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라는 일부일처제가 남성이 여성을 소유하려는 목적에서 형성된 제도로 보아 결혼제도를 폐지하고 동지애에서 비롯된 자유롭고 우연한 성적 결합 형태를 구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엥겔스가 「가족, 사적 자본의 소유, 국가의 기원」에서 군혼제(불륜, 성매매 등을 원인으로 한 간음)야말로 가부장적 남성의 '습성'이라고 비판하며 일부일처제로 귀결돼야 한다는 논리구조와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슈라의 섹스관은 오늘날 '폴리아모리'라고 불리우는 결합형태와 유사하였는데 「혼인관계 영역의 공산주의 도덕에 관한 테제」에서 정조관념의 존재야말로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고 성욕은 수면욕, 식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므로 제도적 속박이나 특정한 도덕관에서 벗어나 물 한 잔 마시듯 간단히 해결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레닌과 스탈린은 당연히 아무 물이나 막 마실 수는 없지 않냐고 강력히 반발했고 그녀의 사상은 '물 한 잔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폄하됐다.
소련의 여성권익보호기구 제노텔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그녀는 전위당의 비민주성도 비판하였는데 특히 1920년 트로츠키가 모든 노조는 혁명 이후 국가와 적대적 모순 관계에 놓일 필요가 없으므로 국가의 관리하에 놓여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슈라는 노동자반대파를 결성하여 전위당의 독단에 대항하였다.
그리고 그 즈음, 크론슈타트에서 수병들이 봉기를 일으켰는데 결과는 아마 다들 잘 알 것이다. 끔살
슈라는 외교관으로 좌천됐고 이후 저술활동을 열심히 하며 사실혼관계도 맺고 아무튼... 스탈린의 견제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52년 병사까지 큰 부담없이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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