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갤에서 핫하길래 몇 마디 보태 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이 문제를 붙잡고 있는 것 자체가 현 시대 혁명주의자들의 거대한 시간낭비이자 시대착오라고 생각한다.

일단 최대한 건조하게 한국전쟁이라는 사건의 정치적 의미를 정리하면, 아주 전형적인 구 식민지 지역의 nation-building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원래 현실적 통치권과 상상적 인민을 결합시키는 과정이 피 없이 넘어간 경우는 없고, 구 식민지 지역은 식민지배 통치권에 대한 거부라는 1차적 '결합' 과정과(반발도 관계로 결합되는 것이다) 새로운 통치권 수립이라는 2차적 '결합' 과정이 단계적으로 나타났다는 특수성 정도밖에 없다.

이러한 nation-building은 말하자면 정치 영역에서의 시초축적 같은 것이다. 그 자체가 그 결과로서 나타난 체제의 본질이자 운동법칙이냐 하면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단계를 생략하고 갈 수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많은 야만과 무수한 혈루가 강처럼 흐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것이 역사의 불가피한 흐름이다. 15세기 영국 농민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인클로저를 막으면 그냥 봉건사회의 해체가 늦어질 뿐이다.

유독 20세기 중반의 nation-building들만 특별히 문제로 떠오른 이유는 결국 냉전이다. 자본주의와 현실사회주의가 체제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거기에 의미를 덧붙이고 정당성과 정통성을 치장하려고 했음에 다름 아니다.

이 경쟁의 실체와 정당성에 대해선 지루하고 답 안 나오는 논란만 오고 갈 뿐이니 굳이 논하지 않겠다. 그냥 당시 소련을 중심으로 한 소위 제2세계가 프롤레타리아의 군사기지였고 제국주의의 포위망을 뚫어 세계 혁명을 일으킬 거점이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고 얘기해 보자.

So what? 그 냉전은 이미 끝났고, 뭐가 억울하든 소련은 사라졌다. 지금 남아 있는 제2세계의 잔재들은 말 그대로 폐허 속의 잔해일 뿐, 결코 꺾이지 않는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희망의 별 같은 게 아니다. 제국주의는 이제 노동자 국가를 포위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발치에 남은 잔해를 귀찮은 듯 툭툭 차며 자기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 혁명 - (좁은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의 건설 - 제국주의 포위망의 성공적 극복 - 정치혁명을 통한 (넓은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완성 같은 도식 구조는, 그 물적 기초가 될 노동자 국가의 역량이 깜냥이 안되면 아무것도 성립할 수 없다. 노동자 국가도 국가고, 국가를 지키는 것은 철과 피이며 국가의 영향력은 국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냉전에서 이긴 것이 자본주의가 아니라 미국이듯, 냉전을 이끌고 가능하게나마 한 것도 사회주의가 아니라 러시아다.

냉전 시기 형성된 정치 전략과 정체성 형성 전술을 냉전 이후의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혁명의 길에 도움이 될까? 좋든 싫든 한국전쟁은 스테일메이트로 끝났고, 대한민국 인민의 정체성은 그 위에 세워졌다. 그 이후 벌써 70년의 세월이 흘렀고 한국 자본주의가 독자적인 발전을 해 온 만큼 한국 인민의 자기정체성과 신화 역시 독자적인 성립과정을 이미 끝낸 상태다. 세계 자본주의 그 자체도 이미 포위할 사회주의 종주국이 존재하지 않는 30년을 통과하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이런 상태에서 자본주의 핵심부의 일부인 인민의 기(旣) 존재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본주의 모순을 설파하는 것과, 70년 전 존재'할 수도 있었던' 어떤 가능성을 언급하며 저 잔해 속 요새국가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라고 설파하는 것, 어느 쪽이 진짜로 타당한 혁명 전략일까?

정통성 경쟁이 정치적으로 의미를 갖는 건 정통성이 불안정할 때뿐이다. 좋든 싫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이미 대한민국 안에서 확고해졌고 한국 인민은 한국 인민이라는 정치적 집합체로서 존재하지 결코 북한 인민이나 베트남 인민이 될 수 없다. '우리' 한국 인민과 함께 사회주의로 나아갈 길도 먼데 왜 죽은 자식 나이 세듯 성립하지 않은 가상의 정통성을 가져오나?

굳이 누군가 묻는다면 그냥 대충 역사의 비극이었던 걸로 퉁치고 넘어가면 된다. 우리가 지금 북한 체제 받아들여서 사회주의 혁명 완수하려는 게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애초에, 아까도 말했듯, 냉전은 이미 역사적으로 종료되었기 때문에 이건 가능하지도 않다).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는 이유도 궁색한 것이, 70년 전 해방 직후의 초저발전 구 식민지의 '시초축적' 과정이 세계 경제 10위권 자본주의 핵심부 사회의 '양질전환' 과정에 참고가 뭐가 되겠는가. 백보 양보해서 소련의 후원을 옹호하던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이 일종의 '혁명'이었다고 친들, 이제는 그 소련도 남아있지 않으니, 그 혁명의 양태를 반복할 수도 없는데.

"이성적인 것은 모두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모두 이성적이다" - 헤겔 변증법의 핵심과도 같은 문구다. 순진한 이상주의자들은 앞의 반쪽에 천착하지만, 그것은 헤겔의 방법이 아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따라서 마르크스의 방법도 아니다.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귀태라고 주장하는 것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새로운 혁명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것 중 무엇이 마르크스의 방법에 가까울지 고민을 권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