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틈 없이 뛰어다녔고 지금쯤 다 해결될 줄 알았어요" [김용균재단 1년]
경향신문 | 조문희 | 2020.10.26. 06:00
김용균재단 출범 1년.. 12월엔 2주기
김미숙 대표·권미정 사무처장
이행되지 않은 특조위 권고
발전소 안전 제자리에 ‘답답’
‘오전 8시30분, 이스타(국회) 1끼 단식’ ‘오전 11시 조문희 경향 기자(인터뷰)’ ‘오후 5시30분, 공공산업안전 활동가대회 발언’. 23일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이 펼친 다이어리에 적힌 이날 일정이다. 올해 초부터 기록을 시작한 다이어리엔 권 처장과 김미숙 대표의 매일 일정이 시간대별로 꼼꼼히 적혔다. 토·일요일에도 빈칸은 없다. 대부분이 노조 활동 참가, 산재 유가족과의 만남, 연대 발언, 언론 인터뷰이다.
김 대표는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아들 김용균씨(당시 24세)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뒤 쉴 틈 없이 살았다. 매일같이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을 들고, 국회를 찾았다. 노동자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지난해 10월26일 아들의 이름을 따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을 출범하고 초대 대표를 맡았다. 재단은 비정규직 철폐와 산업재해 방지, 차별 없는 일터 건설을 목표로 했다. 권 처장은 김 대표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다. 재단 1주년을 앞둔 23일, 두 사람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김용균재단에서 만났다.
- 1년간 재단 활동을 돌아본다면.
김미숙 대표 = 답답한 심정이다. 재단 만들고 1년쯤 되면 발전소 용균이 동료들 처우가 개선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9월에도 용균이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가 스크루에 치여 숨졌다. 하청·비정규직 등 취약한 지위의 노동자에 대한 안전대책이 여전히 미비하다. 지난해 8월 특조위(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이 이행됐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 나아진 것은 없나.
권미정 사무처장 = 합의는 있었지만 그뿐, 이행이 되지 않았다. 용균이가 일하던 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삽으로 퍼서 제거하던 관행이 문제로 지적됐다. 낙탄을 제거하다 삽이나 봉이 빨려들어가면 사람도 같이 끌려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거다. 용균이 사고 이후엔 물로 낙탄을 씻어내는 기계를 설치했는데, 모든 작업장에 설치하지 않고 용균이 사고가 났던 공장 내부에만 설치했다. 그러다 최근엔 수압 문제로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과거와 똑같이 사람이 퍼야 하는 상황이다. 위험업무는 2인1조로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정규직을 충원하지 않고 1년 프로젝트직이나 3개월 계약직으로 메웠다. 등을 바꾸거나 추가 설치해 작업장 내 밝기가 좀 밝아졌고, 일부 마스크가 지급된 게 전부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비정규직과 특조위원을 포함하는 이행점검단이 필요하다.
김 = 책임자 처벌도 아직이다. 용균이 재판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아들 관련 재판은 이제 시작
진심 어린 사과 기대했는데
발전소·하청 한마디도 없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최우선’
산재 사망 유가족 안내서 발간
회사와 싸움서 알아야 할 것들
김용균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원·하청 책임자 공판준비기일이 지난 22일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렸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측 변호인은 김씨가 하청 소속이기 때문에 원청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측 변호인도 산안법 위반 관련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과태료를 이미 냈으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는 더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재단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피고인들이 반성과 사과를 전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밝혔다.
- 재단 활동은 어디에 주력하나.
권 = 비정규직과 노동안전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관련해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는 일이 많다. 유가족 지원도 노동안전 문제의 일환으로 본다.
- 연대 활동이 많나.
김 = 처음부터 재단 활동은 독자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등 단체가 계속 함께했다. 사회 전체의 문제 아닌가. 한 단체의 의제일 수 없다.
권 = 특조위 권고안이 이행된다면 그 영향은 발전사 노동자들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물론 권고안이 이행되면 첫 번째로 적용되는 곳은 발전사겠지만 권고안에는 일반 사업장에도 적용돼야 하는 내용이 많다.
- 가장 바빴던 순간은.
김 = 지난 8월 특조위 권고안에 포함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했다. 당시 글을 써서 올렸는데 10만명의 동의를 받아야 청원으로 성립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거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단체문자를 보내면 사람들이 잘 안 읽지 않나. 한 명 한 명 전화를 돌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밖으로 나가서 피켓도 들었다.
- 도움 요청이 왔는데 못 간 경우도 많겠다.
김 = 산재 유족을 챙기는 일은 특별히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그랬듯, 가족이 일하다 사고를 겪으면 유족들이 가장 답답하다. 거대 회사하고 맞서야 하는데, 뭐 하나 아는 게 없다. 내 자식이 뭘 잘못했는지, 회사 잘못은 뭔지 파악해야 하는데 회사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와중에 사측은 회유부터 하려 하고…. 사측이 잘해주는 것처럼 굴지만 빠르게 적은 비용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걸 유가족은 잘 모른다.
- 산재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도 최근 냈다.
권 = 처음 출범할 때 총회에서부터 얘기했던 계획이다. 산재 유족과 함께하면서, 그분들이 자기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사고 직후 유가족들은 이런 책을 볼 정신이 없다. 사고가 나기 전 누군가가 보거나, 사고 나고 일주일 뒤에라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자료 제작 목표다. 본인은 못 봐도 주변에서는 볼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은 한 장짜리 리플릿을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한 장씩이라도 갖고 있다가 급할 때 볼 수 있도록 수천장 인쇄하려 한다.
후원자 2배로 늘어 1000여명
작은 정성·따뜻한 연대 감사
김 대표와 권 처장은 지난 2월부터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수많은 우리들이 함께 찾는 길>을 준비했다. 발간을 위해 유가족들을 모아 인터뷰를 했는데 그 대상엔 김 대표도 포함됐다. 재단은 안내서에 대해 “가족의 사망사고를 알게 된 순간부터 단계별로 유가족이 처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각 장면에서 유가족이 갖는 법적 권리와 한계 등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안내서 파일본은 11월 초쯤 재단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이번엔 산재 관련 사망사고만을 다뤘지만 앞으로 질병·과로사·직장갑질 등 문제도 살필 계획이다.
- 재단 운영은 어떻게 하나.
권 = 후원을 받는다. 설립 당시 후원자가 500명 정도 모였는데, 지금은 1000명 정도 된다. 일부는 정기회원이고 일부는 주춧돌(일시 후원) 회원이다. 주춧돌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한 번 도움이라도 재단 활동을 쌓아나가는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서다. 실제로 큰 힘이 된다. 특조위원들의 경우 활동수당이 나오는데, 대부분 그걸 다 재단에 후원한다. 재단 교육에 강의하러 오는 분도 많은데, 강사비를 드리면 다시 재단에 넣어주기도 한다. 초등학생·중학생이 친구들과 모임을 꾸려 강의를 듣고 공부하다가 후원한 경우도 있다. 한꺼번에 몇천만원, 몇억원 이런 큰 규모의 후원은 없지만 이런 마음이 저희한테는 훨씬 소중하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김 = 일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목표다. 법안은 현재 법사위로 넘어간 상태다. 국회는 관련법상 우리에게 12월20일쯤엔 1차로 답변을 해야 한다. 법사위 앞에서 캠페인을 열고, 엽서쓰기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권 = 용균이 일도 아직 안 끝났다. 책임을 묻는 법정 싸움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12월이면 용균이 사망 2주기가 되는데, 추모활동도 해야 한다. 12월6일부터 12일까지가 올해 추모주간이다. 최근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 챌린지에 많은 분들이 함께했지 않나. 가장 앞장섰던 가수 하림씨와 함께하는 자리도 마련하려 한다. 흔쾌히 응하시더라. 모든 일의 중심엔 어떻게 안전한 일터를 만들지, 비정규 노동자·현장실습생·이주노동자·여성 등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자리한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어떻게 내게 할 수 있을지, 이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게 할지가 장기적으로 저희 몫이라 생각한다.
경향신문 | 조문희 | 2020.10.26. 06:00
김용균재단 출범 1년.. 12월엔 2주기
김미숙 대표·권미정 사무처장
이행되지 않은 특조위 권고
발전소 안전 제자리에 ‘답답’
‘오전 8시30분, 이스타(국회) 1끼 단식’ ‘오전 11시 조문희 경향 기자(인터뷰)’ ‘오후 5시30분, 공공산업안전 활동가대회 발언’. 23일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이 펼친 다이어리에 적힌 이날 일정이다. 올해 초부터 기록을 시작한 다이어리엔 권 처장과 김미숙 대표의 매일 일정이 시간대별로 꼼꼼히 적혔다. 토·일요일에도 빈칸은 없다. 대부분이 노조 활동 참가, 산재 유가족과의 만남, 연대 발언, 언론 인터뷰이다.
김 대표는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였던 아들 김용균씨(당시 24세)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뒤 쉴 틈 없이 살았다. 매일같이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을 들고, 국회를 찾았다. 노동자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지난해 10월26일 아들의 이름을 따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을 출범하고 초대 대표를 맡았다. 재단은 비정규직 철폐와 산업재해 방지, 차별 없는 일터 건설을 목표로 했다. 권 처장은 김 대표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이다. 재단 1주년을 앞둔 23일, 두 사람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김용균재단에서 만났다.
- 1년간 재단 활동을 돌아본다면.
김미숙 대표 = 답답한 심정이다. 재단 만들고 1년쯤 되면 발전소 용균이 동료들 처우가 개선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 9월에도 용균이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노동자가 스크루에 치여 숨졌다. 하청·비정규직 등 취약한 지위의 노동자에 대한 안전대책이 여전히 미비하다. 지난해 8월 특조위(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이 이행됐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 나아진 것은 없나.
권미정 사무처장 = 합의는 있었지만 그뿐, 이행이 되지 않았다. 용균이가 일하던 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삽으로 퍼서 제거하던 관행이 문제로 지적됐다. 낙탄을 제거하다 삽이나 봉이 빨려들어가면 사람도 같이 끌려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거다. 용균이 사고 이후엔 물로 낙탄을 씻어내는 기계를 설치했는데, 모든 작업장에 설치하지 않고 용균이 사고가 났던 공장 내부에만 설치했다. 그러다 최근엔 수압 문제로 운영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과거와 똑같이 사람이 퍼야 하는 상황이다. 위험업무는 2인1조로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정규직을 충원하지 않고 1년 프로젝트직이나 3개월 계약직으로 메웠다. 등을 바꾸거나 추가 설치해 작업장 내 밝기가 좀 밝아졌고, 일부 마스크가 지급된 게 전부다.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비정규직과 특조위원을 포함하는 이행점검단이 필요하다.
김 = 책임자 처벌도 아직이다. 용균이 재판은 이제 막 시작됐다.
아들 관련 재판은 이제 시작
진심 어린 사과 기대했는데
발전소·하청 한마디도 없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최우선’
산재 사망 유가족 안내서 발간
회사와 싸움서 알아야 할 것들
김용균씨 사망사고와 관련해 기소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원·하청 책임자 공판준비기일이 지난 22일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열렸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측 변호인은 김씨가 하청 소속이기 때문에 원청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청인 한국발전기술 측 변호인도 산안법 위반 관련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과태료를 이미 냈으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는 더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재단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피고인들이 반성과 사과를 전하지 않을까 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밝혔다.
- 재단 활동은 어디에 주력하나.
권 = 비정규직과 노동안전이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관련해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는 일이 많다. 유가족 지원도 노동안전 문제의 일환으로 본다.
- 연대 활동이 많나.
김 = 처음부터 재단 활동은 독자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등 단체가 계속 함께했다. 사회 전체의 문제 아닌가. 한 단체의 의제일 수 없다.
권 = 특조위 권고안이 이행된다면 그 영향은 발전사 노동자들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물론 권고안이 이행되면 첫 번째로 적용되는 곳은 발전사겠지만 권고안에는 일반 사업장에도 적용돼야 하는 내용이 많다.
- 가장 바빴던 순간은.
김 = 지난 8월 특조위 권고안에 포함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했다. 당시 글을 써서 올렸는데 10만명의 동의를 받아야 청원으로 성립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거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단체문자를 보내면 사람들이 잘 안 읽지 않나. 한 명 한 명 전화를 돌리고, 메시지를 보냈다. 밖으로 나가서 피켓도 들었다.
- 도움 요청이 왔는데 못 간 경우도 많겠다.
김 = 산재 유족을 챙기는 일은 특별히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그랬듯, 가족이 일하다 사고를 겪으면 유족들이 가장 답답하다. 거대 회사하고 맞서야 하는데, 뭐 하나 아는 게 없다. 내 자식이 뭘 잘못했는지, 회사 잘못은 뭔지 파악해야 하는데 회사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와중에 사측은 회유부터 하려 하고…. 사측이 잘해주는 것처럼 굴지만 빠르게 적은 비용으로 처리하려 한다는 걸 유가족은 잘 모른다.
- 산재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도 최근 냈다.
권 = 처음 출범할 때 총회에서부터 얘기했던 계획이다. 산재 유족과 함께하면서, 그분들이 자기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였다. 사고 직후 유가족들은 이런 책을 볼 정신이 없다. 사고가 나기 전 누군가가 보거나, 사고 나고 일주일 뒤에라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자료 제작 목표다. 본인은 못 봐도 주변에서는 볼 수 있지 않겠나. 지금은 한 장짜리 리플릿을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한 장씩이라도 갖고 있다가 급할 때 볼 수 있도록 수천장 인쇄하려 한다.
후원자 2배로 늘어 1000여명
작은 정성·따뜻한 연대 감사
김 대표와 권 처장은 지난 2월부터 <산재 사망사고 유가족을 위한 안내서-수많은 우리들이 함께 찾는 길>을 준비했다. 발간을 위해 유가족들을 모아 인터뷰를 했는데 그 대상엔 김 대표도 포함됐다. 재단은 안내서에 대해 “가족의 사망사고를 알게 된 순간부터 단계별로 유가족이 처하게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각 장면에서 유가족이 갖는 법적 권리와 한계 등을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안내서 파일본은 11월 초쯤 재단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이번엔 산재 관련 사망사고만을 다뤘지만 앞으로 질병·과로사·직장갑질 등 문제도 살필 계획이다.
- 재단 운영은 어떻게 하나.
권 = 후원을 받는다. 설립 당시 후원자가 500명 정도 모였는데, 지금은 1000명 정도 된다. 일부는 정기회원이고 일부는 주춧돌(일시 후원) 회원이다. 주춧돌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한 번 도움이라도 재단 활동을 쌓아나가는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서다. 실제로 큰 힘이 된다. 특조위원들의 경우 활동수당이 나오는데, 대부분 그걸 다 재단에 후원한다. 재단 교육에 강의하러 오는 분도 많은데, 강사비를 드리면 다시 재단에 넣어주기도 한다. 초등학생·중학생이 친구들과 모임을 꾸려 강의를 듣고 공부하다가 후원한 경우도 있다. 한꺼번에 몇천만원, 몇억원 이런 큰 규모의 후원은 없지만 이런 마음이 저희한테는 훨씬 소중하다.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김 = 일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목표다. 법안은 현재 법사위로 넘어간 상태다. 국회는 관련법상 우리에게 12월20일쯤엔 1차로 답변을 해야 한다. 법사위 앞에서 캠페인을 열고, 엽서쓰기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권 = 용균이 일도 아직 안 끝났다. 책임을 묻는 법정 싸움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12월이면 용균이 사망 2주기가 되는데, 추모활동도 해야 한다. 12월6일부터 12일까지가 올해 추모주간이다. 최근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 챌린지에 많은 분들이 함께했지 않나. 가장 앞장섰던 가수 하림씨와 함께하는 자리도 마련하려 한다. 흔쾌히 응하시더라. 모든 일의 중심엔 어떻게 안전한 일터를 만들지, 비정규 노동자·현장실습생·이주노동자·여성 등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자리한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어떻게 내게 할 수 있을지, 이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게 할지가 장기적으로 저희 몫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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