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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루가, 보로네슈, 랴잔 등의 주에서는 몇만 명의 젊은 농민이 소비에트의 첫 징병령에 응하지 않았다. 전쟁은 그들의 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징집등록 성적이 좋지 않아 징병령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징병 기피자들이 탈주병으로 불렸다. 징병 기피에 대항해 강력한 투쟁을 벌일 필요가 있었다. 랴잔 주의 군사인민위원부가 1만 5천 명의 이런 '탈주병'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랴잔 주를 지나갈 때 나는 그들을 만나 보기로 결심했다. 주변 사람들 중 일부는 나를 말리려고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릅니다" 하고 그들이 경고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더할 나위 없이 잘 되어 갔다. 임시 건물에 있는 그들을 불러냈다. "탈주병 동지 여러분, 집회장으로 모이십시오! 트로츠키 동지께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러 오셨습니다!" 그들이 흥분한 채 초등 학생들처럼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소란스럽게 달려 나왔다. 나는 그들을 훨씬 더 질이 나쁜 무리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도 나를 좀더 무서운 인간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몇분 사이이 나는 천방지축이고 규율은 전혀 없지만 조금도 적의가 없는, 엄청난 군중에 에워싸였다. '탈주병 동지 여러분'이 눈알이 머리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보일 정도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곧 안뜰에 있는 테이블 위로 올라간 뒤 그들과 약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더없이 빠르게 반응을 보이는 청중이였다. 나는 그들의 자존심을 높여 주려고 애쓰고, 이야기 말미에 혁명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손을 들어 보라고 부탁했다. 내가 보는 바로 그 앞에서 새로운 생각이 그들에게 전염되었다. 그들은 진실로 열광적이였다. 그들은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따라와 나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전과 같은 두려움은 없고 넘쳐흐르는 기쁨이 있었다. 그들은 목청껏 소리 높여 외치면서 좀처럼 나를 보내 주려 하지 않았다. 그 후 "너, 트로츠키 동지에게 뭐라고 약속했었지?" 하고 상기시키는 것이 그들을 교육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 중에 하나였다는 것을 알고 나는 적잖이 기쁨을 느꼈다. 랴잔의 '탈주병들'로 편성된 연대는 그 후 전선에서 훌륭하게 싸웠다.
-레프 트로츠키, <나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