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노동자 혁명의 구호를 인민혁명의 구호로 대체했다. 이보다 더 부끄러운 원칙상의 투항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것은 파시스트들의 약장수 술책을 모방하기 위해 맑스주의 원칙을 배신한 것에 불과하다. 어떠한 간교한 술책이나 인용문의 나열이나 역사적 사실의 조작도 이 진실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달 전 이 문제에 대해 말했던 것을 지금 반복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위대한 혁명은 인민 또는 일국 혁명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혁명 계급 주위로 한 나라의 모든 강력하고 창조적인 세력들이 단합하여 사회를 재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구호가 아니라 혁명에 대한 사회학적 설명이다. 더욱이 이 설명에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구호로 등장할 경우 인민혁명은 공허한 약장수 술책이며 파시스트들과 경쟁하는 수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파시스트 슈트라써는 이렇게 말한다: 인민의 95%는 혁명에 관심이 있으므로 이 혁명은 계급혁명이 아니라 바로 인민혁명이다. 그리고 이제 독일공산당 지도자 텔만은 이 파시스트의 장단에 맞장구를 치고 있다. 노동자 공산주의자는 노동자 파시스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물론 인구의 98%까지는 아니라도 95%는 금융자본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착취는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착취자, 반착취자, 반의반 착취자 등이 있다. 이 체계를 통해서만 수퍼 착취자인 금융자본은 대다수 인민을 지배한다. 나라가 진정으로 새로운 계급 주위로 결집하여 재건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적 재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계급이 스스로를 “인민”이나 “국민”으로 해소시키지 않고 자신의 노동자 혁명 강령을 개발하여 소자본가 계급에게 자본가 국가 아니면 노동자 국가의 양자택일을 강요할 경우에만 이 재건이 가능하다. 인민혁명 구호는 광범위한 노동자들 뿐 아니라 소자본가 대중의 의식을 무디게 한다. 이 결과 이들이 “인민”으로 구성된 부르조아 체제 속에 자신들을 적응시켜 자신들의 해방을 지연시키도록 만든다. 독일의 지금 상황에서 “인민혁명” 구호는 맑스주의와 파시즘의 경계를 없애버리고 노동자와 소자본가 계급 일부를 파시즘 이데올로기 속에 해소시킨다. 그래서 이들이 파시즘과 노동자 혁명의 양자택일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누가 집권하든 결국 인민혁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레프 트로츠키,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레프 트로츠키,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칼 라덱 허쉴 - dc App
어디까지가 노동자일까
빛의 스펙트럼에 구분선이 없다고 붉은색이란 말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고, 진화의 사슬로 긴밀히 연연결되어 있는 생물종들을 생물학자들은 분류하여 연구하는데.
비추는 왜 박누
인민 개념 자체는 굉장한 성취임. 노동계급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광범위한 피착취 계급을 포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