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자기 전에 최근의 러시아에 대해 참 불쾌한 뉴스 하나를 접했습니다. 러시아 성매매 관련 업종 여성 종사자 총수는 인제 3백만 명 정도 된다, 그리고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55%의 러시아 남성들이 성 구매 경험이 있다는 뉴스이었습니다. 이걸 보고 맨 먼저 든 생각은, 아아, 인제 러시아도 한국처럼 다 돼버렸단 생각이었습니다. 총인구 비례해서 세본다면 인제 성매매 관련 업종의 종사자 수가 양국이 거의 비슷해진 셈입니다. 한국은 약 1백만 명, 인구는 거의 3배 많은 러시아는 3백만 명...


[...] 러시아 사회주의 전통의 고전이라고 할 체르느세브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1863)의 한 여주인공의 말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 없는 키스를 하지 말라!"는 건 절대 명언에 가까웠습니다. 암흑의 제국, 제정러시아에서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성매매부터 양쪽 집안의 이해관계에 따라 맺어지는 각종 중매결혼 따위를 하도 많이 본 사회주의자들은, 이와 질적으로 다른 사회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소련 시대 소설책이나 영화들을 보면 혼전 섹스는 물론이거니와 혼외 정사부터 원나이트스텐드까지 온갖 "다양한 사랑의 방법"들은 다 나타나도 "돈과 섹스의 교환"을 보기가 드물죠. 소련 말기에 가야 외화벌이 차원에서 국제 성매매에 나선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룬 <인터걸> (1989) 같은 영화가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돈만 보고 하는 섹스"와 사랑이 없는 부자나라 스웨덴의 중산층 남성과의 결혼은 결국 주인공을 완전한 파멸 ("매춘녀를 키웠다"는 사회의 비판에 직면한 교사인 어머니의 자결, 본인의 사고사)로 몰고 갑니다. 소련이 완전하게 망하기 전까지는 '돈과 섹스'의 교환을 긍정한다는 건 문예 차원에서 불가능했습니다. -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 없는 키스를 하지 말라!" 




저 자신에게 "과거의 당신의 제일 큰 공포 대상이 무엇이었느냐" 불어보면 아마도 이런 답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1997년초반까지 러시아에서 살았는데, 거기에서 쏘련의 망국 이후엔 제일 큰 불안은 본인과 일가친척 등의 신병의 안전이었습니다. 1990년대 러시아의 살인률은 10만명당 30-40명 정도, 거의 중남미 수준이었거든요. 밤에 창문에서 총소리가 종종 들리고, 제 일가 친척 중에서 강도 조직에 잡혀가서 행방불명이 된 사람도 있었습니다. - 피치자의 불안, 지배자의 불안 


→ 푸틴 정권에 의해 러시아내 마피아들이 일망타진되긴 했지만, 여하간 박노자 본인에게 있어 쓰라린 기억으로 남았을듯




제가 1990년대에 러시아에서도 이 현상과 맞닥뜨린 적은 있었습니다. 제가 관광 가이드로 알바하면서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었는데, "사장님" 급 관광객들이 "백마 타게 해달라"고 제게 계속 성매매 알선을 요구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제게 그런 요구를 해봐야 하등의 소용은 없었습니다. 성매매는 그 당시 쏘련 몰락 직후의 러시아에서는 번성했지만 원칙상 여전히 불법이었고 저 같은 책벌레는 불법행위를 하고 싶어도 할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성화 같은 요구에 시달려도 해줄 줄도 모르고 할 수도 없었죠. 그런데 제게는 그저 "알선 요구"로 끝나곤 했지만, 여성, 특히 고려인 여성 가이드들은 보통 이 직종에서 단명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의 야담패설과 노골적인 성추행을 참지 못해 떠나는 것은 예사이었죠.


제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오슬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더 이상 관광 안내라는 직종과 인연을 맺을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가끔 들르곤 했는데, 거기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1990년대와 같은 현실의 "제도화"이었습니다. "사장님"들은 더 이상 옛날의 저와 같은 가이드들을 볶어먹을 필요도 없어졌죠. 한인 전용 여행사 - 한인 전용 호텔 - 한인 전용 노래방과 같은 "성매매 카르텔"이 만들어지고, 술자리 이후로는 "손님"들은 바로바로 같은 건물 안에 있는 "업소" "2" 갈 수 있었습니다. <오를료녹>, <스푸트닉>, <살류트> 등 세 군데의 호텔 내 1층을 한인 업자들이 임대해 사용했는데, 그들이나 그들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그 호텔 내 노래방 등을 중심으로 성매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여자들이 방 안으로 들어 와 앞에 줄 지어 서 있으면 한국으로부터 온 부유한 "손님"들이 하나하나 여자들을 골라 옆에 앉히고 술 시중을 들게 하는 방식으로 "시작"되는 건 일반적 행태이었답니다. 성매매는 한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법률상 불법이었는데, 대개는 실질적인 성매매 장소로 이용되는 노래방의 "바지 사장"들은 러시아 조폭들이었고, 피해 여성들은 점원이나 청소부 등으로 허위 직업 등록돼 있었습니다. 거의 전부 구쏘련 몰락 이후에 "외국"이 된 중앙아시아 출신들이었고, 상당수는 고려인 여성이었습니다. 가장 믿기 어려웠던 것은, 성매매 카르텔의 구성원들의 상당수는 바로 한인 교회 신도이면서 교포 사회의 "유지급 인물"이었던 점, 그리고 이 현실에 대한 주러 한국 대사관의 조직적 은폐라는 점이었습니다. (이하생략) - 추태의 수출: 한국 남성들의 원정 성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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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이후 1세계 국가들에 의한 구 동구권의 신식민지화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