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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당시 사민당 표어 폭풍 간지. "이 채제를 위해서는 한 사람도, 한 푼도 용납할 수 없다!" 


1. 이외로 189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베른슈타인은 마르크스주의의 권위자로 명망이 높았다고 함. 하긴 엥겔스의 유언집행인(더 정확하게는 사후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행사자)이라는 버프가 꽤 쎄긴 하겠다.


2. 베른슈타인은 절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하지 않았음. 단지 그 방안을 제국의회에서의 사민당의 승리로 보았고 그는 현재 상황으로 볼때 그것이 멀지 않은 시일안에 이루어지리라 믿었던 것. 그런 의미에서 볼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민주사회주의자에 더 가까움. (그에 대해서 카우츠키는 제국의회 자체가 예산의결권 말고는 권한이 거의 없는데 그걸로 뭘 하겠냐며 깠고 갤주님의 비판은 다들 알테니 생략) 


3. 베른슈타인의 이론은 사실 전술과 전략을 통째로 갈아버리자는게 아니라 이미 사민당이 개혁위주의 운동을 하고 있으니 그에 맞춰서 이론도 수정하자는 것이었음. 실제 수정주의자들이 지지했던것도 이때문. 다만 당시에 '수정주의자'는 말 그대로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그냥 개량주의. 


4. 베른슈타인 역시 반전파 의원이었음. 처음에는 민족적 방어전쟁으로 보았지만 1914년 10월부터 이미 이러한 행동을 후회했다는 증언이 있고 1915년부터는 공개 비판에 나섰음.


5. 그와 별개로 독립사민당과 다수파사민당을 마지막까지 중재하려고 시도했던것도 베른슈타인. 수정주의 논쟁 이후에 하도 당 주류에서 밀려나서 그런지 그게 가능했나봄. 


6. 베른슈타인은 1896년에 이미 스트라이크를 전술로서 활용하자고 주장함. 갤주님도 그랬는데요라고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갤주님이 그걸 언급할때는 이미 벨기에, 프랑스 등지에서 총파업이 일어난 다음이었다. 다만 그와 별개로 1905년 사민당이 파업을 요청했을때 노동조합의 반응은 "엥? 그거 완전 아나키스트적 발상 아니냐?"라고 하면서 깠다고 함. 


7. 내가 보기에 확실히 베른슈타인의 사상은 너무, 마르크스 이상으로 미래를 낙천적으로 보았음. 지금 득표율 올라가고있으니 조만간 원내 제1당 웃효! 이런 발상이었으니. 게다가 갤주님 말씀대로 "현실이 그렇다고해서 하나하나 타협하면 종국에는 혁명의 유무 그 자체마저도 타협하게 된다!"는 결국 반박하지 못한것으로 보임. 실제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궁창은 갤주님의 예언을 정확히 적중시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마르크스주의를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용하게 했다는 점은 분명 높게 사야한다고 봄. 


8. 한편 베른슈타인은 제국주의도 문명을 전파하는 점에서 좋은 점이 있다고 보았다. 미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