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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주란 무엇인가?

'우리민족끼리만' 자주를 내세우는 것은 민족자주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정한 민족자주는 '우리민족끼리'와 '세계의 양심적인 시민들과 연대하는 것'의 동시성이 없다면 결코 실현될 수 없다. '우리민족끼리만' 자주를 주장하는 것은 국수적, 쇄국적, 고립적 단견에 불과하다. 타자를 완벽하게 배제하는 주체의식은 전체주의 혹은 파시즘으로 전화될 위험성이 아주 농후하다. 우리는 히틀러에게서 타자를 배제하는 주체주의를 보았다. 히틀러가 내세운 게르만 민족의 민족자주는 결코 동의 받을 수 없었다. 아울러 팔레스타인들을 저토록 인간 이하의 삶으로 내모는 것은 물론이고 서슴지 않고 학살을 저지르는 이스라엘의 민족자주도 동의 받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단일민족의 혈통만을 강조하는 무조건적인 민족자주는 선(善)이 아니다. 참된 민족자주는 다른 민족과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자기 민족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 민족의 경우는 아주 특수하다. 특히 남쪽은 거의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자주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진보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민족자주의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민족자주를 아주 좁게 해석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그런 경향은 우물 안 개구리의 자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을 닫힌 자주라 부른다. 닫힌 자주는 교조주의와 좌경모험주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우물 안에서 혼자 잘난 체 하고, 혼자만 살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물 밖의 세계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우리는 우물 밖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열린 자주, 즉 국제연대와 함께 하는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이야말로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참된 길임을 명심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민족자주의 핵심은 아니다. 사실 해외미군의 재배치와 관련하여 미국은 한반도에서 미군(특히 보병부대)의 철수를 강력하게 바라고 있다. 일본의 오끼나와 기지에 신속배치군을 창설하여 유사시 신속하게 투입하는 전략으로 서서히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면, 미군은 공군과 해군을 이용한 전투에만 참여하고 싶은 것이 미국의 속셈이다.

공군과 해군이 육상을 초토화시키면 보병이 진출하여 소위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이 설거지를 한국군 보병에게 맡겨 미군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되기를 미국은 강력하게 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해외미군 재배치의 핵심적 사항이다. 한반도에서 보병의 철수는 미국이 원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미군의 철수는 곧 전쟁의 위험이 그만큼 더 커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군철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한미군의 대부분이 일본이나 태평양의 섬들로 철수한다고 해서 달라는 것은 무엇일까? 주한미군을 철수한 뒤에도 여전히 한미연합사의 작전지휘권이 미국에게 있고, 여전히 남측 정부는 허구적 평등과 실질적 예속 상태에 머물러 있고, 남북의 교류와 협력사업에 대해 지금처럼 강력한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고, 국가신용등급 조정 등의 경제적 협박을 일삼고 남측 정부와 국민들은 그것에 마냥 휘둘리고 있다면, 그것을 민족자주라 부를 수 있을까? 미군철수가 민족자주의 상징일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미군철수를 강렬하게 소망하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민족자주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민족자주의 핵심은 우리 민족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다. 그것을 직시해야만 한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은 이 땅의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미국의 체제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체제는 알게 모르게 거의 모든 분야에 내면화되어 있다. 미국이 북을 ‘악의 축’이라고 그토록 쉽게 단정 짓는 것처럼 의견이 다르다고 무조건 ‘악마’ 취급을 하는 것도 미국의 체제가 내면화되어 있는 현상 중의 하나인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미국의 체제는 이 땅을 허구적 평등과 실질적 예속의 상태로 지배하고 있다. 외교통상부의 외교관들과 공무원들의 친미 예속 상태는 도를 넘어서고 있으며 중산층 이상의 계급의 친미 예속 상태 역시 심각한 지경에 빠져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민족자주가 저절로 획득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분단 60년의 냉전체제는 곧 미국체제로 내면화되었다. 이것을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해외미군 재배치의 전략과 미군철수의 관계를 설명했는데, 이 부분이 빠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해가 발생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나는 2005년을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으로 열어가는 해도 만들기 위해서는 미군철수 운동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이 유일한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인권을 내세워 민족자주를 심각하게 해치고 있는 미국의 북 인권법안과 싸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고 해도 끝끝내 북의 붕괴를 노리기 위한 장치로 북 인권법안이라는 술책을 생각해냈다. 북 인권법안의 이전에도 미국은 ‘아시아 민주주의 기금’이란 정체불명의 자금을 중국의 동북3성에 뿌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법적으로 북 붕괴자금을 위에서 말한 변절자 그룹과 반통일세력에게 공공연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에게 인권은 돈벌이였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논리를 앞세우면, 특별히 대항할 논리를 찾지 못하고 궁색해지는 것이 남측 정부당국자들이며 국민들이다.

미국의 북 인권법안과 붕괴 전략이 민족자주를 해치는 정도는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작년에도 필자는 <대지의 운명공동체를 위하여>라는 기고문을 통해 미국의 북 인권법안의 허구성에 대해 지적한 적이 있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북 인권법안과 싸우는 것이 긴급하고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에서 민족자주의 문제, 민족자존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