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핏줄과 언어, 사회경제적 공동체의 통일성을 징표로 하는 민족은 역사의 변화에 따라 전근대적 민족, 근대적 민족, 현대적 민족으로 나뉘게 됨.

전근대적 민족이란 원시사회가 붕괴된 이후부터 자본주의의 확립 이전까지의, 즉 노예제와 봉건제가 존재하던 시대의 민족을 말함.

이 시기는 오직 핏줄을 중심으로 하는 인종(혹은 종족)에 기반을 두고 발달이 덜한 전근대적인 사회경제적 공동체 속에서 그 인종(혹은 종족)의 언어를 중심으로 한 초보적인 민족 공동체의식이 지배하던 상태라고 볼 수 있음.

근대적 민족은 자본주의가 수립되어 가며 상품화폐경제와 자본, 임노동관계의 발달과 더불어 기존의 봉건적인 사회가 내부로부터 붕괴하며 공동체 내부 종족들간의 차이와 상호폐쇄성, 고립분산성이 파괴됨에 따라 점차 단일한 사회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이를 이어 언어를 상부구조로 한 공동체 내부가 문화와 이념들로 통일되어 감으로써 형성되었음.

이 근대적 민족은 초기에는 부르주아계급이 주도함으로써 봉건제를 무너트리고 근대적 부르주아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등 진보적인 역할을 맡았지만 시대가 점차 제국주의 시대로 편입되며 근대적 민족 개념은 국가 내부의 노동계급을 탄압하기 위한 반동적인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음.

하지만 식민지 종속국에선 역설적으로 민족자본가의 주 이념으로서 외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반대하는 역할을 맡게되었음. 그래서 이 경우에는 반동적인 측면이 아닌 진보적인 측면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음. 인도의 간디와 네루, 중국의 손문, 우리나라의 3·1 운동 주역들이 대표적인 예시.

그러나 제국주의의 침탈이 점점 노골화되며 식민지사회의 발전이 기형화됨으로써 이마저도 반동적으로 변질되고 말음. 중국 국민당의 장개석이 대표적인 예시.

아무튼 근대적 민족 개념이 변질됨에 따라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은 부르주아 민족주의에서 근로민중이 중심이 되어 광범위한 각계각층을 통일시키는 반제민족해방운동으로 고양, 현대적 민족개념이 등장하게 됨.

여기서는 자본주의 상호간 또는 제국주의적 지배를 위한 근대적이고 침략적인 민족으로서가 아닌 민족의 자결과 독립을 인정하고 자주적인 입장에서의 민족 관계를 정립하게 되었음.

잠깐 우리의 민족문제를 고찰하자면 임진왜란을 계기로 우리 민중은 민족의 자주성을 바탕으로한 반외세투쟁을 힘차게 전개했고 이후 이는 양반지배층, 즉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농민들의 계급투쟁(진주농민반란, 갑오농민전쟁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고 나아가 농업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혁명(이양법, 정묘법 등)의 주체로서 민중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맹아적 기반을 만들었음.

이러한 세 방면의 투쟁을 가능하게 한 사상적 기초는 바로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바로 지난날의 의존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선조들의 자주정신과 자주정신에 기반한 투쟁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음.

즉, 사회, 인간, 집단 속에서 의존, 억압, 예속을 벗어나 자주, 자립, 주체를 확고히 세우지 않으면 이러한 형식의 민족해방운동은 도저히 발전할 수 없었을 거임.

이를 바탕으로 자주성에 기반한 우리 민족이 형성되었고, 이는 과학적이고 목적의식적인 운동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이 되기도 했지. 이의 결과물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론, 즉 소위 말하는 자민통이론이 탄생하게 된거고.(이북의 사상도 마찬가지)

아무튼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한반도 남반부에는 미국 제국주의의 침탈이 시작되며 남한사회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굴레를 깨뜨리고 자주·민주·통일의 과업을 수행해야 할 것을 자각해야 할 것임.

그러니 남한의 모든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단체들과 정당, 민중들이 민족민주전선의 깃발 아래 총집결하여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