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성애는 혁명 초기에도 비범죄화 정도고, 스탈린 이전 시기에도 지역적 사정 등에 따라 처벌 사례가 빈번하였음. 사상적 문제보다 당대 사회적 의식 또는 지역적 인습/구습에 기반. - dc App
Constructivist(mars1905)2020-11-23 10:29
답글
그럼 결국 하나의 타협을 한 셈 아니야?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면서 결국 사회적 의식에 기반하여 동성애에 대해서 허용을 하지 않은 것이잖아. 그리고 결국 스탈린이 다시 동성애를 범죄화시켜버렸고.
익명(129.127)2020-11-23 10:35
답글
요는 본문에서 말하는 "스탈린 환원론"이 무조건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 비범죄화란 법적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며, 구시대적 인습이 끼친 악영향에 불구하고 동성애 자체가 아예 금지된 것도 아닌데 여성들과 같은 경우면 그러함. 사회적 제 조건에 불구하고 극복 의향/여지는 있었다고 생각.
Constructivist(mars1905)2020-11-23 11:32
답글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2026-07-21 11:03
답글
해결의지가 있었다는 점은 참 좋긴한데 그게 결국 이후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솔직히 슬픕니다...
익명(129.127)2020-11-23 11:52
답글
레닌의 시대가 오래 갔다면 아마 이정도는 아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짧았고, 레닌이 바란 사상에 사람들이 전부 받아들이기에는 어찌보자면 시간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라는 조그마한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다시 탄압을 시작했으며, 그 이후 사회주의 붕괴때 다시 정교회가 먹어버렸으니...
익명(129.127)2020-11-23 12:03
강요 안함
Hasta_Simpre(sunjaesun1)2020-11-23 10:30
답글
진심으로 하는 소리임? 1930 중반부터 정통/보수적 가치가 사회/가정 규칙에 다시 적용되기 시작했고, 다시 이혼마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는데.
익명(129.127)2020-11-23 10:39
답글
여성이 집에서 가사나 돌보아야 한다는 관념이 팽배했다면 사회 각 기구로의 활발한 진출이 실질적으로 증가한건 어떻게 되는지 설명이 되지 않음. - dc App
Constructivist(mars1905)2020-11-23 10:54
답글
레닌 시대부터 시작하여 스탈린 시대에도 여성의 사회참여 및 공직비율은 꾸준히 높아졌음. 여성인권의 후퇴는 오히려 소련 해체 이후에 이루어졌고.
Hasta_Simpre(sunjaesun1)2020-11-23 11:14
답글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긴 했지만 그게 진정으로 여성에 대한 공평성을 위해 행한 사회적 현상은 아닌것 같은데. 스탈린 시대 당시에 낙태조차 금지 당했고, 그 법이 풀리는 데 까지는 스탈린이 죽고 난 뒤 2년정도 걸림(1950년대). 그저 사회에 여성의 참여율이 늘어난 이유는 노동력의 보충을 위함이지, 진정 평등에 기반한 결과는 아닌 것 같아. 만약 진정 평등을 위한 공평한 채택이였다면, 1977년 당시 여성의 교육은 보장해주면서 정작 ‘어머니상’에 대한 강조가 사회적 관습이 강한 사회풍조가 남아있다는 것과 모순이 되고, 또한 1979년 당시 ‘여성과 러시아’를 출판하고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KGB에서 체포하고 이민보내버렸으니까. (타티야나 고리체바, 나탈리야 말라홉스카야, 타티야나 마모노바)
익명(129.127)2020-11-23 11:41
답글
뭐... 사실 그 당시 여성인권은 전체적으로 개판이였고, 그나마 소련이 다른 진영들에 비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높은 편이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측면이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익명(129.127)2020-11-23 11:50
답글
단순 노동력 보충을 위해 여성을 이용했다기엔 스탈린 시기에도 고등교육을 마친 전문가 중 44%가 여성이었고 스탈린상 수훈자는 237명. 여권 신장을 위한 노력이 상당히 지속됐고, 모순이야 물론 있을 수 있어도 그것은 사회주의적 생산체계 성립 과정에서 극복의 대상으로써 공직 및 전문직 진출 부문에 있어 소련 존재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상승.
Constructivist(mars1905)2020-11-23 11:54
답글
+ 모성에 대한 강조가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모순된다는 주장에는 의문이 있음. 내전이나 대독전쟁이라는 역사적 제 조건 하에서 사회주의적 인간형 창출 촉진을 위한 시도. 즉, 집단적 이해요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자본제적 생산양식이 자리잡힌 사회와는 달리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지 않음. 아동보호 기구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들의 강구(1944년)에 따라 가사노동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지속되었음. (예카테리나 셀레즈네바) 여성들의 그러한 이중고 경감-일소는 공직 및 전문직으로의 비약적 진출 토대로 작용했고 쏘련에서 여성권익은 기본적으로 존중되었음. 결론적으로 이 둘은 상호 대립이 아닌 상호 통일적 성격을 지님. - dc App
Constructivist(mars1905)2020-11-23 14:26
2. 이리나 말렌코나 소련 여성인권을 연구해온 여러 인사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이야기. 자유투사들보다 보장을 안해줬다면 시장화 이후 상황과, 소련 내부의 자체적 기구들의 역할을 간과하는 처사 - dc App
1. 동성애는 혁명 초기에도 비범죄화 정도고, 스탈린 이전 시기에도 지역적 사정 등에 따라 처벌 사례가 빈번하였음. 사상적 문제보다 당대 사회적 의식 또는 지역적 인습/구습에 기반. - dc App
그럼 결국 하나의 타협을 한 셈 아니야?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면서 결국 사회적 의식에 기반하여 동성애에 대해서 허용을 하지 않은 것이잖아. 그리고 결국 스탈린이 다시 동성애를 범죄화시켜버렸고.
요는 본문에서 말하는 "스탈린 환원론"이 무조건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 비범죄화란 법적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며, 구시대적 인습이 끼친 악영향에 불구하고 동성애 자체가 아예 금지된 것도 아닌데 여성들과 같은 경우면 그러함. 사회적 제 조건에 불구하고 극복 의향/여지는 있었다고 생각.
이 댓글은 게시물 작성자가 삭제하였습니다.
해결의지가 있었다는 점은 참 좋긴한데 그게 결국 이후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솔직히 슬픕니다...
레닌의 시대가 오래 갔다면 아마 이정도는 아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짧았고, 레닌이 바란 사상에 사람들이 전부 받아들이기에는 어찌보자면 시간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라는 조그마한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레닌이 죽고 스탈린이 다시 탄압을 시작했으며, 그 이후 사회주의 붕괴때 다시 정교회가 먹어버렸으니...
강요 안함
진심으로 하는 소리임? 1930 중반부터 정통/보수적 가치가 사회/가정 규칙에 다시 적용되기 시작했고, 다시 이혼마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는데.
여성이 집에서 가사나 돌보아야 한다는 관념이 팽배했다면 사회 각 기구로의 활발한 진출이 실질적으로 증가한건 어떻게 되는지 설명이 되지 않음. - dc App
레닌 시대부터 시작하여 스탈린 시대에도 여성의 사회참여 및 공직비율은 꾸준히 높아졌음. 여성인권의 후퇴는 오히려 소련 해체 이후에 이루어졌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긴 했지만 그게 진정으로 여성에 대한 공평성을 위해 행한 사회적 현상은 아닌것 같은데. 스탈린 시대 당시에 낙태조차 금지 당했고, 그 법이 풀리는 데 까지는 스탈린이 죽고 난 뒤 2년정도 걸림(1950년대). 그저 사회에 여성의 참여율이 늘어난 이유는 노동력의 보충을 위함이지, 진정 평등에 기반한 결과는 아닌 것 같아. 만약 진정 평등을 위한 공평한 채택이였다면, 1977년 당시 여성의 교육은 보장해주면서 정작 ‘어머니상’에 대한 강조가 사회적 관습이 강한 사회풍조가 남아있다는 것과 모순이 되고, 또한 1979년 당시 ‘여성과 러시아’를 출판하고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KGB에서 체포하고 이민보내버렸으니까. (타티야나 고리체바, 나탈리야 말라홉스카야, 타티야나 마모노바)
뭐... 사실 그 당시 여성인권은 전체적으로 개판이였고, 그나마 소련이 다른 진영들에 비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높은 편이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측면이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단순 노동력 보충을 위해 여성을 이용했다기엔 스탈린 시기에도 고등교육을 마친 전문가 중 44%가 여성이었고 스탈린상 수훈자는 237명. 여권 신장을 위한 노력이 상당히 지속됐고, 모순이야 물론 있을 수 있어도 그것은 사회주의적 생산체계 성립 과정에서 극복의 대상으로써 공직 및 전문직 진출 부문에 있어 소련 존재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상승.
+ 모성에 대한 강조가 가사노동의 사회화와 모순된다는 주장에는 의문이 있음. 내전이나 대독전쟁이라는 역사적 제 조건 하에서 사회주의적 인간형 창출 촉진을 위한 시도. 즉, 집단적 이해요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자본제적 생산양식이 자리잡힌 사회와는 달리 여성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지 않음. 아동보호 기구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들의 강구(1944년)에 따라 가사노동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이 지속되었음. (예카테리나 셀레즈네바) 여성들의 그러한 이중고 경감-일소는 공직 및 전문직으로의 비약적 진출 토대로 작용했고 쏘련에서 여성권익은 기본적으로 존중되었음. 결론적으로 이 둘은 상호 대립이 아닌 상호 통일적 성격을 지님. - dc App
2. 이리나 말렌코나 소련 여성인권을 연구해온 여러 인사들은 오히려 정반대로 이야기. 자유투사들보다 보장을 안해줬다면 시장화 이후 상황과, 소련 내부의 자체적 기구들의 역할을 간과하는 처사 - dc App
http://napo.jinbo.net/v2/archives/5828
- dc App
http://lmagit.jinbo.net/bbs/zboard.php?id=newspaper&page=5&sn1=&divpage=1&sn=off&ss=on&sc=on&sl1=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65
- dc App
페미 ㅈ같앗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