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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마르크스주의 역사를 언급할때 1899년 프랑스 사회주의자가 장관이 되고 운운하는데 이상하게 장관이 누군지는 언급 안한다.


그런데 왜 안했는지 알 것같다. 놀랍게도 전직 아나키스트였거든. ㄴㅇㄱ 



1844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에서 태어난 폴은 파리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70년 급진주의적 글을 기고하면서 정치적 경력을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제1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던 그는 파리 코뮌때도 참가하다가 징역 4월을 선고받는다. 


이후 1873년 스페인에서 바쿠닌의 영향을 받아 "혁명을 일으키느냐 죽느냐" 운운하면서 총파업을 일으키다 실패하자 스위스로 다시 망명가버린다.


이때 폴은 죽었고 이후에는 브루스라는 사람이 활동하게 된 듯한데 왜냐하면 이후 평생동안 총파업을 반대했기 때문.  


여튼 크로포트킨과 교류하던 브루스는 여러 글을 기고하는데 보통선거권을 반대하는 "가장 비타협적인 리버테리안"이라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1870년대 내내 실행을 통한 아나키즘의 부활을 꿈꾸던 그는 1880년대부터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지면서 혁명에 대해서 회의감을 품게 된다.


이후 1883년 "이상을 가능하게 만들려면 우리는 가까운 장래로 미래를 바꿔야한다."라고 하면서 보통선거권에도 반대하지 않게 됨.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같은데. 일간 ㅂ.... 전기작가는 태세전환은 아니고 그냥 방법만 바꾼거라고 했지만 여하튼 이후에는 아나키즘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게 됨.


그 결과 1890년이 되면 브루스는 더이상 사회주의자들한테 영향력이 예전만하지 못했고 게다가 같은해 파리 시의회 부의장까지 겸임했으니 뭐.


여기에 1891년에는 파리 코뮌을 진압한 보병대대를 기리는 환영회를 조직하고 1899년에는 "공화국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이유로 장관직까지 수락.


이후 1905년 의장 자격으로 스페인 혁명(위에서 말한 그것)을 진압한 알폰소 5세를 환영하자 완전히 고립되었다.


결국 1912년 뒤질때는 아무도 기억 안하는 기런 인물이 되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