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논의한 것처럼 전선체를 통한 전민중적 항쟁의 준비와 합법정당 건설을 통한 정치세력화는 서로 밀접히 결합될 때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두 가지 흐름은 서로 분리되는 순간 그 어느 것도 성공할 수 없다. 민족민주전선체는 정치조직인 정당을 갖지 못하면 정치적 대안세력이 부각될 수 없어 전민중적 항쟁을 성사시킬 수 없으며, 전민중적 항쟁을 통하지 않고는 다수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없다.
어떤 분이 정의당 당게에 '전국연합, 참여계, 노동당좌파(아마 이번에 결성되고있는 '좌파통합논의') 모두 당에서 내보내서 순수한 정당을 만들자고 주장한 글이 올라와 비평한다.
군자산의 맹약은 급진적 논조와 당시로써는 조금 낡은 단어들을 통해 설명되었으나, 기본적으로는 '합법정당'의 창당과 주도적 활동을 명시하는 내용이다.
변혁지향적인 사람들로써 흔히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표현할수 있는 내용에 민족자결적 국제주의를 강화한 판이라고 볼 수 있다.
필연적으로 존재할수밖에 없는 타 정파에 대한 당내에서의 관계설정이 부족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국연합이 취한 입당전술은 어디까지나 그 이후의 '이석기 사태'등등의 시발점이 아닌 합법투쟁노선의 긍정으로 보아야 한다.
이후 NL계의 '당 장악'이라는 워딩으로 표현되는 이 맹약은 사실 근본적으론 진보적 민주정부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가라는 내용을 담고있는것인데, 여기에서의 비판점은 민주노동당을 왜 장악하려했나보다는, 스스로 말한 '노동자, 청년, 농민을 중심으로한 합법정당'이 왜 민족민주대연합으로 표현되었는지, 곧 민주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것인지에 대한 미비에서 들어가야 한다.
실제로 맹약 이후 재편된 민노당은 사회주의적 이상의 쇠퇴와 우경화를 거쳤으며, 민주대연합론에 대한 무비판적인 긍정을 낳았다.
본질적으로 군자산의 맹약은
NL판 '프랑크푸르트 회담'에 가까운 것으로,
이후 NL계가 대학생 운동 일부를 제외하고 민주당과의 관계설정에서 갈팡질팡하게된 단초였다.
이를 너무 급진적으로 보는것은 마치 유럽사민당의 고타강령, 프랑크푸르트 강령을
'프랑크푸르트의 맹약'이라며 현실적 투쟁방안처럼 말하는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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