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씌어진 여행과 사건들은 1936년과 1937년에 있었던 것으로, 원고는 1937년 7월 내가 사는 베이징의 성벽 밖에서 일본군의 포성이 울려 퍼지던 때에 탈고되었다. 중국에서 울려 퍼진 7월의 이 포성으로, 나중에 2차 세계대전으로 휩쓸려 들어간 8년간의 중일전쟁(1937~45)이 시작되었다. 이 포성은 또한 중국에서 공산당이 거둔 궁극적인 승리를 예고하는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세계의 내부와 과거 ‘공산 진영’으로 불리던 외부의 세력 균형에 다 같이 심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 책은 시간적·공간적 측면 모두에서 최악의 파국을 맞기 직전에 있었던, 서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고립되어 있는 한 투쟁 세력을 다룬 것이다. 국제연맹은 1931~33년 일본의 만주 정복을 저지하지 못하면서 붕괴되었다. 1936년 서구 ‘연합국’들은 아직 나폴레옹의 알에 불과하던 히틀러에게 한 차례의 교전도 없이 라인란트를 재점령하도록 허용했다. 또한 이들은 무솔리니가 에티오피아를 장악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보고만 있었다. ‘연합국’들은 뒤이어 중립주의라는 위선적인 구실 아래 스페인에 대해 ‘무기금수’ 조치를 취함으로써, 수천 명의 나치 및 파시스트 군대와 항공기의 공공연한 지원을 받은 프랑코 주도의 반동적인 장군들에 대항하는 공화국의 자위 수단을 빼앗아 버렸다.
이처럼 그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 간의 동맹 체결을 조장했다. 이 동맹은 표면상으로는 소련을 겨냥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서유럽 전체를 정복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1938년에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병탄이 허용되었다. 이어 히틀러는 체임벌린(Chamberlain)과 달라디에(Daladier)로부터 ‘우리 시대의 평화’를 유지하는 대가로 체코슬로바키아를 넘겨받았다. 그 보상으로 이들에게 곧 돌아온 것은 히틀러와 스탈린간의 불가침조약 체결이었다.
이 책에서 다룬 ‘여행’을 떠나던 시기에 중국을 둘러싸고 있던 국제적인 환경은 이와 같았다. 붕괴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내부 상황은 이 책의 본문에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1936년까지 나는 이미 중국에 7년간 거주하고 있었고, 그동안 외국 특파원으로 중국의 여러 지역을 광범하게 여행하면서 중국어도 조금 익히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중국에 관해 쓴 가장 긴 르포르타주이다. 만약 이 책이 대부분의 신문·잡지 기사보다 더 유용한 자료로 쓰인다면 그것은 이 책의 내용이 너무나 소멸되기 쉬운 뉴스를 다룬 ‘특종’일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남을 역사적 사실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공감 어린 주목을 받았던 또 다른 이유는 서구 열강이 이기적인 동기에서 중국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던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서구 열강은 중국에서 새로운 민족주의 기운이 대두되어 일본을 계속 수렁에 빠뜨림으로써 일본이 그 진정한 목표인, 그들의 각 식민지를 절대로 넘볼 수 없도록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공산당이 효과적인 항일운동에 필요한 민족주의적인 지도력을 실제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다. 그때 이후 미국의 정책 입안 자세가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은, 이 책의 요약된 내용이 처음으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와 ‘라이프’에 실렸던 때를 돌이켜 보면 대체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상황도 이 책이 오랫동안 유용하게 쓰일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내가 마오쩌둥과 다른 지도자들을 만났을 때는 오랜 세월 동안 계속되던 전투가 소강상태를 보여 시기적으로는 더할 수 없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나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전례 없는 솔직한 태도로, 어느 외국인 기자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개인적, 일반적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1939년 내가 마오쩌둥을 회견하기 위해 두 번째로 찾아간 후 중구 서북 지역의 모든 공산당 근거지는, 뒤로는 국민당군에 의해 봉쇄되었고 게릴라전을 벌이던 지역은 일본군의 점령지로 둘러싸여 단절되고 말았다. 그 이후 다시 5년 동안 어느 외국인 기자도 공산당의 수도인 옌안에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은 그동안 계속 유일무이한 자료로 남게 되었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은 물론 당파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이긴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 역사를 이룩한 사람들이 몸으로 부딪치며 산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중국인이 아닌 독자뿐만 아니라 중국 인민 전체 공산당 지도자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중국인에게도, 중국공산당에 대한 확실한 설명을 처음으로 전해 주었으며, 또 3천 년의 중국 역사상 가장 철저한 사회혁명을 성취시키기 위한 공산당의 장기간에 걸친 투쟁을 상호연관된 맥락 속에서 역시 처음으로 전달해 주었다. 이 책은 중국에서 많은 판을 거듭하면서 발행되었고, 수만 부의 중국어 번역본 중 일부분은 게릴라 활동 지구에서 완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출판되었다.
나는 혹시 이 책에서 빌려다 쓸 수 있을지도 모를, 국제적인 활용가치가 있는 교훈들을 제공하는 데에 나 자신이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이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은 내가 30살의 나이로 함께 어울려 지낼 특권을 누리면서 수많은 것을 깨우쳐 받았던(또는 깨우칠 기회를 제공했던), 비범한 젊은 남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저 옮겨 놓았을 뿐이다.
‘중국의 붉은 별’이 영국에서 처음 출판되었던 1937년에는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내용을 입증할 만한 증빙자료가 사실상 하나도 없었다. 오늘날에는 외국의 많은 중국 문제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정치적 색채를 지닌 중국인 학자들의 도움이나 지도 아래 중요성과 질적인 수준 면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 많은 연구서를 내놓았다. 풍부해진 새로운 자료를 활용하고 또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뒤늦게 깨달은 현명한 판단을 곁들인다면, 이 책의 여러 가지 한계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개선과 더불어 원저에 본래부터 담겨 있던 가치는 부득이 상실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쇄상의 오식과 틀린 철자, 세부적인 사실적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 이외에는 원저를 그대로 살리겠다는 것이 나의 의도였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은 완벽하게 실행될 수 없었고, 결국 본래의 의도를 실현하는 데에서 아래와 같은 형태로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붉은 별’은 전시 상태에서 탈고되었기 때문에 나는 1판의 교정쇄를 살펴보거나 바로잡을 기회가 없었다. 그 이후의 여러 판도 지금까지 손을 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이해를 구할 만한 한 가지 실수를 꼽는다면, 나의 취재노트에는 당시 처음 들어 본 인명들이 많이 적혀 있었는데 그 인명에 늘 한자를 병기해 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인명을 영어로 표음식 철자 표기한 것이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에 비추어 볼 때는 그릇된 철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오기는 이번에 모두 한꺼번에 바로잡았다.(바로잡혔으리라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한 통일 외에도 나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이는 많은 부분을 없애고, 요즘 독자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앞서 현재형으로 쓴 동사 표현을 대폭 과거형으로 바꾸었다. 다른 사람의 증언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바꾸어 쓴 부분은 현재 이용할 수 있는 더 신빙성 있는 정보와 상충되는 경우라도 ‘중요한’ 역사적 자료를 함부로 바꾸는 일을 피하기 위해 대체로 원저의 표현을 그대로 유지했다.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자료 중 부정확한 것으로 뚜렷이 입증된 몇 가지 사례는 확인된 오류를 그대로 살려두지 않고 삭제하거나 바로잡았다. 어떤 경우이든 독자들은 이 수정판의 인물 약전이나 주해를 참조하며 본문의 일부 사실이나 견해를 보충하거나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이곳저곳에서, 세월의 흐름 속에 또는 당초부터 애매하게 썼던 탓으로 뜻이 분명하지 않게 느껴지는 구절을 발견하고(자신의 옛 시절을 돌이켜 볼 때 느껴지는 언짢은 기분 같은 것을 품으면서) 그런 부분을 다시 손질했다. 모든 사건이나 중요한 여행 기록, 회견 내용, 마오쩌둥 전기를 포함한 약전류 등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그대로 놓아두었다.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는 몇몇 문제들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스스럼 없이 단축하거나 요약 또는 삭제함으로써, 연표나 끝맺음말, 새로운 각주, 몇가지 미공개 문서, 장별 주석을 추가할 수 있었고, 아울러 이 책에 처음 소개된 정말 비범한 인물들의 초기 전기의 속편 형태로서 몇몇 흥미진진한 역사적 교훈도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구절이나 심지어 페이지 전체를 삭제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앞뒤의 내용을 연결시키는 구절을 새로 만들어 끼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새로운 구절 삽입’은 내가 1937년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내용에 국한했으며, 각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권말자료는 물론 그러한 제한에 구애받지 않았다. 부피가 큰 이런 책에서는 내가 장 몇 개를 통째로 빼 버린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또한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개정이란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나처럼 이 책의 주제와 깊숙이 얽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나만큼 고심하지 않으면서 독자의 편의 위주로 몇 개의 장을 통째로 선뜻 삭제할 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이 책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이 베풀어 준 도움과 또 그들의 의견이나 사진을 인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데 대해, 그중에서도 특히 마오쩌둥에게 경의와 감사의 뜻을 전한다. 또한 이젠 오랜 발자국처럼 된 이 자료를 다시 한 번 검토해 준 존 K. 페어뱅크(John K. Fairbank), 우리가 1930년대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시각에 비추어 가면서 이 책을 재평가해 준 피터 J. 세이볼트(Peter J. Seybolt), 각고의 학문적 노력으로 이 책을 이탈리아 어로 번역해서 이번 개정 노력의 자극제가 되었던 1965년판(Stella roosa sullar Cina)을 출판한 엔리카 콜로티 피스첼(Enrica Collotti Pischel), 그리고 전반적인 도움과 격려를 베풀어 준 메리 하트코트, 트루디 샤퍼, 로이스 휠러에게 경의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1968년 2월 14일, 제네바에서
에드가 스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