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체사상이 밝힌 ‘사람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인 ‘창조성’에 대해 매우 친근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신앙’을 고백하고 있고, ‘창세기’를 통하여 전해진 ‘창조기사’를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체사상이 말하는 사람의 ‘창조성’과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창조신앙’ 사이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공통의 지평을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노둣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따르면,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사람에게 주신 축복이자 명령입니다. 다시 말하여, 하느님은 사람을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며,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규정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이 명령에 의해 사람의 본성이 규정된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이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본분이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이 명령에서 주체사상이 말하는 ‘창조성’과 공통되는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자연과 사회의 개조’에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을 개조하지 않고는 초보적인 생존조차 유지할 수 없습니다. 땅을 경작하는 것도 자연개조의 한 형태입니다. 또한 사람은 사회를 개조하지 않고서는 땅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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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위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신학이 ‘주체신학’으로 명명되는 이유는 우선, 그 신학이 다루는 대상이 주체사상(主體思想, Juche Idea)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을 다루는 신학은 신약신학이며, 구약을 다루는 신학은 구약신학이고, 이 둘은 모두 성서를 다룬다는 공통점으로 하여 성서신학으로 분류됩니다. 이처럼, 그 신학이 다루는 대상을 그 신학의 명칭으로 삼는 신학의 전통을 따라, 주체사상을 다루는 신학을 ‘주체신학’이라 명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주체사상 간 대화를 위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할 신학이 ‘주체신학’으로 명명되는 이유는 다음으로, 그 신학이 기초하고 있는 철학이 주체철학(主體哲學, Juche Philosophy)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하나의 사상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 사상과 공통의 철학적 지반 위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교 신학 전통과 해당 사상 간에 지평의 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이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대화하자면, 우선 화이트헤드와 철학적 지반을 공유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립된 신학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이름을 따서 과정신학이라 명명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신학이 공유하고 있는 철학적 지반의 이름을 그 신학의 명칭으로 삼는 신학의 전통을 따라, 주체철학에 기초하고 있는 신학을 ‘주체신학’이라 명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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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주체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