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서평)





촘스키의 글은 늘 새롭다. 감히 그 누구도 입에 올리지 못하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들려주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금껏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띤다. 그동안 촘스키 관련 글을 읽으면서 쌓인 궁금증을 프랑스의 두 언론인이 우리를 대신해서 촘스키와의 대화를 통해 시원스럽게 풀어주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촘스키가 지금까지 발표한 글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는 동시에 촘스키의 사상의 고갱이와 시대의 통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책이다.


촘스키가 우리에게 전해준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기존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하라는 것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기지의 사실에서 해방되라는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문제들을 다루었다. 은행가들의 권력, 중앙은행의 비정상적인 자율성, 금융과 경제의 과점 현상, 경제적 이득 때문에 외교적 해법보다 전쟁을 앞세우는 현상, 미국의 테러리즘, 다국적기업의 감춰진 전략과 새로운 역할, 선전 도구로 전락한 언론들, 민주주의에서 지식인의 역할, 눈을 뜨고 정보를 수집해야 할 필요성 ~~ 이런 주제들에 대한 촘스키의 생각은 공인된 주장들과 너무나 달랐다.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실제로 수천 년 전부터 그래왔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수필가이자 철학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도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우리 멱살을 잡지 않도록 민중을 교육시켜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민중을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많은 부분에서 지식인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5p)


촘스키의 책을 읽다 보면 촘스키의 표현대로 '여론조작'에 저항하는 촘스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지식인들이 '여론조작' 에도 일익을 맡고 있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부터 대중을 조절해서 동의를 조작해내기 위한 선전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현재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매커니즘은 자명하다. '책임 있는' 시민, 즉 전위부대가 한 나라를 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은 얌전히 있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그들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군인처럼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게 만들어야 한다.


홍보와 광고, 그래픽아트, 영화, 텔레비전 등을 운영하는 거대 기업의 주된 목표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의 경영자들은 아주 실리적으로 접근합니다. '대중을 삶의 표피적인 것, 즉 소비에 몰두하게 만들어야 한다!' 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의 벽을 세우고 대중을 그 벽 안에 가둬 격리시키려 합니다. 신문과 방송, 광고와 예술 등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간에 선전 자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선전 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울 뿐입니다. 예전부터 그 역할은 지식인의 몫이었습니다. 학식과 지식을 지닌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31p)


사회가 민주화될 때, 달리 말해서 국민을 강제로 통제하고 소외시키기 힘들 때 엘리트 집단은 선전이란 방법을 동원합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수법과 선전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타의 수법까지 동원한 공개적이고 의도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권력의 중심은 부자 나라에 있습니다. G3, 때로는 G8로 일컫는 최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기업들, 금융기관과 국제기관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습니다. 실제로 요즘 들어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과점형태로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과점 형태의 시장으로 변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강력하고 전제적인 힘을 지닌 소수 집단이 초강대국을 등에 업고, 때로는 국가의 정책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일부 경제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57p)


지난 25년간 엄청난 변화가 존재했다. 정치적 결정에 따라 공공 분야가 민간 기업으로 이전 되었다. 하지만 다국적기업들은 강력한 정부를 원한다. 울타리처럼 정부의 보호를 받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200년 전, "기업이 정부의 도구이자 정부의 지배자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한 제임스 매디슨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한다. 기업은 기꺼이 정부의 도구가 되었고, 정부는 기업을 앞세워서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하지만 기업은 정부를 지배하는 폭군이기도 하다. 기업이 정책 결정을 뒤에서 조정한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금융자본은 문자 그대로 엄청난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투기 자본의 총액은 거의 천문학적입니다. 대략 20억 달러가 매일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수백 배가 넘습니다. 게다가 단기성 투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에는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지만 금융자본의 입장에서는 훨씬 수익률이 높습니다. 자본주의요?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 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민간 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89~90p)


엄청난 권력을 지닌 개인 기업들이 서로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존하면서 위험과 비용을 분산시키는 체제이다. 그래서 '연대 국가 자본주의' 혹은 '기업 중상주의'라 부른다. 이 모든 것은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다. 실제로 세계 전역에서 국민에게 봉사해야 할 숫사의 역할이 쇠퇴하고 실질임금은 담보 상태에 있거나 줄어들었으며 노동시간은 늘어났지만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은 안데스 산맥 부근의 국가들에게 압력을 가해 코카 제배를 포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이런 압력이 지역 주민, 즉 농민에게 막대한 손해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나라들은 미국의 압력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콜롬비아 당국은 비행기로 코카나무 밭에 제초제를 뿌렸습니다. 그 와중에 주변 식물들까지 커다란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측하듯이,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코카의 제배는 계속될 것입니다. 게다가 마약 문제는 '수요'가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이지 '공급'이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정도의 추리는 상식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근원은 미국에 있는 것이지 콜롬비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07p)


외국에 있는 코카나무 밭은 범죄화 함으로서 코카 제배를 금지시키고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보다 예방 조치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식물을 제배한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에 군사적이고 생물학적인 공격을 가할 권리가 있는 것인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공격을 감행한답니까? 그 땅의 농부들이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코카를 제배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는 건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담배 때문에 아시아에서 매년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담배 농장을 폭격할 권리가 존재하는가?


회계상의 이동은 부자 나라들이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기업이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국민의 몫을 훔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국가의 역할 입니다. (114p)


1999년 11월 의회가 중국과의 통상을 승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만약 모든 것이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된다면 미국은 중국의 금융시장까지 지배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은행들과 투자금융 회사들이 모두 미국계 금융기관들에 종속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미국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미국이 한국에게 시장을 개발하라고 압력을 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미국의 지배하에 놓이고 말았다.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미국계 금융기관들은 한국의 은행들을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 라 부를 수 있는 체제의 파괴 공작에서 가장 앞선 나라일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 노동조합이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민주당이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정작 노동당이 하원이나 상원에 진출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20여 년 전부터 기업의 반격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미국의 여론은 상당히 급진적이었고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기업계로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 대대적인 선전 캠페인에 나섰습니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홍보 산업도 이제 거대한 공룡이 되었습니다. 하여튼 기업계는 학교와 교회와 스포츠 조직에 파고들어 사람들에게 자본주의의 장점을 세뇌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자본주의는 모든 국민의 유일한 신앙이 되었습니다. (131p)


지금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은 총공격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서 미국의 유명한 영화 <워터프론트>는 노동조합의 부패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노동조합이 부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처럼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는 생각을 심어줘야 했다. 그리고 기업계는 이제 국가정책까지 당당하게 공격하고 있다. 국민에게 국가는 적이며, 국가는 국민이 착실히 납부한 세금을 훔쳐간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진정한 민주 사회에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자유롭게 의사를 결정하고 공동의 프로젝트를 원만하게 진행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게다가 대대적인 선전 공작이 우리에게 정반대로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앞장서서 기존 질서를 뒤바꾸려 한다면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것입니다. 혁명까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령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당신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리겠지만, 당신은 절대 그 혜택을 즐길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행동하는 데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71p)


한국 사회만 보더라도 노동자 계급에게 노동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권은 법률적 절차에 의해 제한되고, 이 절차에서 제외된 모든 노동권은 부정 된다. 협소하게 인정된 노동3권 조차도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손해배상과 같은 법률적 절차에 의해 쉽게 무력화 된다. 단결권은 해고와 인사 불이익 위협에 의해 무력화 되고, 단체교섭권은 어용 복수노조와 교섭청구 단일화의 의해 봉쇄되며, 단체행동권은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불법적 대체인력과 폭력에 의해서 쉽게 무력화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헌법이 규정하는 노동3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은 필수업무유지제도와 대체인력투입으로 유명무실화되고, 교사와 공무원에게 단체행동권은 애초에 부여되지도 않는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아예 개인사업자로 규정되어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조차 부여되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는 노동권 행사 그 자체가 투쟁인 사회에 살고 있다.


촘스키가 행해온 일련의 작업과 지적 통찰은 결국 '표현의 자유'와 '진실의 규명'으로 귀결된다.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전될 때 민주주의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나이 든 학자의 열정이 그의 모든 글에서 느껴진다. 촘스키 그가 미국을 불량 국가 또는 범죄 국가로 규정하며 비난하는 것도 언론이 보이지 않는 힘의 압력으로 표현의 자유를 완벽하게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결국 지배 권력의 선전 도구로 전락한 언론과 지식인이 진실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진실의 메신저로 나선 촘스키가 난폭한 강자의 정의에 맞서 무기력한 약자의 정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정치인과 언론, 기업인이 권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다 라고 말한다. 이건 잘못되어도 정말 잘못 된 것이고 지금까지 역사에서 평등과 자유를 위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정치인과 언론, 기업인 등의 힘이 아닌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의 여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평등과 자유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그동안 배워왔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촘스키는 이 세상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과 지금 가장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기업가가 어떻게 평등하냐고 말한다. 똑같은 죄를 저질러도 죄의 무게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의 절대적인 힘은 국가마저도 좌지우지 할만한 기업인들이 장악했으며, 그 영향을 정치, 언론, 사회에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하게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기업에서 하는 광고와 선전, 그리고 국가에서 지식인을 내세워서 국민들을 우매한 사람 취급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평범한 시민과 노동자를 진실을 알지 못하게끔 세뇌시켰다고 한다.


읽고 있는 조지 오웰 1984의 인상 깊었던 내용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무리 하겠다.


"틀림없이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지만 개인 소유물과 사치품으로서의 부는 공평하게 분배하는 사회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존속하지 못했으리라. 왜냐, 모두가 여유와 안정을 누린다면 보통 빈곤에 찌들어서 무식했던 군중 대다수가 스스로 생각할 줄 알게 될 것이고, 이렇다면 필연적으로 지배계급이 사실상 아무 기능이 없었음을 간파하여 그들을 쓸어낼 것이었다. 결국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계급적인 사회는 빈곤과 무지에 기반할 수밖에 없었다."


변혁당 강령의 깜짝 등장!
건설적 비판은 언제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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