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림-야비-MT와 학림-전망-MC
무림계열과 학림계열 모두 당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에 동의하여 이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음. 이들이 왜 분화되었냐면 방법론의 문제인데, 무림계열은 폭력을 용인하는 강경투쟁과 노학연대, 전위를 주장하였고 학림계열은 개량적인 온건투쟁과 학생주도운동, 자주적 운동을 주장함.
강경-온건 논쟁은 무림-학림 논쟁
노학연대-학생주도운동 논쟁은 야비-전망 논쟁
전위-자주적 운동 논쟁은 MT-MC 논쟁
2. CDR, PDR, NDR과 트로츠키파
이후 삼민투가 결성되고 삼민투가 민민투와 자민투로 나뉘게 됨. 민민투는 CDR, PDR, NDR과 트로츠키파로 나뉘었는데, 이 중 NDR은 상술한 MT를 계승하였음.
CDR 진영은 미국을 민주적인 진영으로 보며 남한의 군부독재 파쇼와 대립한다고 보았고 남미의 종속이론을 받아들여 남한사회를 주변부 자본주의로 파악했음. 또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들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보며 부르주아 계급 주도의 혁명을 주장하였음. CNP 논쟁 중 얼마안가 소멸.
PDR 진영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들의 반파쇼투쟁을 통해 민중정권을 수립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실현하자고 주장한 분파임. CDR 진영과 달리 부르주아 계급과의 제휴와 연대를 배격하였고 남한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파악함. 이후 대다수는 학계PD로, 일부는 IS나 PTR로 계승함.
NDR 진영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민중들과 청년학생, 소부르주아와 자유주의적 시민들의 연대로 반제반파쇼 투쟁으로 민주화 세력의 범적인 연합정권을 수립하자고 주장함. 한국사회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파악하였고, 미국이 민주화 세력을 지원하는 대신 신식민지 형태로 남한을 착취하고 있다고 판단함. 이후 CA로 계승.
트로츠키파는 알려진게 없음. 트로츠키주의를 신봉했던 것으로 알려짐. 이후 IS로 계승.
3. NLPDR의 맹아, AIPDR의 등장
위 네가지 분파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대학가에 강철서신이 보급되면서 식민지반봉건론, 품성론, 강력한 반미투쟁을 기반으로 한 AIPDR이 등장하였음. 엄밀히 말하면 강철서신은 NLPDR이 아닌 AIPDR임. 식반론은 주체사상의 종속이론을 기반으로 하였고 품성론은 마오주의를 기반으로 함. 이후 NLPDR로 계승.
4. PDR의 분화와 CA의 탄생, 그리고 분화
PDR의 이론이 체계화되고 동구권의 붕괴를 겪으며 PDR은 크게 세가지로 분화하게 됨. 주류 세력은 학계PD로, 일부는 IS로, 또다른 일부는 PTR로 분화되었음.
학계PD는 제독PD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음. PDR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체계적으로 발전, 정립하고 보급한게 그것임. 후술할 ND와 함께 제독PD를 형성하였음.
IS는 트로츠키파가 국제사회주의(클리프주의)를 받아들이며 만든 조직으로, 동구권의 붕괴로 방황하던 일부 PDR 세력들을 흡수하며 세력을 확장함. 이들을 계승한 대표적인 단체로 노동자연대가 있음.
PTR은 PDR의 일부 좌경적인 분파가 형성한 세력으로, 이승만 정부 시기의 한국사회를 봉건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였고, 이후의 한국사회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편입되었다고 파악, 즉각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함.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론을 따름. 현재 노정협에서 이를 주장하고 있으나, 노사과연에서 좌경적 노선이라며 비판하는 중임.
CA은 AIPDR의 대통령 직선제 의제에 대항하여 NDR이 제헌의회 구성 방안을 제시하며 형성된 조직임. 한국사회를 미국의 반식민지로 파악함. 계보도에는 구현하지 않았으나 도중에 CA, CPC, CPA로 분열되며 고초를 겪었음.(어차피 통합되었기에 편의상 CA로 퉁쳤음) 이 중 CPC와 CPA가 CA를 이탈하여 NDF를 형성, NDF는 제파PD를 형성하였음. 제파PD 내부에는 AF그룹과 AP그룹이라는 내부 계파가 존재함.
남은 CA는 AIPDR과의 통합을 주장한 CA다수파와 AIPDR을 비판하며 NDR론을 계속 주장한 CA소수파로 분화되며 CA는 해체하게 됨.
5. NLPDR과 제독PD의 등장, 그리고 이합집산
AIPDR과 CA다수파는 통합을 결정, NLPDR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음. 상당히 거대화된 NLPDR은 학생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였고, NLPDR 내부에서는 비주사NL과 자민통NL, 소위 주사파로 불리우는 정통NL로 분화가 진행되었음. 90년대 후반 비주사NL과 자민통NL은 자주혁신을 구성하고 정통NL의 자주단결과 대립하였음. 이후로는 분화가 진행되지 않음.
한편 CA소수파는 ND를 형성하였고 비슷한 논지를 나타내던 학계PD와 통합하여 제독PD를 형성하였는데, 제독PD도 어느 정도 거대화되며 제파PD를 제치고 범좌파 진영의 헤게모니를 잡는데에 성공함. 이후 90년대 중후반 알튀세르주의를 받아들인 일부 분파들이 이탈하여 자기들만의 운동조직을 꾸리게 됨.
여기서 아도르노나 네오맑시즘 쪽은 어디에 끼지?
그건 아나코 주체이즘만큼 희귀한듯?
2에서의 신식국독자랑 4에서 신식국독자는 다른 거임?
같은거임 둘다 공유함
다만 학계PD 신식국독자는 반북에만 경도된 면이 없잖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