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역사논쟁이 불거졌을때, 현재 한성대 교수이자 서양사 교수이신 윤용선 교수님이 쓴 글입니다. 글이 정말 좋아 퍼왔습니다.)
필자는 요즘 언론의 자유를 보며 한국사회가 성숙했음을 피부로 느낀다. 일제 강점기 역사에 관한 논의에서조차 금기가 깨지고 있다. 더구나 독도 문제로 한참 예민한 시기에 말이다.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과연 비판받아 마땅한 것인지를 물었다. 취중에도 말조심 해야 했던 '우파'의 시대를 떠올리면, 한 교수의 의견개진은 의도하지 않게 '좌파'의 우월함을 증명해주는 듯하다.그러나 언론의 자유가 기대하는 것은 일방적인 외침이 아니라 이성적인 논의다.
한 교수의 주장은 전체적으로 사실이나 논리에 기초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차분한 논의를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시선을 끄는 대목이 있는데, 일제의 식민통치를 공산주의와의 관련 속에서 보자는 주장이다.이와 유사한 주장이 19년 전 독일의 한 극우 역사학자에 의해 제기된 적이 있다. 당시 베를린자유대 역사학과 교수였던 에른스트 놀테는 나치즘이 공산주의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보았다. 즉 히틀러는 스탈린주의로 표현된 '아시아적 야만'이 유럽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치라는 '대응 독재'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치즘은 독일적 현상이 아니라 스탈린 체제가 낳았다는 주장이었다.
유대인 학살조차 반공주의적 맥락에서 설명된다. 놀테가 보기에, 히틀러가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볼셰비즘이었지 유대인이 아니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유대인과 공산주의 운동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유대인 학살의 원인은 오랜 전통을 가진 반유대주의나 인종주의적 광기가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것이다. 반공주의적 논리비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소비에트 수용소 군도가 아우슈비츠의 모델이었다고 보았다. 1933년 집권한 히틀러는 1918년 가동되기 시작한 소비에트 수용소를 주의깊게 관찰한 뒤 '내부의 적'인 유대인을 제거하기 위해 적으로부터 이를 배웠다는 것이다.
한 교수의 주장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가 기저에 깔려 있다.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면 훗날 스탈린 체제하에서 민족의 이산과 대학살은 필연이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는 '다행'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정권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이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강제이주의 희생자로 흔히 언급되는 크리미아 타타르인과 독일계 러시아인은 당시 교전국이었던 독일 때문에 이산돼야 했다.조선인이 왜 정든 고향을 등지고 연해주로 이주해야만 했는가는 차치하고, 이들이 또다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것은 일본과의 협력에 대한 소련의 우려 때문이었다. 그 밖에 스탈린에 의해 평양에 세워진 조선인 괴뢰정권의 존재도 학살 운운하는 한 교수의 안중에는 없다.
한 교수의 주장에서는 모든 것이 반공주의를 위해 존재하며, 그래서 오늘날 북한의 궁색한 처지도 철저한 친일 청산과 관련 있다는 궤변이 등장한다. 한마디로 말해 그의 주장은 일제 강점에 대한 재해석이 아니다.이러한 사유의 폐쇄성은 신념화한 반공주의로부터 비롯된다. 신념은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래서 극우주의는 대개 폭력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점이 있다. 즉 얼핏 억지나 궤변 정도로 보이는 극우적 주장은 대개 추악한 의도를 감추고 있다.
놀테는 볼셰비즘과 나치즘의 인과론을 통해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죄의식과 부담을 공산주의에 떠넘김과 동시에 반공주의라는 효과를 노렸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역사서술의 초점은 이제 아우슈비츠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에 대한 고발로 옮겨져야 하는 것이다.일제의 지배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았다는 한 교수의 주장 역시 일견 단순한 반공주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과거사 정리에 대한 요구를 '좌파'의 음모로 매도하는 대목에서 숨은 의도가 드러난다.
지금까지 형식적인 참회 의식조차 한 번 없었던 과거사를 논하자는 요구가 '국민의 저질 심리를 자극'하는 '좌파'의 선동으로 치부된다. 친일의 동기와 배경에 대해서는 유형별로 분류해 가며 나름대로 심도있게 서술하면서, 친일 청산의 요구는 '좌파 기회주의'로 일괄 처리된다. 레드 콤플렉스를 이용해 추악한 과거를 감추고 과거사 논의에서 패거리를 만들려는 혐의가 짙다. 소위 색깔론이 역사논의의 장으로까지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허공을 향한 외침에 필자가 아랑곳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용선 한국외대 외국학연구센터(현재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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