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및 오류
로자같은 위대한 인물의 사상과 실천은 우리같이 범속한 수준으로는 평가가 불가능하다. 오직 레닌과 같은 위대한 혁명가의 사상과 관점으로써만이 그 정치적 오류와 한계를 비판할 수 있다. 레닌은 로자의 정치적 한계나 오류를 비판할 때조차도 로자의 혁명적 입장에 대한 찬사를 전제하고 있었다. “독수리는 때로는 닭보다 낮게 날지만, 닭은 결코 독수리의 높이에 이를 수 없다. 그녀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독수리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는 말은 지금도 유명한 이야기다.
다음에 살펴볼 것이지만, 로자의 정치적 약점인 ‘민족자결권’에 대해서 비판할 때조차도 “전반적으로 유니우스의 소책자는 훌륭한 마르스크스주의 저작이며, 십중팔구 그 결함은 아마 어느 정도는 우연히 발생한 것일 것이다”(레닌, 《유니우스 팸플릿에 대하여》, 아고라출판사, 양효식 옮김)라는 전제를 잊지 않고 있다.
1) (초)중앙집중주의론
1902년 러시아 2차 당대회 이후 당은 당원의 자격 조건과 당의 성격을 둘러싸고 엄청난 내분에 휩싸였다. 이 논쟁은 당을 지지자 정도로 하자는 마르토프가 중심이 된 멘셰비키와 더 엄격한 규율을 갖추고 당의 한 부서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당으로 하자는 레닌 중심의 볼셰비키로 갈라졌다. 이는 당원의 자격조건뿐만 아니라 좀 더 대중적인 정당으로 할 것인지 전위정당으로 할 것인지 당의 성격을 둘러싼 차이도 있었다.(물론 레닌이 말한 전위정당도 대중적 전위정당으로의 발전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 논쟁은 러시아 내부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주된 관심 사항이었다. 당시 독일 사민당 내에서 저명한 인사들 대다수가 멘셰비키의 입장을 지지했다. 로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회주의자 탄압법을 격파하고 사실상 합법성을 가진 대중정당으로 발전한 사회민주당의 입장에서 레닌이 주장하는 당의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1904년 로자는 레닌의 당조직론에 대해 “극단적인 중앙집권주의”, “무자비한 중앙집권주의”로 간주하며 신랄하게 비난을 했다.
일반적으로 사회민주당의 전술정책은 고안, 계획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전략 정책은 일련의 전진해가는 자생적 계급투쟁 행위의 산물이다. 의식화되지 않은 대중이 의식화된 소수를 앞서며, 역사과정의 논리가 그 과정에 참여하는 인간의 주관적 논리에 앞선다. 이것은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조직이 보수적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얻은 바로는, 거의 모든 시기에 노동운동은 당이 총력을 기울려 일할 새로운 지평들을 열러간다는 것이다. 오히려 당의 지도조직들은 노동운동이 보다 넓은 지평으로 전진해가는 것을 가로막으려, 그 노동운동에 족쇄를 채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 레닌식의 초중앙집권주의(Ultra Centralism)은 창조성과 자발성을 질식시키기 쉬운 상하명령식 발상에 다름아니다. 초중앙집권주의는 결코 긍정적이지도 창조적이지도 못한 생각이다. 레닌의 관심은 당의 활동을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당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당의 활동을 하나로 통합시키기보다는 결박시키게 된다.(로자 룩셈부르크, 《레닌주의냐 마르크스주의냐》, 두레)
로자는 심지어 “사회민주당의 전술정책은 고안, 계획될 수없는” “자생적 계급투쟁 행위의 산물”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주장 때문에 로자는 “자발성주의자”라는 비난마저 듣게 된 것이다. 《대중파업론》에서도 로자는 러시아에서 분출된 혁명을 보면서 “사회민주당의 임무가 대중파업을 기술적으로 준비하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전체 운동에 대한 정치적 지도라는 점이 자명해진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 지도를 강조하면서도 기술적 지도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로자는 “사회주의 정당의 지도조직이 보수적 역할을 하게 된다”며 독일 사회민주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일반화하려고 했다.
1920년에 쓴 저작에서 레닌은 러시아 혁명의 교훈에 대해 말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기본적 특성들을 그 이상으로 과장하여 “확장할 경우에는 엄청난 오류에 빠질 것이다”(《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돌베개)라고 러시아 혁명의 모든 점을 일반화하고 보편화하는 데서 오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레닌은 “역사의 현 시점에서, 모든 나라에게 가깝고도 불가피한 그들 미래의 어떤 것, 그것도 무척 본질적인 어떤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러시아 모델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레닌에게 있어서 혁명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무엇이고 전 세계 혁명운동이 놓치지 말아야할 핵심 교훈은 무엇인가?
지금 확실히 누구나 깨닫게 된 것은 만일 우리 당에 가장 엄격하고 정말로 강철같은 규율이 없었더라면, 또는 노동계급 전체 대중으로부터, 곧 후진계층을 지도하거나 그들을 자신들과 나란히 가도록 할 수 있었던 사려 깊고 정직하고 헌신적이며 유력한 노동계급 내의 모든 분자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볼셰비키가 단 2개월 반도 권력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레닌, 같은 책)
“절대적인 중앙집중화와 가장 엄격한 규율이라는 것이 부르조아지에 대한 승리의 한 본질적 조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레닌은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을 볼셰비키형 전위정당으로 무장시키려고 노력했다.
레닌은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독일 사민당이 보여준 배외주의적 입장으로 전쟁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로자 룩셈부르크 등 혁명적 분파들이 이때 일찌감치 당을 독립하여 혁명적 당을 만들어 투쟁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혁명적 분파들은 실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와 당내 이데올로기 투쟁을 했지만 그들을 당 밖으로 축출하여 당의 사상적 독자성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은 문제였다. 또한 레닌은 카우츠키를 비롯한 중앙파 역시도 이데올로기적으로 폭로하고 당적으로 일찌감치 분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볼셰비키는 비합법을 중심에 두면서도 합법과 반합법적 활동 등을 탄력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때문에 당은 혁명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적 힘을 발휘하고 당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18년 독일 혁명의 상황에서 스파르타쿠스단과 독일공산당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독일공산당의 창당 자체가 볼셰비키형 정당으로의 전환점일 수 있으나 너무 때늦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칼 카우츠키, 레오 요기헤스가 사회민주당의 반동배들에게 타살을 당하고 독일 혁명이 실패하고 난 뒤에야 볼셰비키형 전위정당으로의 무장의 필요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로자와 레닌의 당논쟁은 러시아 혁명의 승리에 비해 로자와 독일 혁명의 비극적 패배로 명확하게 누구의 주장이 진리인지 명확해졌다.
혁명 상황에서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백색테러에 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당지도부들 역시 비합운동을 위한 기술을 거의 배우지 못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레닌의 볼셰비키가 1917년 “모든 권력을 쏘비에트에게!”를 내걸었던 시점에서도 볼셰비키는 때 이른 혁명 시도를 자제시킬 수 있었던 반면에 독일 공산당은 그러지 못했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끊임없이 통일전선론 같은 당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논의하고 현실투쟁에 적용했음에 비해 로자와 독일 공산당은 그러지 못했다. 공장세포론 같은 당조직론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과 치열한 사상적 통일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도 스파르타쿠스단과 독일 공산당은 그러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진실로 혁명적 운동이 범한 오류는 현명한 중앙위원회가 절대적으로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로자 룩셈부르크, 《레닌주의냐 마르크스주의냐》, 박영옥 역, 두레)
로자를 “자발성주의자”로 낙인찍히게 만든 유명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나중에 평의회주의자들의 논리로도 자주 사용되고, 더 나아가 쏘비에트 비방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이용됐다. 그런데 로자는 “현명한 중앙위원회”와 “진실로 혁명적 운동”이 서로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로자는 지도자와 대중을 분리시켰다.
로자와 독일 공산당의 비극은 “현명한 중앙위원회”가 없었던 것에서 비롯된다. “현명한 중앙위원회”나 더 나아가 이 중앙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당전체가 비록 때로는 오류를 범하고 시행착오를 거친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상호 단련되고 성숙해지면서 혁명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승리할 수 있고, 승리 이후 승리를 굳건하게 할 수 있다.
특히 '강력한 중앙위원회'에 대한 민주적 부정이 19년 봉기의 오류로 나타난것에서 크게 동의하는 바이다. 최소한의 단단한 지도부 없이는 변혁운동은 성공하지 못한다.
비추가 많아 첨언하지만 이 글은 아주 짧은 한계를 발췌해 가저온거라 지적할 뿐 절대다수의 내용은 엥겔스의 후예라는 극찬을 담고있다
갤주가 베른슈타인 깐 문구들, 거기에 대한 극찬이 담긴 글을 공유했으면 추천 500배였을 것 - dc App
독일혁명의 비극으로 누구주장이 진리인지 들어났다고? 고립된 소수로서 아무런 대중적 기반도 없던 공산당인데 무장혁명 추진시키려던 볼셰비키들의 책임이지 그리고 당투표로 결정된 사안을 지도자격 인물이 물려버리면 독재지 뭐임?
당연히 정세인식이 안되었던 독일볼셰비키들의 책임이지. 그리고 그러한 볼셰비키들을 현명하게 지도할 중앙이<부재>했다는게 아니라 로자와 리프크네히트의 공산주의당 중앙 조직시도가 너무 늦었으며, 통제하지도 못한게 애석하다는거지
노정협의 글은 로자의 정세인식을 백번 긍정하는 한편, '레닌은 17년때 너무 급작스러운 볼셰비키들의 혁명시도를 진정시킬수있었는데 로자는 그럴수없었나'를 분석한거임
레닌과 볼셰비키는 끊임없이 통일전선론 같은 당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논의하고 현실투쟁에 적용했음에 비해 로자와 독일 공산당은 그러지 못했다. 공장세포론 같은 당조직론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과 치열한 사상적 통일을 위한 투쟁에 있어서도 스파르타쿠스단과 독일 공산당은 그러지 못했다.
여기서 '그러지 못했다'는 공장평의회와 세포조직, 그리고 사상적 단일화를 '안했다거나 방기했다'가 아닌 그런 평의회와 조직들을 조직해놓고 그들의 자발성을 너무 믿은 덕에 KPD중앙이 모험적 봉기를 실행함을 '앎'에도 그들을 믿고 죽음에 이른것이 안타깝다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