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문학가 이태준의 중국기행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951년에 쓴 글로 당시 혁명으로 탄생한 중국에 대한 이태준 작가의 생각과 한국전쟁 당시 중국의 지원(항미원조)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있는 글입니다.)

 

101일은 우리 형제나라이며 우리 전우의 나라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절이다. 자기들의 위대한 승리와 창조의 축전인 건국 명절을 두 돌 째 맞이하여 중국 총공회를 비롯한 전 인민적 단체들은 세계 우호각국에 인민대표 관례단을 초청하였다. 나는 이번에 다행히도 우리나라로부터 가는 이 우방 국경절 관례단의 일원으로 오래 두고 그리워 하던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중국! 이는 매우 오랜 나라다. 이는 가장 오랜 역사와 가장 먼저 발달된 고대 문명국의 하나다. 동양에서 널리 써온 한문자를 창조한 나라며 세계에서 화약을 먼저 발명했으며 만리장성을 쌓았으며 세계 어느 박물관에 가든지 가장 중요한 케이스 속에 놓여 있는 상주의 청동기와 한의 칠기와 당의 삼채와 송명의 화려한 도자기들을 제조한 나라다. 오래고 넓고 많은 인구와 자원을 가진 이 나라에는 또한 많은 낡은 것으로 엎치고 많은 침략자들의 그물로 덮치어 무한 암담하고 혼란한 나라이기도 하였다. 어디보다 뿌리 깊은 봉건의 나라였으며 드센 군벌들의 나라였으며 모욕으로 찬 외국 조계들의 나라였다. 세계 인구의 사분지 일이나 되는 다수한 인민이 장구한 세대에 걸쳐 이중 삼중의 억압 속에서 신음한 나라다. 이런 중국은 우리 조선과 가장 가까이 이웃하여 있다.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관계가 깊었으며 근대에 있어 외국 자본주의 침략 하에 같은 운명으로 신음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이는 가장 나어린 새 나라다. 중국인민해방군이 한때 여덟 강도국 군대가 상륙하여 저마다 둥지를 틀고 앉았던 천진을 해방시키며 유구한 봉건역사로 굳게 잠긴 북경 성문을 열어젖뜨린 것이 바로 어제 같던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불의 군함들이 가로막고 나섰으나 드디어 장강을 넘어 장개석의 매국 수도 남경을 해방시키고 중국의 최대 도시 상해를 해방시킨 것이 어제 같던 중화인민공화국이다. 갖은 봉건 독소와 갖은 제국주의 침략의 추악한 것으로 뒤엉킨 낡은 중국을 자리 말 듯 걷어버리고 그 넓고 비옥한 새 대륙 위에 현란히 일어선 새 중화인민공화국! 이 위대한 승리와 창조를 수행한 중국인민에게 누가 축복하지 않으며 이 위대한 승리와 창조를 수행한 중국인민에게 누가 축복하지 않으며 이 위대한 승리와 창조를 영도한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의 수령 모택동 주석에게 누가 최대의 경의와 흠모를 아끼랴! 중화인민공화국은 전체 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청산하는 불패의 기지로 되었으며 세계평화 확립을 위한 또 하나의 위대한 정세로 올려 솟은 것이다. 새 나라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유와 평화를 애호하는 전 세계인민들의 새 축복의 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중화인민공화국 47,500만 인민들은 오늘 조국해방전쟁에 궐기한 우리 조선인민을 도화 한 원수 미제 참략군대를 격멸 구축하기에 한 전호 속에서 싸워주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을 향하여 떠나는 우리 조선 관례단의 마음은 더 감축스럽고 더 뜨거운 우애에 설레었다.

 

927일 황혼, 직총의 현훈, 여맹의 조복례, 평화옹호 전국민족위원회의 정성언, 민청위 김봉호 영웅, 민주조선의 임성학, 그리고 필자 여섯 명의 우리 일행은 발바리 두 대에 나눠 타고 평양을 떠났다. 며칠째 공중전에서 참패를 거듭한 미군 공중 강도들은 낮에는 보이지 않는 고공에서만 얼씬거리다가 날이 저물기가 바쁘게 머리 위에 낮추 떠 잉잉거리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별 하나 볼 수 없게 흐렸다. 거의 십 분에 한 번씩은 길옆과 산등에서 항공소리 아니면 불을 끄라는 신호로 총소리가 일어났다.

 

우리는 길을 순천 쪽으로 잡았는데 사인장을 지났을 때다. 지척에서 산이 갈라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고 그 곳 산골짜기는 마치 용광로가 터진 것처럼 흙도 바위도 불덩어리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놈들은 군데군데 관등놀이 하듯 조명탄을 달아 놓기도 하였다. 어떤 데는 한군데다 대여섯 개씩 달아놓아 차들이 불을 끈 채 달리기에 제격이요, 오래간만에 정말 불놀이나 바라보는 듯한 착각도 해롭지 않았다. 예전 우리 선조들의 중국 다니던 기록을 보면 무인지경에서 밤을 지날 때 무서운 것이 늑대와 범이라 하였다. 사람과 말을 물려 보낼까 보아 밤새도록 화톳불을 놓고 번을 서 짐승을 지켰다더니 오늘 우리는 미제 야수들 때문에 불을 끄고 밤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다니는 길에서 화톳불을 놓고 범과 늑대를 경위하던 것이 오늘에 와 옛말이 된 것처럼 미제 야수들 때문에 차들이 불을 끄고 밤길을 다니는 이것도 며칠 안 있어 옛말이 되고야 말 것이다.

 

28일 저녁 아직 해 있어 우리는 안동으로부터 마중 온 우리 대사관 연락소 차로 압록강을 건너게 되었다. 항미원조 안동분회의 석 주임을 비롯한 안동시와 안동 민청간부들의 뜨거운 영접으로 안동 시내에 들어가 교체처에서 쉬었고 심양 가는 밤차에 오르기까지 나는 안동 거리들에서 골목길에서 정거장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과 많은 풍물에 시선을 더듬었다. 나는 경쾌하게 달리는 열차 침대에 누워 절로 떠오르는 한 가지 회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 삼십여 년 전이다. 나는 십오, 육 세 소년 때 직업을 찾아 전전하여 안동에까지 온 일이 있었다. 정거장 근처와 제목 끌어올리는 부두 근처와 진강산 공원에서 많은 노동자들과 걸인들과 더불어 며칠 지내본 일이 있다. 그때는 벌이끈을 잡은 노동자들도 성한 옷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한두 끼식 굶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어 거지와 도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란 인상을 강하게 받았었다. 어떤 건 당포 앞에서도 직업을 잃은 한 청년을 도적이라고 하수도 속에 몰아넣고 일본 순사 놈이 총으로 쏘아 죽여서 끌어내는 것을 보았다. 일본놈이 게다를 끌고 중국인 참외 장사에게로 와서 배불리 먹고 나중에는 먹던 것을 뱉으며 썩은 것을 판다고 트집을 걸어 돈을 안내는 것은 고사하고 게닷발로 차가 때리고 유유하게 가버리는 것도 보았다. 이런날도적들을 잡아가는 경찰이 없을 뿐 아니라 이 왜놈 앞에는 눈 한번 마주 홀기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중국은 중국의 한끝인 이 변강도시 안동에서만 잠시 보아도 전혀 딴 천지로 되었다. 그 간악하고 거만스럽던 외국강도놈들은 그림자도 없이 사라졌고 길이 메는 많은 사람들 속에 남루한 옷을 볼 수 없다. 거지도 아편쟁이도 해만 지면 골목마다 나앉던 매춘부도 그 흔하게 벌어지던 싸움판도 주정꾼도 눈에 띄지 않는다. 휴지쪽 하나 거리에서 본 기억이 없다. 깨끗하고 튼튼해 보이는 남빛 옷들과 혈색 좋은 얼굴들이 어떤 인상적인 영화를 구경한 날 밤 같이 잠시 지나본 새 안동 거리의 인상으로 머릿속에 깊이 찍혀져 떠오른다. 특히 남녀 간 스텐칼라의 공작복을 입은 사람들이 빈번히 지나갔다. 그 전엔 철망이나 실그물을 몇 겹 두르고도 간색만 보이던 노점의 상품들이 만져보기만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가린 것 없이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고 특히 그전 안동에서는 보기 드문 감, , 바나나 같은 남방 산물들이 흔하게 벌어져 있는 것이다.

 

오늘 안동에서 쓰는 돈은 그 돈 그 품 이대로 전 남중국 서중국 각지에서 그대로 쓴다고 한다. 돈이 그렇듯이 대륙 동서남북 각지에서 나는 물건이 그대로 동서남북 각지에 퍼지되 모리간상의 손으로가 아니라 국가계획에 의하여 싼값으로 교류되는 것이라 한다. 옛날 중국의 어느 임금은 애첩에게 몇천 리 밖에 나는 여지라는 과실을 먹이기 위하여 기병들을 동원시켰다 하거니와 오늘 새 중국에서는 천하 만인의 식탁에서 몇만 리 밖 과실과 반찬이 제 고장 물산처럼 풍성하게 오르게 되었다. 인민들의 생활은 풍성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인민들의 자기 주권에 대한 신뢰와 항미원조에 대한 정치적 각성은 다시금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심양에서 929일부 동북일보를 보았는데 석 달 전에 전 동북성 시 공작자 회의에서 고강 동지로부터 동북 노동자들에게 호소하기를 금년 말까지 식량 500만 톤 가격에 해당하는 물자를 증산하며 절약하기를 제의한 바 있었는데 그것이 불과 석 달 동안에 500만 톤의 배 1천만 톤 가격을 초과하였다고 보고되고 있었다. 이 증산과 절약에서 얻은 가치는 4,200여 대의 로켓 비행기 대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 중국적으로는 비행기와 대포 기금을 헌납하는 애국운동으로서 국경절을 맞이하자는 대중적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액수는 925일 현재 9,970억 이상에 달하여 곧 1만억원을 돌파하리하고 보도되고 있었다.

 

중국은 물론 많은 인구를 가졌다. 그러나 공화국이 되어서야 갑자기 쏟아진 인구는 아니다. 중국은 풍부한 자원과 광대한 토지를 가졌다. 그러나 공화국이 되어서 비로소 드러난 자원이나 대류은 아니다. 문제는 자기들의 정권이요, 노예 아닌 노동이요, 자기 자신들의 땅인데 있는 것이다. 이 진리에서 올려 솟는 인민의 무진장한 잠재 역량은 위대한 소연방을 비롯하여 모든 인민정권인 나라들의 급속히 융성 부강하는 공통의 원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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