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이 쓴 <아무도 말하지 않은 미국 현대사> 읽고 있는데,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종결시킨 디엔비엔푸 전투 당시 미국이 식민지 프랑스를 돕기 위해 전투기 폭격 계획을 실행하고자 했던 것은 알고 있었는데 핵공격까지 고려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됨. 진짜 미국애들 엄청 사악한 놈들인게 식민지 해방 전쟁을 막기 위해 말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잖아. 아무튼 책에 있는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고 함.(아래에 있는 글은 책에 나온 내용 그대로 발췌)


한편 과테말라 정부가 전복되던 시기에 베트남에서는 훨씬 더 의미가 큰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19544월 보응우옌잡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호치민의 농민해방군과 농민 지원자들이 무게가 엄청난 대공포와 박격포, 곡사포를 운반하며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밀림과 산악지역을 뚫고 들어가 디엔비엔푸에 고립돼 있는 프랑스군을 포위했다. 믿기지 않는 것은 미국이 프랑스가 식민지 베트남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비용의 80%를 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이젠하워는 19538월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이 그 전쟁을 돕는 데 4억 달러를 써도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최대한 비용이 싸게 먹히는 방식으로 미국에 치명적일 수 있는 사태를 예방하고자 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도차이나와 동남아시아의 풍부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능력과 안보를 확고히 해야 한다.” 그는 이 지역 국가들이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잇달아 공산화되면 결국에는 일본마저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닉슨도 맞장구를 쳤다. “인도차이나가 넘어가면 태국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고무와 주석이 많이 나는 말레이반도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시아 전체가 공산주의자들이 지배를 받거나 공산주의의 영향권에 들게 될 것이다. 일본도 생존을 위해 동남아와 무역을 하고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업시 때문에 불가피하게 공산주의 체제로 기울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는 피압박민족들의 자유를 위한 싸움 운운하는 수사는 다 걷어내고 본질을 제시했다. “세계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를 인도차이나의 승자가 차지할 것이다. 미국의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주석, 고무, , 기타 핵심 전략물자야말로 전쟁을 통해 노리는 것이다. 미국은 인도차이나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곳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는 도움을 요청했다. 아이젠 하워는 미 지상군 파견은 배제했지만 덜레스와 함께 프랑스군이 당장 패하는 것은 막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펜타곤 관리들은 베트민(베트남독립동맹) 거점에 공습을 가하는 내용의 독수리 작전 계획을 입안하는 한편 원자탄 2~3발을 사용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공군참모총장 네이선 트와이닝 장군은 후일 이런 얘기를 했다.

 

[래드퍼드 합참의장과 나는] 전술핵무기 3발 정도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고립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만 떨어뜨려도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반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다음 남은 빨갱이들을 쓸어내면 프랑스군은 라마르세예즈(프랑스 국가)’를 연주하면서 말짱하게 디엔비엔푸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빨갱이들은 이럴 것이다. ‘, 저놈들 우리한테 또 그럴 거야. 조심해야겠어.’

   

아이젠하워는 1954430일 원자탄 사용 문제를 닉슨 부통령 및 로버트 커틀러 NSC 사무국장과 논의했다. 조르주 비도 외무장관을 비롯한 프랑스 관리들은 덜레스가 일주일 전에 원자탄 두 발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보고했다. 아이젠하워와 덜레스는 나중에 그런 얘기를 부인했다. 그러나 원자탄 사용이 당시 미국의 정책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영국도 프랑스도 원자탄 사용을 현명하다거나 가능하다고 보지 않았다. 이런저런 증거를 종합해보면 신무기사용을 포기한 것은 디엔비엔푸 지역에서 베트민 군대가 프랑스군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자칫 프랑스군까지 피해를 볼 우려가 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아이젠하워가 1961TV방송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에게 말한 대로다. “우리는 사방 수 km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랬다면 아마 디엔비엔푸 전체가 날아갔을 겁니다.”

 

많은 학자들은 핵무기 사용을 고려한 적이 없다는 아이젠하워와 덜레스의 주장을 믿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핵무기 사용을 제안했다는 얘기는 프랑스 장군 폴 엘리, 외무장관 비도, 외무차관 장 쇼벨이 남긴 일기와 회고록에 언급돼 있다. 프랑스 내무장관은 라니엘 총리에게 원자탄 사용을 요청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케네디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정치학자 맥조디 번디도 비도의 주장대로 덜레스가 비도에게 원자탄 사용 문제를 제기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당시 덜레스가 나토는 핵무기를 재래식 무기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 방증이다. 4월 말 NSC 정책기획실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재론했다. 기록을 보면 로버트 커틀러가 아이젠하워와 닉슨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고, 세 사람은 신무기몇 발을 프랑스에게 주는 문제를 다시 검토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기억은 전혀 다르다. 후일 그는 자신의 전기를 쓴 스티브 앰브로즈에게 커틀러한테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고 말했다. “자네들, 미쳤어. 우리가 그런 끔찍한 물건을 10년도 안 돼서 또다시 아시아인들에게 사용할 수는 없어. 맙소사.” 당시 핵무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젠하워가 중국이 개입할 경우 미국은 지상군이 아닌 원자탄으로 응수해야 한다는 합참의 건의를 제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출처 :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 p.442~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