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금요일(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기일이다. 그리고 올해(2020년)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 열사의 자취를 찾기 위해 Socialist가 대구 토박이로서 총대 메고 답사에 나섰다. 대구는 전태일의 고향이다.
(명덕역. 이곳은 2.28민주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이 네거리에 기념동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류공원 내로 이전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30여분 정도 가면 명덕역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은 명덕네거리가 있는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대구의 고등학생들이 이승만 극우독재정권의 농간에 맞서 민주주의의 힘찬 함성을 내질렀던 곳이기도 하다. 역에서 내려 명덕초등학교를 지나 골목길 깊숙한 곳에 들어가면 희망길 8호라는 이름을 가진 골목을 만날 수 있다.
(명덕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희망길 8호 골목길. 사진 내에서 안심벨 표시의 맞은편 건물이 전태일 생가다.)
(이 길로 계속 들어가면 전태일 생가가 나온다.)
이 골목길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남산로 8길 25-16 팻말을 단 건물이 나온다. 그 건물이 바로 우리의 전태일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곳이다. (지번 주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2178-1) 전태일 열사는 15살일 때 여기서 2년 정도 거주한 곳으로 여겨진다. 그는 이 집에 살면서 근처의 청옥국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에서 1963년 5월부터 1964년 겨울까지 수학하였다.
여기서 살던 열사는 그가 직접 쓴 수기의 표현대로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살았다. 물론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야 하느라 바빴지만 공부를 하고 가족 및 학우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이 그에게는 기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가 16살이 되던 해부터 가세는 다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학교는 2년만에 그만두어야 했고, 전태일은 가족들과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거기서부터 이제 전태일의 서울생활과 재단사로서의 노동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전태일 생가 앞에 붙어 있는 도로명주소 표지판)
(전태일 열사의 생가. 앞의 울타리는 새로 만든지라 깨끗했으나 집 자체는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못해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전태일 열사의 생가. 문이 닫혀 있어서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사진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골목은 갑자기 개 짖는 소리로 퍽 요란하였다. 알고 보니 생가 내에 강아지가 있어서 낯선 사람인 필자를 보고 짖은 것이었다. 개가 있다니, 이곳에 주인이 산다는 말이다. 어쨌든 필자가 갔던 그 시각에는 주인이 없었는지 요란한 개소리에도 나오는 사람 하나 없었다.
사진으로 집을 몇 장 찍고 나니 허전한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누가 이 집을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집으로 여기겠는가? 사실 필자도 지번 주소는 알았지만 정확한 도로명주소까지는 알지 못해서 골목을 몇 번 헤매어야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집 사진까지 검색해 대조한 후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는 전태일 열사가 살았다고 알리는 표시가 전혀 없었다. 그가 대구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듣기로는 이 집을 시민단체가 매입하여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현재 그를 위한 모금활동도 한창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이 생가가 전태일의 생가라는 표시라도 1차적으로 해주었다면 좋았을텐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루빨리 기념관이 세워져 전태일의 삶과 투쟁을 시민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은 흘러 떠나야 했지만 발길이 미처 떨어지지 않았다. 표시도 없고 추모도 없는 이곳...... 나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번에 제작한 50주기 추모 포스터를 20장 정도 프린트해왔다. 그걸 몇 장 붙이자 그래도 썩 이곳이 전태일과 관련된 곳 같았다.
(생가 맞은편 전봇대에 붙인 포스터)
(생가 옆 담벼락에 붙인 포스터)
(생가 근처에서 찍은 사진. 보다시피 필자가 붙인 포스터를 빼고는 전태일 열사을 암시하는 그 어떤 곳도 찾아볼 수 없었다.)
(8호 골목길 앞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전태일추모가. 이 노래는 당시 유행하던 곡조에 열사를 추모하는 가사를 붙여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포스터를 붙이고 골목을 나서며 필자는 나지막히 노래를 읊조렸다.
지금도 가슴 속에 잊혀지지 않는
전태일 동지의 외치던 소리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헛되이 말라
외치던 그 자리에 붉은 피가 흐른다
내 곁에 있어야 할 그 사람 어디에
다시는 없어야 할 쓰라린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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