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은 국가기구를 파괴하는 폭력혁명과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한 태도이다. 기회주의자, 개량주의자, 카우츠키파는 사회주의혁명이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가권력 장악에 의해 완수된다고 본다. 하지만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료제와 상비군으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파괴하는 것 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는 기존의 국가기구를 장악하는 것만으로는 계급과 국가의 소멸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것이 설혹 프롤레타리아독재, 즉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고 해도 국가인 한에서 억압과 지배를 행하는 기관이고 결국은 인간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코뮌은 사회주의혁명에 의하여 '마침내 발견된', 노동의 경제적 해방을 수핼할 수 있는 형태이다. 코뮌은 부르주아 국가기구를 분쇄하려는 사회주의혁명의 첫 시도이며 분쇄된 것을 대채할 수 있고 또 반드시 대체하여하 할 '마침내 발견된' 정치형태이다. (3장 100p) 

코뮌의 경험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분석을 바탕으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대의기관 없는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없듯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도 민주주의인 한 대의기관이 없을 수 없다. 또한 관료제를 단번에 남김없이 폐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공상에 불과하다. 의회제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대표기관들을 수다 떠는 장소에서 일하는 단체로 바꾸어놓는 데 있다. 한마디로, 기존의 국가기구를 근원적으로 다른 종류의 기구로 바꿔놓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가장 순조롭게 발전한다고 할 때, 우리는 민주공화제에서 어느 정도 완전한 민주주의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는 언제나 자본주의적 착취에 의해 정해진 협소한 틀 안에 한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실제로는 언제나 소수를 위한, 유산계급만을 위한, 부자들만을 위한 민주주의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는 언제나 고대 그리스 공화국들에 있었던 자유, 즉 노예 소유자들을 위한 자유와 거의 같은 것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로의 발전은 저절로 이행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서만 진행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민주주의이자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가 되지만, 다른 한편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억압자와 착취자, 자본가에 대해 일련의 자유를 제거함으로써 그들을 억제해야만 한다.(5장 148p)

레닌은 자본주의사회의 민주주의를 위선적인 민주주의, 즉 유산계급만을 위한 민주주의로 규정하고, 노동자 계급의 해방 투쟁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인식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주주의에서는 계급적 억압의 형태가 유산계급에게 프롤레타리아트보다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이 같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부터 벗어나 계속적으로 발전하는 것, 흔히 자유주의적 교수들과 프티부르주아적 기회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욱더 많은 민주주의로' 라는 단순히 똑바로 평탄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정의 내렸다. 레닌은 자본주의적 착취자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독재를 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은 그 자체의 기초 위에서 발전한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방금 나온 공산주의 사회이다. 그러므로 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면에서, 즉 경제적, 도덕적, 정신적인 면에서 그 모태인 낡은 사회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5장 155p) 

레닌은 '국가는 사멸한다'는 문제를 다루며 마르크스의 서술을 실마리로 공산주의 사회의 초기단계(이것을 보통 사회주의라고 한다)와 그 보다 더 높은 단계를 구별했다. 초기단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 원칙은 노동에 따른 분배이다. 그러나 개인 간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분배 원리는 여전히 부르주아적 평등, 즉 사실상의 불평등, 불공정을 전제한다. 평등하지 않은 노동량에 대해 평등한 양의 생산물을 주는 부르주아적 권리를 아직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는 국가가 완전히 사멸한 사회이다. 이 사회는 개인들이 노예처럼 분업에 종속되는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이 사라진 후에야,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생활의 제1차적 요구가 된 후에야,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증가하고 협동적 부가 모든 원천에서 넘쳐 흐르게 된 후에야, 즉 공산주의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협소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기 깃발에 "누구나 능력에 따라, 누구에게나 필요에 따라!"라고 쓸 수 있게 될 것이다.(5장 160p)

레닌이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는 과연 실현 가능한가? <국가와 혁명>의 한 대목이 답이 될 것 같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정치 투쟁의 전체 역사에서 출발하여 국가는 소멸되어야 하며, 그 소멸의 과도적 형태는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일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는 미래의 정치 형태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 역사에 대한 정확한 관찰에 국한해 이를 분석함으로써 1851년의 경험에서 얻은, 즉, 사태는 부르주아 국가기구의 파괴로 나아가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마찬가지로 레닌이 제시한 공산주의 사회의 높은 단계에 대한 서술도 1917년의 러시아 혁명 과정에 대한 경험에서 이끌어낸 결론일 뿐 미래의 정치 형태에 대한 예언이나 발견은 아니라고 보는 게 공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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