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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대 학문으로서의 한국사는 당연하지만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시작함. 그래서 당연히 시각은 개판. 보통은 한국 민족의식을 깎아내린다 말 많이하는데 난 그냥 개인적으로 근대 문명대 전근대 사회에 대한 우월성에 대한 확립(벨 에포크때잖어)이 주요 이유라고 봄. 학자들은 우리 생각만큼 정치에 개입하는 경우가 잘 없고 그럴 여유도 없음. (단적으로 이병도의 스승인 쓰다 소치키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부정했다고 어용 학자드립치는데 얘는 일본서기에도 똑같은 소리했다가 기소당해서 금고형까지 선고받음. 학자라서 집행은 되지 않았지만) 


2. 당연히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발이 이어짐. 아니거든요, 한국사도 안뒤쳐졌거든요! 보통 이에 대한 시각의 효시는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1937)가 그 시초임. 자본주의 맹아론도 여기에서 시작된거. 즉 일본인이 한국의 역사가 정체,타율성이었다는 논리에 대한 반론이 바로 민족주의 사학의 시작이라고 보면 됨.


3. 1960년경쯤되면 한국에서도 드디어 일본측의 연구성과를 능가할만한 연구들이 많이 나오게 됨에 따라서 한국사 연구의 주도권이 한반도(남+북)에게 넘어오게 됨. 이 시기에 접어들면 이병도등의 노력으로 고대사에서 식민사학을 제거하는 노력이 이루어짐. (근데 10여년 전에는 이병도가 친일파라는 개소리가 많이 나옴. 하지만 주류학계에서 이병도의 주장을 인용하지 않는 이유는 음운에 너무 기대는 부정확성 + '지나친 국뽕'이 원인임.) 


4. 그럼 이런 민족주의 주장을 왜 우파쪽에서 배척하느냐인데 당연하지만 민족주의 사학의 처음이자 끝은 '민족의 정통성'임. 이는 곧 반민족행위를 한 자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짐. 친일인명사전을 둘러싼 논란 생각하면 매우 쉬움. 우파진영에서 이를 방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들이 신성시여기는 인물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임. (근데 우파 사학자가 친일이라는건 좀 극단적인게 사실 우파적인 드립치는 사람치고 본업에 충실한 사람은 거의 없음) 


5. 근데 또 웃기는게 이 바닥에서 선동질로 먹고사는 사람의 선봉인 이덕일의 박사학위논문은 아나키스트 연구라는거.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