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민족자결론의 문제

로자는 국제주의적 관점에 섰지만 민족자결권에 대해 반대했다. 민족자결주의가 폴란드에서 대두된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사회주의를 향한 목표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민족자결권에 대한 비판은 로자의 가장 큰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로자가 1915년 4월에 ‘유니우스’라는 가명으로 감옥에서 쓴《유니우스 팜플렛》은 1916년 발행됐다. 로자의 관점은 《인터나치오날레》에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레닌은 이 입장을 비판했다.

이 야만의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 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민족적 이익이란 것도 근로인민 대중을 그들의 화해할 수 없는 적인 제국주의를 위해 복무하도록 몰아가는 기만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 지금의 전쟁(제국주의 전쟁: 필자 주)에 대한 규정을 제국주의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전쟁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여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운동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 더구나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나 반식민지가 민족 전쟁을 벌이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식민지와 반식민지(중국, 터키, 페르시아)이 인구는 거의 십억 가까이 된다. 즉 지구 인구의 반이 넘는다. 이들 나라에서 민족해방 운동은 이미 매우 강력하거나, 성장해서 성숙해가고 있다. 모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 식민지의 민족해방 정치는 불가피하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식민지의 민족 전쟁으로 계속될 것이다.

로자의 ‘민족자결권’에 대한 반대는 이후에는 훨씬 더 완강해졌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에 쓴 이 글은 로자의 사후인 1922년에야 공식 출간됐다.

러시아 제국의 다양한 민족들이 자민족의 운명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권리-“심지어 러시아로부터의 정부분리권을 요구할 수 있는 정도까지”-를 갖는다는 정식(Formula)은 밀류코프와 케렌스키의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과정에서도 레닌과 그의 동지들에 의해 특별한 슬로건으로 완고하게 재천명되었다. 민족자결권에 대한 이 같은 정식은 10월 혁명 이후 볼셰비키의 국내정책에서 핵심축을 이루고 있었다 … 레닌과 그 일파가 그 슬로건을 내세우며 보여준 완고함과 경직성은 놀랄 만한 것이다 … 각 민족의 민주적 정치활동이 실제로 가장 값있고 중요한 사회주의 정책의 토대를 포함하고 있는 반면에, 레닌과 볼셰비키의 그 유명한 ‘민족자결권’은 공허한 쁘띠부르조아의 허장성세이며 사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모순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 레닌과 그 일파는 ‘분리’까지 포함하여 민족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이 핀란드 ․ 우크라이나 ․ 폴란드 ․ 리투아니아 ․ 발틱 국가들 ․ 코카서스 등을 러시아 혁명에 대한 신념에 찬 맹방으로 변모시킬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의 결과를 목도해야만 했다. 이들 ‘민족’은 차례로 새로 인정된 자유를, 러시아 혁명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보면서 그것에 반대하는 독일 제국주의와 동맹하는 데 사용했으며, 독일의 후견 아래 러시아에 대한 반혁명의 기치를 내걸기도 했다.(로자 룩셈부르크, 《러시아 혁명》, 박영옥 역, 두레)

과연 국제주의는 모든 민족자결(병합 반대와 분리의 자유)을 부정해야 하는가? 로자의 국제주의는 ‘순수’국제주의였다. 로자는 국제주의를 식민지 해방투쟁과 긴밀하게 연결시키지 못했다. 로자는 민족자결권에 대해 “공허한 쁘띠부르조아의 허장성세이며 사기”라고 했는데, 레닌은 지구 인구의 반이 넘는 식민지, 반식민지의 문제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레닌과 볼셰비키의 민족자결에 대한 완강하고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지지했기 때문에 전 세계의 식민지, 반식민지 인민들은 러시아 혁명에 열광하고 민족해방 투쟁을 통해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로자는 “레닌과 그 일파”가 민족의 분리의 자유를 포함하여 민족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으로 인해 이들 민족들이 “새로 인정된 자유”를 러시아 혁명을 반대하고 독일 제국주의에 동맹하면서 반혁명의 기치를 내거는 계기도 했다고 했다. 로자의 이러한 입장은 지극히 일면적인 관점이다. 우선 이는 전 세계 식민지, 반식민지에 끼친 혁명적인 영향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하다. 또한 민족자결권 부여를 러시아 혁명에 반대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도 근거가 약하다. 만약 혁명 러시아가 민족자결권을 반대하면서 로자 식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편입시키려 했다면 오히려 민족감정과 권리에 상처를 받은 이들 민족들은 러시아 혁명을 더욱 더 격렬하게 반대했을 것이다. 또한 역사는 로자가 예로 들었던 대부분이 민족들이 쏘비에트에 자발적으로 편입이 되거나 사회주의 국가가 된 것으로 로자의 주장이 오류임을 입증했다. 쏘비에트연방(쏘련) 자체가 수많은 민족들의 결합체이기도 했다. 역사는 민족자결권 원칙이 얼마나 현실주의적이었고 중요한 원칙이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