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1월 7일 러시아에서 일어난 반란(rebellion)과 1918년 11월 9일 정점에 달한 독일의 봉기(revolt)는 성격과 이념이 너무 달라서 '혁명'이라는 동일한 단어로 둘을 규정하기는 어렵다. 어떤 서술이든 이에 대한 의구심을 어느 정도 품어야 할 것이다.
1917년 11월 7일 행동의 최종적인 목표는 고려하지 않고 아시아 특유의 폭력행위라는 점에서만 '혁명'으로 정의 될 수 있는 전형적인 쿠데타(coup d’état)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거칠고 정치적으로 무지한 군인의 도움으로 일어난 반란(rebellion)-혁명과 혁명적 사건에 대한-이었다. 혁명은 군사력을 통해서만 독재를 유지할 수 있는 전제정권에 의해서 살해되었다. 그리고 공산당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르지아지나 사회주의자에게 행동의 자유를 허가하고 있지 않는데, 바로 이 사실에서 그 정당의 비극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정당의 내면이 취약하다는 약점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들은 전세계 사회주의 정당 중 가장 급진적인 정당임을 가장하면서도 동시에 외국 자본가와 타협하려 애쓰고 있다.(로붕이 주 - 신경제정책 이야기하는듯. 이건 독남충 까도 된다.) 그들은 자국의 사회수준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모든 종교 생활을 억압하고 독립적 목소리를 내던 볼셰비키 일파를 몰살함으로서 볼셰비키는 혁명에 참가한 다른 어떤 정당보다도 옛 차리즘에 가깝게 되었다. 정직이 쿠데타 지도자들이 바라본 목표일지라도 역사는 결코 그 반란(rebellion)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볼셰비키들은 위대한 국가를 정신적, 도덕적 노예로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들은) 1918년 11월 9일 독일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정치상황이 당사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임을 알지 못했다. 베를린 노동자들이 세운 독일 공화국은 노동자 공화국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부르주아 (로붕이 주 -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니라면 그것은 여전히 제국시절의 민주적 의미에서의 부르주아 공화국일 것이다. (그러나) 폭풍우가 몰아친 1918년 11월, 왕좌가 박살나고 왕관-노동운동의 발전을 방해하던 사슬-이 끊어졌다. 그 혁명은 독일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조건을 향상시키게 되었다.
현대 독일 노동자는 황제 치하에서보다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11월 봉기는 일반적으로 독일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어떤 정당에 속해 있든 간에 더 많은 자유를 주었고, 따라서 그것은 적절한 의미에서의 '혁명'으로 규정될 수 있다. 오늘날 이러한 사회적 변화만이 '혁명'이라고 불릴 수 있는데, 그것은 광대한 대중에게 정치적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1922년 7월, 베른슈타인
트로츠키: 셋중 누가 제일 개노답일까
베른슈타인 : 응 니가 제일 개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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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링 대충 해본 결과로는 "마르크스 살아있을때 사고방식에서 달라진게 없다"면서 비판적으로 본것같음.
니들도 동참했어야지 러시아 찐따 만들어 놓고서는 말이많노
한 것도 없으면서 입은 잘 터노
그리 따지면 볼셰비키는 말직접 타고 나선 트로츠키하고 최전선에서 수비전 담당한 스탈린말고 직접 한게 있는 사람 도꼬.
내전 기간 동안 20만명의 볼셰비키가 최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참고로 1917년 2월에 볼셰비키 당원은 2만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헌신을 보여준 정당은 인류 역사상 얼마 없다.
그정도로 규모가 급속도로 팽창되었다면 대부분 사상검증도 안거치고 마구잡이로 받아들였다는 결론밖에 더 나오나.
유데니치가 페트로그라드 코앞까지 진격하고 데니킨이 모스크바로 전진할때 공개적으로 볼셰비키의 강령에 충성을 맹세한 것보다 더 효과적인 사상검증이 있나?
공개적 충성 맹세 특 : 징집 거부하면 바로 총살시킴.
그래서 병사들이나 농민, 노동자들에게 누가 볼셰비키당에 입당하라고 강요했나? 적에게 잡힌 당원은 보통 바로 총살되었고, 입대한 당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단 하나, 가장 먼저 돌격하고 가장 늦게 후퇴한다는 것 뿐이었는데?
1억명에 달하던 당시 제정 러시아에서 20만명이면 겨우 0.2%에 불과한데 그거 가지고 그런다면 2월 혁명 이전에 당원 100만명이 넘는 사회혁명당은 무슨 기적이었나. 그리고 볼셰비키도 내전 당시 다른 좌파계열에게 전향 거부하면 바로 총살시키던 애들인데 백군하고 같은 수준이라고 자백하는건가?
내전기에 볼셰비키는 좌파든 우파든 소비에트 권력에 대해 반역하지 말 것을 요구했지 사상 전향을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사회혁명당 좌우파든 멘셰비키든 기층 당원들의 볼셰비키 입당러쉬로 사실상 자멸한건 맞긴 한데 백군에 합류하지 않은 사회주의 정당들은 내전 끝날 때까지 마르토프처럼 모스크바에서 잘만 조직 활동했는데 무슨소리?
1918년이 끝나기도전에 아나키스트 40여명을 살해하고 세번이나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의 뒤통수를 치고 포로들에게 사상전향 강요해놓고 아나키즘 조직을 사실상 괴멸시킨 분들이 다른 좌파 탄압한적이 없다? 나밧은 무슨 백군 위성정당이라서 모스크바에서 도망쳤나?
10월 혁명 이후 노동자 농민들이 거의 아무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기층 당원들은 볼셰비키로 탈주하고 지도부는 태반이 백군에 붙거나 무장반란 시도한 정당들이 망한게 '볼셰비키에 의한 탄압' 때문이라고 믿고싶다면야 뭐. 꼭 모든 사람들이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건 아니니까.
그 말은 그대로 되돌려드리지.
추하죠?
비추
베른슈타인의 횡설수설들이 항상 의문이였는데 혁명이 뭔지, 쿠데타가 무엇인지, 심지어 목표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인간이였구나. 이제야 이해가 가네.
이러는 사람에게 글을 하나 쓰라고 하면 횡설수설조차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영화평론가한테 영화만들라고 하는 꼴이노
ㅋㅋㅋㅋㅋ
흠... 다른건 이해해도, 바이마르 공화국이 소련보다 더 일찍 망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 부분은 공감이 좀 안된다. 결국 구 지배계급에게 너무 관대하게 대처한 결과 카프 쿠데타를 포함한 반동세력의 반격에 시달리다가 파시스트와 반동세력의 연합으로 공화국 망해부렸는데.
세계대공황이라는 변수를 예측할 수 있었겠냐.
히틀러 이후의 파국이야 말할게 한두개가 아니지만, 적어도 카프쿠데타에선 커버못치지않나. 에베르트랑 노스케가 자유군단 해산시도했다가, 정작 그 지휘관인 뤼트비츠랑 카프가 베를린 달려오니까 빤스런치고, 공산당이랑 독립사민당까지 동원해서 총파업으로 잡아놓고 결말은 군부 손도안대는 온건적인 협사으로 시마이. 그와중에 쿠데타세력 진압 '요청'에 프센징은 전우를
부르주아 국가를 안간힘을 써서 지켜 놓고 '세계대공황', 즉 세계 자본주의의 파국을 탓한다. 이게 개량주의자의 사고방식인가?
쏘지않는다 드립쳤던 젝트는 유임시켜서 프로이센징들의 전간기 공화국흔들기 발판은 그대로유지. 결국 몇달뒤 선거로 폭망해서 정권도 놓치고. 좌익혁명나면 극우조직으로 때려잡는게맞고, 군부쿠데타는 협상시도해서 풀어주는게 맞다고보면 그건 개량주의가아닌거 같은데
카프 쿠데타는 대공황 이전의 야이기이고, 카프 쿠데타로 나온 결말이 군대의 사실상의 독립 기구화인거 생각하면......
부르주아 국가를 안간힘을 써서 지킨다니, 사민당 전체가 한마음으로 독일 노동자 지지했으면 소비에트 혁명이 성공했을거라고 믿는 것인가. 흠터레스팅. 그리고 베른슈타인은 전쟁 끝나고도 계속 아싸였음. 전쟁 중에는 아르메니아 학살을 혼자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전쟁 끝나고는 전쟁 책임이 독일에 있다고 언급해서 또 미칠듯이 까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