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대한 호소
CNT는 노동자들의 적인 아이구아데와 로드리게스 살라스의 통제 아래에 있는 카탈로니아 경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중요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한참 충돌이 벌어지는 동안 어떤 두 자유지상주의 단체들은 ”당신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호소했고, ”이 시위는 당신들을 반혁명적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려는 자들을 향한 것“ 이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방송된 호소문들 중 하나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력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기나긴 거리에서의 무력충돌은 알기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조직원들이 수많은 피와 힘을 쏟아 부은 CNT의 완전한 파괴를 바라고 있다. 그들에게 속지 말라, 경찰관들이여! 당신들도 알고 있듯, 당신들이 근거를 가지고 있듯, CNT와 FAI는 그대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반파시즘적 대의에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이다. 당신들의 자리는 7월 19일 때와 마찬가지로 민중의 쪽이다.“
CNT 와 FAI, 그리고 트로츠키주의
서로 다른 많은 조직들이 낸 호소문에는 바르셀로나에 평온이 돌아오게 된 뒤에도, 그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반파시스트적 단결을 확립할 필요성에 대한 언급이 대체로 포함되어 있다. 반파시스트 전선에 서 있는 조직에 대한 공격과 고발은 피해가는 편이었다. 5월 3일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일련의 움직임들은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이었고, 몇몇 개인이나 조직의 일은 아니었으며, POUM의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논해보겠다.
공산당은 자신들의 주된 비난대상인 소위 트로츠키주의자 (POUM)에 대해 비난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 POUM은 몇몇 카탈로니아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난 작은 마르크스주의 분파로서, 스탈린주의에 반하는 조직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공산주의 조직들 사이의 차이점들을 세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기에, 이 점에 대해서 깊게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여러 유기적 형태의 조합주의, 그리고 그 특유의 아나키즘 이념을 통해 CNT는 다른 반파시스트 조직과는 깔끔하고 날카롭게 구분된다.
현재 POUM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1936년까지, 스페인 노동운동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아나키즘 운동을 필수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여겼다. CNT와 FAI는 그들과 그 어떤 공통점도 없다. 1936년부터 그 당은 끊임없이 좌경화의 길을 밟았고, 이 내전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나키스트들과 기초적인 개념은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은 본질적으로 핵심적인 분야에서는 더 이상 동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POUM은 분명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들의 시위에 참여한 것은 맞지만, 그들이 CNT와 함께 도시에서 움직였던 것을 비난하는 모습은 마치 나치가 유대인들을 평화조약, 혁명, 반동 등 모든 것에 대한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POUM과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지만, CNT는 그들을 반파시스트 조직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5월 9일, Solidaridad Obrera는 경찰들이 점령한 POUM의 인쇄소를 다시 POUM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며, 이는 이행되었다.
POUM과 함께 움직였던 것,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국제 언론에 퍼진 또 다른 흑색선전이자 비난이다.
이러한 비극적인 헛소문의 또 다른 형식은 이러하다. 이번 사태에서 CNT는 FAI의 아나키스트들에게 통제받는 입장이었는데, CNT가 그 아나키스트들에 반기를 들어 폭력사태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완전한 상상일 뿐이다. 5월 3일에서 6일까지 있었던 모든 논의와 토론을 통해 결정된 것들과 작성되고 발표된 선언문들은 바르셀로나의 모든 자유지상주의 운동의 위원회들, CNT 지역위원회와 FAI 지역위원회, 자유지상주의 청년단 지역위원회 등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노동자들의 이 모든 움직임들은 CNT나 FAI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으며, ‘바리다스’ 라고 불리는 도시 노동자 구획으로부터, 인민들 그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CNT와 FAI는 거리에서 피비린내 나는 사태가 수그러들 때 까지 노동자들의 대표들과 끊임없이 협상했으며, 종국에는 ”사격 중지“ 라는 공통합의를 내릴 수 있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CNT와 FAI 사이의 반대의견이 있을 수는 없었다.
CNT와 FAI에 대한 투쟁가들의 성명
5월 4일 밤, 다양한 반파시스트 조직 대표들의 연설이 방송되었다.
그 중에서도 마리아노.R.벨라스케즈 CNT 전국위원회 서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지들, 아나키스트들, CNT 조합원들, 반파시스트적 노동자들이여. 이 중요한 때에는 7월 19일 때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라! 전선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화약을 단 1온스도 낭비하지 마라! 그대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할 수 없다면, 프랑코는 우리에게 그 자신의 법을 강요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파시즘을 이겨내는 의무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우리가 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우리에게 경멸을 표할 것이다.“
세베리노 캄포스 CNT 지역위원회 서기는 5월 10일, Solidaridad Obrera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써냈다.
”우리 카탈로니아의 아나키스트들은 공격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 누구라도 알 수 있듯, 수세에 놓였으며 방어를 하고 있다. 우리는 후방에서 서로 학살해대는 것이 전선에서 모든 정치적 차이, 노동조합의 다름을 뛰어넘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를 알고 있으며,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을 원한다.“
CNT와 FAI의 잘 알려진 모든 투쟁가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주장을 외쳤다. 노동자 구획의 모든 노동자들은 이번 비극적인 사태가 도발행위로 인해 야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로 인한 깊은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여 바리케이드에서 내려와 노동을 재개했다.
카탈로니아의 현재 상황
서로 다른 반파시스트 조직들 간의 대대적인 싸움은 회피됐다. CNT와 FAI는 그들이 여전히 노동자들이 믿고 있는 유일한 노동자들의 조직이란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혁명 발전의 적들, 그리고 외세의 비밀요원들에 의해 그들 스스로가 제거되도록 내버려두고자 하는 것 또한 아님을 증명했다.
이 사태의 끝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그 어떤 제재나 처벌도 내려질 수 없고, 내려져서는 안 되며, 내려지도록 해도 안 된다. 하지만 결국에 경찰력에 대한 숙청은 진행되어야 하며, 그 안의 의심스러운 사람들은 배제되어야 한다. 발렌시아 중앙정부가 파견한 경찰병력의 경우에는 모두 반파시스트적 성향을 가진 민병대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자원해서 전선에서 싸워왔기에 카탈로니아에서 경찰로서 활동할 자격이 있다. CNT와 FAI는 이전에 ‘Tierra Liberta’ 라는 민병대 부대를 이끌었던 현 카탈로니아 치안당국 수장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제 그들은 모든 도발행위가 멈추고, 피해가기를 바란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회혁명에 투신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 칭하는 사람들에 의해 반대당하고 저지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견뎌낸 거대한 희생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1936년 7월 19일 이전의 정치, 경제적 조건 회복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CNT와 FAI는 인민들에게 본질적인 사회의 변혁과 그 이념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두 조직은 반파시스트 인민들의 공동의 적에 대한 투쟁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 두 조직의 궁극적 목표는 경쟁이나 폭력으로 실현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며, 지적이고 조직적이면서도 사회-문화적인 창조적 정책의 결실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운동은 파괴될 수 없음을 천 번 이상 증명해보였고, 이는 CNT 또한 해당된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착취와 억압, 지배의 정권에 맞서 싸워왔다. 스페인의 모든 정부들은 이들을 말살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 어떤 살인과 체포, 기소도 민중의 자유지상주의적 열망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조용한 음모, 그리고 모든 종류의 국제 언론을 통한, 혹은 국제 언론의 비방 캠페인은 결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파리 주재 스페인 대사인 아라퀴스탄이 그의 힘을 남용하여 군주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터무니없는 협력조약에 대해 선전했던 것처럼, 비방하는 사람들은 그 저자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CNT는 그 스스로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그들이 활동하는 효과는 나날히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원래 소수였던 지역에서의 놀라운 발전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그들의 전술 또한 개선하고 있다. ”CNT와 UGT, 두 스페인 노동자들의 조직은 서로를 집어삼킬 작정으로 움직여서는 안되며, 합의를 통해 움직여야 한다.“ 라고 말한 오로본 페르난데즈의 충고를 그들은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혁명적 노동자들의 동맹은 상호이해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할지 말지에 대한 의문의 여지는 전혀 없다. 이것 이외의 상호이해를 위해 할 수 있는 다른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상호이해는 어려울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두 조직은 서로를 적으로 여겼으며, 한 조직은 혁명적 대중의 편에 섰고 한 조직은 압제자들 편에 섰기 때문이다. 1933년, 스페인 사회주의자들이 ‘민주주의’ 에 대한 환상을 잃기 시작했을 때 와서야 비로소 몇몇 문제들에 대한 재접근이 가능했다. 그리고 여전히 긍정적 방향의 상호이해를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수많은 부르주아들이 그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과 불안에 떨면서 사회주의적 노동조합으로 피신했다. 스페인에 근거하지 않은 외세가 반파시스트적 스페인과의 연대를 과시하며 이득을 꾀하려 하는 정치적 흐름도 UGT가 퇴보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NT는 1934년 이래로 CNT조합원들과 함께 같이 탄압을 당했으며, 오늘날에는 프랑코 도적떼들과 함께 맞서고 있는 UGT의 사회주의적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함께하자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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