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백하게 고백한다. 나는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나에게 사회주의는 모든 것이다. 거의 종교이다. 나는 호흡을 멈추지 않는 한 포기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주장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주장은 무가치한 나의 생애에서 최후의 호흡에 이르기까지 유일한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명백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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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인 상황과 의회주의 이념의 힘을 인식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연구의 일관된 관심은 정치적 및 국가철학적인 경향들의 이념적 기초에 있음을 여기서 거듭 밝히는 바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속에 여전히 합리적인 독재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 직접적인 행동에 관한 이론은 모두 많던 적던 의식적으로 비합리적 철학에 입각하고 있다. 이 철학이 볼셰비키의 지배에서 나타난 현실 속에서는 정치생활에서 매우 다양한 사조와 경향들이 동시에 병행하여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비록 볼셰비키 정부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무정부주의자를 탄압하였다고는 하지만, 볼셰비키의 주장을 사실상 움직이고 있는 사상의 복합체 속에는 확실히 아나르코생디칼리슴적인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볼셰비키가 무정부주의를 근절하기 위하여 그 정치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마치 크롬웰의 수평파에 대한 탄압이 그와 그들과의 관계를 폐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정신사적인 결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러시아의 토양 위에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나타났다는 것은, 아마도 거기에서는 프롤레타리아적 사고가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여전히 아주 당연한 것으로서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던 서구적인 전통의 모든 조건, 모든 정신적 및 교양적인 관념들로부터 결정적으로 해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공식적인 것이 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론은 역사 발전을 의식한 합리주의가 어떻게 권력행사를 추구하게 되었는가 하는데 대한 하나의 좋은 예가 될 것이며, 또한 심정이나 이론이나 조직상 및 행정상의 집행 속에서도 1793년의 자코뱅적 독재와의 수많은 유사성이 인정되며, 소비에트 정부가 「플로레트 칼트」(?rcoletkult)라는 이름으로 창실한 교육과 교양의 조직 전체도 급진적인교육 독재의 현저한 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써는 왜 바로 러시아에서 근대대도시의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사상이 그렇게 지배적일 수 있었던가 하는 집은 실명되지 아니한다. 그 원인은 폭리행사의 새로운, 비한리주의적인 동기가 함께 작용하고 있있다.는 데에 있다. 극단직인 것으로부터 반대의 것으로 전환하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합리주의가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 일반에 대한 새로운 평가, 토론에 대한 모든 신념을 배제하는동시에 교육독재에 의해서 인간을 토론으로 성숙하는 것도 거부하는, 본능과 직감에대한 새로운 신념이 함께 작용하였다는 데에 있다.


직접적 폭력행사의 이론에 관한 문헌 중 독일에 알려진 것은 로베르트 미헬즈가번역한 (그린베르그 [Grinberg] 사회주의 주요 지작 총서에 있는) 엔리코 페리(Finrico Ferri)의『혁명적 방법』(Revolutionire Methoule) 뿐이다. 다음에 논술하는 것은 정신사적인 관련을가장 명백하게 제시하는 조르주 소렐(Georges Storel)의 『폭력론』(Reflexions sur lanviolence)51)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책은 그 밖에도 무수한 독장적인 역사적 및 칠학적착상들의 우수함을 지니고 있으며, 정신적 선조로서 프루동 · 바쿠닌 그리고 베르그송"에대한 신봉을 밝히고 있다. 그의 영향력은 사람들이 첫눈에 알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크며, 베르그송이 유행에 뒤져있다고 해서 확실히 다 끝나버린 것은 아니다.52) 베네데토크로체는 소렐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는 마르크스주의적인 환상에 하나의 새로운 형식을부여했으며, 노동자계급에서의 그 민주적인 사상은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러시아와 이탈리아에서의 사건들 이후에 사람들은 그것을 더 이상 그렇게 결정적인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소렐의 폭력에 관한 고찰의 근지에 있는 것은하나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생활의 이론이며, 그것은 베르그송으로부터 채택되고, 두사람의 무정부주의자인 프루동과 바쿠닌의 영향 아래 사회생활의 문제들에 진용되있다.


프루동과 바쿠닌에게 있어서 무정부주의란, 일종의 모든 종류의 기적 통일성에대한 투쟁이며, 현대 국가의 중앙집권화된 획일성에 대한 투쟁이며, 의회주의적 직업 정치가들에 대한 투쟁이며, 관료제도, 군대와 경찰에 대한 투쟁이며, 형이상학적 중앙집권제도로서 인정되는 신의 신앙에 대한 투쟁을 의미한다. 신과 국가라는 두 개념의 유사성은왕정복고 철학의 영향 아래 있던 프루동의 마음 속에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그는 이철학에 하나의 혁명적, 반국가직이며 반신학적인 방향전환을 제시하였는데, 바쿠닌은이것을 최종적인 귀결로까지 인도하였다.53) 구체적인 개별성, 생활의 사회적 인실성은모든 포괄적인 체계 속에서 억압된다. 계몽시대의 열광적인 통일에의 요구는 현대 민주주의의 통일과 동일성 못지않게 전제적이다. 통일성은 노예제이다. 모든 전제적인 제도는 현대 민주주의에서처럼 보통선거권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과는 관계없이, 중앙집권주의와 권위에 입각하고 있다.54) 바쿠닌은 신과 국가에 대한 이와 같은 투쟁에 주지주의(主「表)와 아울러 교양의 전통적 형식 일반에 대한 투쟁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그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오성을 원용하는 것 속에 하나의 운동의 머리가 되고 두뇌가 되는 요구를. 즉 또한 하나의 새로운 권위를 인정한다. 과학이라 할지라도 지배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생명이 아니며 아무것도 창조해 내지 못한다. 과학은 구성하고 보존하나난지 보편적인 것, 추상적인 것만을 이해할 뿐이며 개인의 개별적인 풍만함을 그의 주상화의 제단 위에 바치고 있다. 예술은 인류의 생활을 위해 학문보다 더 중요하다. 바쿠닌의 그러한 표현들은 베르그송의 생각과 놀랍게도 일치하며 정당하게 중요시되었다.55) 사람들은 노동조합과 그것의 독특한 투쟁방법, 그리고 특히 동맹파업의 의미를 노동자계급의 직접적, 내재적인 생활 자체로부터 인식하였다. 그리하여 프루동과 바쿠닌은 생디칼리슴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러한 전통에서 소렐은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따온 논의에 입각하여 그의 사상을 형성하였다. 그 논의의 핵심에는 신화의 정치이론이 존재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합리주의와 그 독재에 대한 가장 심한 대립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직접적·능동적 결단의 이론이기 때문에 균형화, 공개토론 그리고 의회주의와 같은 관념들로 어우러진 전체 집단의 상대적인 합리주의와의 극심한 대립을 의미한다.


위대한 역사상의 활동력이 되는 모든 행동하는 힘과 영웅주의의 힘은 신화에의 견인력속에 있다. 소렐에게 있어서 그러한 신화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즉 그리스인에게 있어서의 명예와 명성에 대한 관념, 혹은 고대 기독교에 있어서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기대, 프랑스 대혁명 기간 동안의 덕(vertu)과 혁명의 자유에 대한 신념, 그리고 1813년의 독일 해방전쟁 때의 국민적인 감격 등이다. 한 민족이나 다른 사회적 집단이 하나의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신화의 역사적인 계기가 나타났는가의 여부에 관한 그 판단의 기준은 신화 속에 있다. 위대한 열광, 위대한 도덕적인 결단과 위대한 신화는 어떤 이성적 판단이나 합목적적인 고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본능의 깊이에서 생겨난다. 열광한 대중은 직접적인 직관에 의해서 신화적 관념을 창조한다. 이 관념이야말로 그들의 활력을 추진시키며, 순교에의 힘과 아울러 폭력행사에 대한 용기를 그들에게 부여한다. 이와 같이해서만 한 민족이나 한 계급은 세계사의 추진력이 된다. 이러한 관념이 결여된 곳에서는 어떠한 사회적·정치적인 권력도 유지될 수 없으며, 또한 어떠한 기계적인 장치도 사회생활의 새로운 조류가 해방된 때에 그 방파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오늘날 어디에서 신화에 대한 이러한 능력과 생명력이 실제로 생동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능력은 현대의 부르주아지, 즉 금전과 소유에 대한 근심과 불안 때문에 타락하고, 회의론 · 상대주의 그리고 의회주의에 의해서 정신적으로 손상된 사회계층에서는 물론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계층의 지배형태인 민주주의는 단지 하나의 선동적인 금권정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늘날 그 위대한 신화의 담당자는 누구인가? 소렐은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적 대중만이 하나의 신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이 믿고 있는 총동맹파업 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총동맹파업이 오늘날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프롤레타리아가 어떠한 신념을 여기에 결부시키며, 그 파업이 어떤 행위와 희생을 위해 프롤레타리아를 감격시키며, 그 파업이 하나의 새로운 도덕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의 여부에 비한다면 훨씬 덜 중요하다. 이리하여 총동맹파업에 대한 신념과 그 믿음을 통해서 생기는 모든 사회적 · 경제적 활동의 엄청난 파멸은 따라서 사회주의의 생명에 속한다. 이 신념은 대중 자체로부터, 산업 프롤레타리아 생활의 직접적인 것으로부터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인이나 문필가가 발견한 유토피아로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즉 소렐에 의하면, 유토피아는 하나의 합리주의 정신의 산물이며, 기계적인 도식에 따라서 생활을 외부로부터 지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의 관점에서는 모든 자에게 이익을 부여하고, 좋은 장사를 하도록 만드는 평화적 협약이라는 부르주아적인 이상은 비겁한 주지주의의 소산이 되며, 토론하고 상담하고 토의하는 것은 신화에 대한 하나의 배신행위로 간주되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위대한 감격에 대한 배신행위로 보인다. 균형의 상업적인 관념에는 또 하나의 관념이 대립한다. 즉 피비린내 나는 · 결정적인 · 파괴적인 결전의 호전적인 관념이다. 의회주의적 입헌주의에 대하여 이러한 관념은 1848년에는 두 가지의 측면에서 나타났다. 즉 보수적인 의미에서의 전통적 질서라는 측면에서는 스페인의 가톨릭교도인 도노소코르테스*가, 그리고 급진적인 아나르코 생디칼리슴의 측면에서는 프루동이 대표로서 나타난다. 양자는 모두 결단을 요구하였다. 이 스페인 사람의 사상 전체는 커다란 투쟁(lagran contienda), 눈앞에 임박한 가공할 파국을 핵심으로서 전개한다. 그리고 이 파국은 토론으로 일관하는 자유주의의 형이상학적 나약함에 의해서만 부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프루동의 사상에 대해서 여기서는 그의 『전쟁과 평화』(La Guerre et la Paix)라는 저서가 특징적인데, 그는 이 책에서 반대자를 근절하는 나폴레옹적 전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투쟁에 필요한 모든 폭력행사와 권리침해는, 프루동에 의하면 역사적재가를 얻은 것이다. 의회주의적으로 처리가능한 상대적 대립 대신에, 이제 절대적 대립이 나타난다. 「철저한 부정과 절대적인 긍정의 날이 도래한다. 의회의 토론도 결코 이것을 저지할 수는 없다. 본능에 유혹된 민중은 궤변가의 연단을 때려 부숴 버릴 것이다.56)- 이러한 도노소의 말은 모두 무정부주의자는 민중의 본능 편에 있다는 점만이 다를 뿐 소렐의 표현 그대로이다. 도노소에 있어서 급진적인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적인 토론보다도 위대한 그 무엇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종적인 문제들에 거슬러 올라가서 근본적인 문제들에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하나의 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루동은 1848년 당시 그가 가장 인구에 회자한 사회주의자이며, 몽탈랑베르가 그에 반대하여 유명한 의회 연설을 하였기 때문에 반대자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근본적인 원칙을 철저하게 대표하였기 때문에 반대자인 것이다. 이 위대한 스페인 사람은 정통주의자의 우둔한 단견과 부르주아지의 비겁한 교활함에 실망하였다. 그는 사회주의에서만 그가 본능(el instinto)이라고 부른 것을 인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오랫동안 모든 당파가 사회주의를 위하여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의 대립은 다시 정신적인 거리를 두고 자주 종말론적인 긴장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으로 구축된 긴장과는 달리, 여기서 문제로 되는 것은 신화적 관념의 직접적, 직관적인 대립이다. 마르크스는 그 높은 헤겔 철학의 교양으로부터 프루동을 철학의 아마추어로 취급하고, 프루동이 헤겔을 어느 정도 나쁘게 오해하였는가를 잘 보여줄 수 있었다. 오늘날 급진적 사회주의자는 현대 철학에 힘입어 마르크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는지도 모른다. 가련하고 질책 받은 프루동은 여하튼 노동하는 대중의 현실 생활에 대한 본능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마르크스는 이 점에서는 단순한 학교교사에 불과하며, 서구적 · 부르주아적인 교양에 대한 주지주의적인 과대평가에 몰두하고 있었다.라고, 도노소의 눈에 사회주의적 무정부주의자는 악령, 악마이며, 프루동에 대해서 이 가톨릭교도는 광신적인 한 심문관이었다. 이것을 그는 비웃으려고 하였다. 여기에 두 사람의 반대자가 있었던 것, 또한 다른 것이 일시적인 불충분함이었다는 것을 오늘날에는 쉽게 인식할 수 있다.57)


투쟁과 전투에 결부되는 전투적이며 영웅적인 관념들은 모두 소렐에 의해서 강렬한 생명의 진정한 충동으로서 다시 진지하게 다루어졌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계급투쟁을 의회의 연설이나 민주적인 선거의 선전 표어로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투쟁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계급투쟁을 과학적인 구성이 아니라 생명의 본능에서 파악하며, 더구나 결전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는 위대한 신화를 창조하는 것으로서 이해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와 그 계급투쟁의 사상에 대해서는 직업정치인이나 의회 활동에 대한 참가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이러한 것들은 위대한 열정을 요설과 음모 속에 소모시키고, 도덕적 결단의 원천인 순수한 본능과 직관을 말살해버린다. 인간의 생명에서 가치 있는 것은이치(理致)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상태에서 위대한 신화적 형상에 고무되어 투쟁에 참가하는 인간에게서 생겨난다. 그것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것을 긍정하고 명백한 신화의 형태로서 나타나는 전쟁상태」(Reflexions, p. 319)에 좌우된다. 전투적, 혁명적인 감격, 가공할 파국에 대한 기대는 생명의 내적 집중에 속하며 역사를 움직인다. 그러나 그 비약은 대중 자체에서 나와야 하며, 이데올로그나 지식인들은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1792년의 혁명전쟁은 그와 같이 발생하였으며, 소렐이 르낭과 함께 19세기 최대의 서사시라고 축복한 시대, 즉 1813년의 독일 해방전쟁도 그와 같이 생겨났다. 이름 없는 대중의 비합리적인 생명의 에너지로부터 모든 영웅적 정신이 생겨나는 것이다


모든 합리주의적인 해석은 생명의 직접성을 왜곡할 것이다. 신화는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다. 왜냐하면 유토피아는 추리적인 사고의 산물이며, 고작해야 개혁으로 인도할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투적인 약동을 군국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이러한 비합리성의 철학에서의 폭력행사와 독재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소렐은 프루동과 마찬가지로 모든 주지주의, 모든 중앙집권화, 획일화를 증오하면서도 프루동처럼 가장 엄격한 규율과 도덕을 요구한다. 위대한 전투는 소렐에 의하면, 과학적인 전략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영웅적인 무훈」의 집적이며, 봉기한 「대중 속에서의 개인적인 힘, (Réflexions, p. 376)의 해방이다. 창조적인 폭력은 열광적인 대중의 자발성에서 나타나듯이, 따라서 또한 독재와는 다른 것이다. 합리주의와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일원론, 중앙집권화와 획일성, 나아가 위인에 대한 부르주아적 환상은 소렐에 따르면 독재에 속한다. 이러한 것의 실제적인 귀결은 조직적인 압제, 사법(司法)의 형식을 빌린 잔인성이며, 기계화된 도구이다. 독재는 합리주의적인 정신에서 생긴 군사적 · 관료적 · 경찰적인 기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이에 반하여 대중의 혁명적인 폭력행사는 직접적인 생명의 표현이며, 빈번히 거칠고 야만적이지만 결코 조직적으로 잔인하거나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정신사적인 관련을 인정하는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렐에 대해서도 1793년의 반복이다.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아마 연설가와 문필가 클럽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였을 때, 그도 또한 1793년의 모방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렐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라는 관념은 구제도로부터의 유산이다. 이 독재의 결과는 자코뱅주의자가 행하였듯이, 새로운 관료적·군사적 기구를 낡은 그것에 대체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지식인과 이데올로그의 새로운 지배일 것이지만, 그러나 결코 프롤레타리아의 자유는 아닐 것이다(Réflexions, p. 251),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서도 사태는 1793년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소렐의 눈으로 본다면 그도 역시 전형적인 합리주의자이다.58)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수정주의적 · 평화주의적 · 의회주의적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부르주아 국가의 기계적으로 집중화된 권력 대신에 창조적인 프롤레타리아의폭력이, 「위력」(force) 대신에 「폭력」(violence)이 나타난다. 후자는 단순한 전투행위이며, 법적 내지 행정적으로 형성된 조치는 결코 아니다. 마르크스는 여전히 재래의 정치적관념 속에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구별을 알지 못하였다. 프롤레타리아적이며 정치적이 아닌 노동조합과 프롤레타리아의 총파업은 낡은 정치적 및 군사적 수단의 반복을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투쟁수단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에대해서는 그들이 그 투쟁수단을 의회민주주의에 의해서 빼앗기거나 또는 마비시킨다는위험만이 단 하나의 위험인 것이다(Reflexions, p. 268).


이와 같이 완전히 결정적으로 비합리주의적인 이론을 반박하려고 한다면,59) 많은모순을 지적하여야 하는데, 이것은 추상적인 논리라는 의미에서의 결함이 아니라, 비유기적인 모순에 속한다. 먼저 소렐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입장에서 순수 경제적인 기반을유지하려고 하며, 그에게는 마르크스에 대한 많은 반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결정적으로 마르크스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경제적 생산자의 모럴을 창조하기를 희망한다. 계급투쟁은 경제적 기반에 대하여 경제적 수단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다.마르크스가 체계적·논리적인 필연성에서 경제적인 영역에까지 그 적수인 부르주아지를추구한 것은 앞 장에서 제시하였다. 따라서 여기서는 적수가 투쟁이 행해지는 지반과,나아가 무기, 즉 논증의 구조를 규정한 것이다. 만약 부르주아를 경제적인 영역에까지추구해 간다면, 그를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영역에서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 뿐만아니라 당면한 적어도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경제적·기술적인 합리주의 없이 행동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생산기구는 하나의합리주의적인 합법칙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타파하는 용기는 확실히 신화에서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소렐도 당연히 의욕하듯이, 이 기구가 다시 진전하고 생산이더욱더 고양되어야 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신화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부르주아지와 마찬가지로, 그도 생산기구의 우위에 의해서 합리적·기계주의적인 신화없는 상태에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그가 보다 합리주의이었기때문에 결정적인 의미에서 보다 정합적이었다. 그러나 비합리적인 입장에서 본다면,부르주아지보다 더욱 경제적이며, 더욱 합리주의적일 것이라는 것은 하나의 배반이었다.바쿠닌은 아주 정당하게도 이것을 느끼고 있었다. 마르크스의 교양과 사고방법은 전통적인 것, 즉 당시의 부르주아적인 것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바로부르주아에 관하여 그가 구성한 이론에 의해서 소렐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신화에 대해서불가결한 공헌을 하였다.


신화이론의 커다란 심리적 및 역사적인 의의는 결코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헤겔변증법이라는 수단에 의해서 기도된 부르주아에 대한 이론도 증오와 모멸의 모든 감정을쌓이게 하는 반대자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데에 기여하였다. 나는 이러한 부르주아모습의 역사는 부르주아 그 자체의 역사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귀족에 의해서 묘사된 그들의 풍자적인 모습은 19 세기에는 낭만주의적인 예술가나문학자에 의해서 더욱더 진전되었다. 스탕달의 영향이 널리 미친 이후에는 모든 문필가는부르주아지를 경멸하고, 그들이 부르주아에 의해서 생활하는 경우에도 예를 들면 보엠(Boheme)을 쓴 뮈르제(Murger)*처럼, 그 작품이 부르주아적 공중의 애독서가 된 경우에도 변하지 아니하였다. 그러한 희화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부르주아 모습에항상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 보들레르와 같이, 계급으로부터 탈락한 천재의 증오이다.프랑스에서 프랑스의 문학자에 의해서 프랑스의 부르주아에 대해서 만들어낸 이러한모습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세계사적인 이론구성의 차원에서 다루었다. 그들은 거기에전사적(前史的)인, 계급으로 분열된 인류의 최후의 대표자, 인류 일반의 최후의 적, 최후의인류의 증오(odium generis humani)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하여 이 형상은 무한하게 확대되고 커다란, 단순히 세계사적일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한 배경과함께 동방(러시아)에 전해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것은 서구 문명의 복잡성 · 인위성 · 주지주의에 대한 러시아인의 증오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스스로도 이 증오로부터새로운 생명을 획득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토양에서는 이러한 형상이 창조한 모든힘이 결합하였다. 러시아인과 프롤레타리아의 양자는 이제 부르주아 속에 흉악한 기계처럼, 그들의 생활을 압제하려고 하는 모든 것의 화신을 보았던 것이다.


이 형상은 서방으로부터 동방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신화는 이미 순수하게계급투쟁의 본능으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국민적인 요소를 포함함으로써확립되었다. 소렐은 일종의 유언으로서 그의 『폭력론』마지막 판(1919년)에서 레닌을위한 변명을 첨가하였다. 소렐은 레닌을 사회주의가 마르크스 이후에 가진 최대의 이론가라 부르고, 정치가로서의 그를 피요트르(Peter) 대제와 비교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이전과는 반대로 서구의 주지주의가 이미 러시아를 동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프롤레타리아적 폭력행사가 여기서는 적어도 하나의 것, 즉 러시아가 다시 러시아적으로되고 모스크바도 다시 수도가 되고, 그리고 서구화되어 자기 나라를 경멸하는 러시아의상층계급이 근절되었다는 것을 이루었다. 프롤레타리아적 폭력행사는 러시아를 다시모스크바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국제적인 마르크스주의자로부터 그것을 듣는다면, 그것은 주목할만한 찬사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민족적인 것의 힘이 계급투쟁의 신화의 힘보다도 크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소렐이 지적하는 그 밖의 신화의 예도 근대에 속하는 한, 보다 강한 신화는 민족적인것 속에 있음을 증명한다. 프랑스 국민의 혁명전쟁, 스페인과 독일의 나폴레옹에 대한해방투쟁은 민족적인 힘의 징후이다. 민족적 감정 속에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요소가각각 매우 다른 방법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종족과 혈통이라는 보다 자연스러운 관념,외견상 켈트 · 로만 종족에게 비교적 · 전형적으로 보이는 지역주의(terrisme)"와 같은것들이다. 나아가 언어 · 전통 · 공동의 문화와 교양의 의식, 운명공동체의 의식, 이질적이라는 그 자체에 대한 감수성 - 이러한 모든 것들은 오늘날에는 계급적 대립의 방향에서움직인다. 이 양자는 결합할 수도 있으며, 그 예로서는 새로운 아일랜드의 민족의식의순교자 패드레익 피어스와 아일랜드의 사회주의자 콘놀리*와의 우정을 들 수 있을것이다. 양자는 모두 1916년의 더블린 반란의 희생으로 사망하였다. 또한 공통된 이념상의 적수가 주목할 만한 일치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프리메이슨에 대한 파시즘의공격은 「급진적 부르주아지에 의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가장 악랄한 기만60) 이라는프리메이슨에 대한 볼셰비키의 증오와 일치한다. 그러나 두 개의 신화가 공공연하게대립하는 곳, 이탈리아에서는 오늘날까지 항상 민족적인 신화가 승리를 거두어왔다.이탈리아 파시즘은 그들의 적인 공산주의를 가장 혐오하는 모습, 즉 볼셰비즘의 몽고적인얼굴로 묘사하였다. 이 묘사는 사회주의적인 부르주아 모습보다도 더욱 강한 인상을주며, 더욱 강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신화를 의식적으로 원용함으로써 민주주의와의회주의가 경멸되고 등한시된 예는 지금까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민족적인 신화의비합리적인 힘의 예시였다. 로마로 진군하기 직전인 1922년 10월 나폴리에서 행한연설에서 무솔리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하나의 신화를 창조하였다. 이 신화는신념이며, 고귀한 열정이며, 어떤 현실적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충동이며,희망이며, 신앙이며, 용기이다. 우리들의 신화는 민족이다. 우리들이 구체적인 현실로만들려는 위대한 민족이다. 이때의 연설에서 그는 사회주의를 열등한 신화라고 부른다.당시와 마찬가지로 16세기에도 역시 한 사람의 이탈리아인이 정치적인 현실의 원칙을선언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예의 정신사적인 의의가 큰 까닭은 이탈리아라는 토양에서의민족적인 열정이 지금까지의 민주주의적 내지 의회주의적 · 입헌주의적인 전통을 지니고있었던 점과, 앵글로 색슨적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완전히 지배되고 있는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신화의 이론은 의회주의적 사상의 상대적인 합리주의가 자명한 이치를 상실하였다는것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무정부주의적인 저작자들이 권위와 통일에 대한적개심에서 신비적인 것의 의의를 발견하였다고 한다면, 그들은 무의식중에 새로운권위의 기초지움, 따라서 질서, 규율, 그리고 위계제도에 대한 새로운 감정의 기초지움에협력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비합리성의 이념적인 위험성은 크다. 마지막의, 적어도약간의 흔적에서 존재하는 공속성(共屬性)은 무수한 신화의 다원주의에서 폐기된다.


모든 신화가 다신론적인 것치럼, 이것은 정치신학에 대해서 다신론이다. 그러나 현재의강한 경향으로서는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마 의회주의적 낙관론은 이 운동을상대화하는 것을 바라며,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토론의부활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단지 토론만 할 수 있는 한, 아마도토론 자체를 토론에 부칠 것을 바랄 것이다. 그것도 의회주의적 낙관론이 그 기초에대해서 이러한 공격을 받고서는 자기를 대신할 아무런 대용물도 여전히 없다는 것을언급할 없는 경우에, 그러니까 그 낙관론이 반의회주의 이념에 대해서 「의회주의- 그 밖에 무엇이 있는가?」라고 반론할 뿐인 경우에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사회주의를 주장하기에 제국주의를 주장한다. 나에게 제국주의의 주장은 사회주의 실현의 전제이다. 내가 사회주의를 품고 있지 않다면 제국주의를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제국주의를 내걸고 러일전쟁을 외치는 바 그 바탕에 사회주의의 이상이 있다. 나는 사회주의자이면서 제국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