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로자 룩셈부르크 마이너 갤러리에서 벌어진 댓글토론을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일반인들이 막상 좌파적 의제는 공감해도 실재 좌파들 보면 으으 극켬하면서 떨어지게 만드는 좌파 특유의 수사학적 말장난인거" 그리고 "특정 성향 분들 밖에서 통할 소린 아니다"라는 발언을 한 모 동지를 비판하고자 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동지의 정세 인식 혹은 사회운동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본인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며 "아나키스트"를 이미 스스로 드러낸 상황에(그게 진정으로 '아나키스트'적인지는 의문이나) 사상적으로 더 들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우리의 주장이 대중 또는 정세와 유리된 말장난이라는 식의 비판은 옳지 않기에 이렇게 반박글을 적고자 합니다.
소위 '대중 또는 정세와 유리된 수사학적 말장난'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 사회주의냐 기회주의냐
대중과 유리된 주장이다! 정세와 유리된 주장이다! 맑스주의 운동가들 특히 선구적인 혁명가들은 이러한 비판을 늘 안팎에서 받아왔었다. 우리 스스로도 그러한 의문점을 품을 정도로 이런 공격은 집요하고도 오래된 것이었다. 누군가는 대중의 지지가 줄어들 것을 걱정해서, 누군가는 안팎의 지원을 받지 못할까 걱정해서, 누군가는 혁명운동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기 위해서 이런 주장을 계속 유포시켜왔다. 심지어 우리 로자 룩셈부르크 마이너 갤러리에서조차도 이와 유사한 의견을 표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들이 판단하는 '대중'과 '정세'에만 빠져들어 정작 우리의 운동과 이론을 축소시키려는 행위에 불과하다. 앞의 주장들이 매우 근시안적이고, 기회주의적이며, 대중추수적인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게 우리의 동지들과 혁명운동을 향한 것이라면 더더욱! 먼저 이러한 공격의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비판의 포문을 열도록 하자.
반전 연설을 하고 있는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1871-1919). 그는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의회에서 전쟁채권 발행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국수주의자들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자들은 그를 보고 '배신자', '매국노'라고 매도했다.
1) '대중 또는 정세와 유리되었다'는 공격의 역사적 사례들
혁명운동에 대해 '대중' 또는 '정세'와 유리된 주장이라는 비판은 역사적 사례들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제2인터내셔널의 반전 논쟁이다. 제2인터내셔널은 제1차세계대전을 앞두고 반전에 대한 결의들을 채택했지만, 정작 전쟁이 터지자 기존의 태도들을 스스로 배신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많은 수의 '사회주의자'들이 조국을 지키자면서 찬전 열기를 돋우웠다. 반전을 명확하게 외친 사람들은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1919)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비롯한 사회민주당 소수파, 세르비아의 사회민주당, 그리고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을 비롯한 볼셰비키 등에 불과했다.
그러자 반(反)사회주의자들과 기회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들을 '매국노'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이들이 '정세'도 '대중의 여론'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실제로 전쟁 초기에는 각국에서 참전 열풍이 열을 올렸고, 자원하여 입대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적 이론과 신념을 토대로 반전을 소리높여 외친 로자 룩셈부르크와 블라디미르 레닌의 의견이 잘못 됐다는 것인가? 이미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제1차세계대전이 얼마나 참혹했으며, 독일과 러시아에서는 끝내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붕괴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더 나아가 러시아의 경우에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정세'와 '여론'을 걸고 넘어진 '찬전'은 결국 자신들이 근시안적인 '정세'와 '여론'에 휘둘렸다는 것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또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이번엔 러시아 10월 혁명 때이다. 차르 체제가 붕괴하고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 진행하면서 민중이 요구한 조건들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자 러시아 민중들은 임시정부를 비판하며 자신들의 요구-토지, 빵, 평화-를 들어줄 수 있는 정치세력을 찾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볼셰비키를 제외한 타 정파들은 혁명에 미적거리거나 임시정부에 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이에 레닌은 "우리가 권력을 잡지 않는다면, 역사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파들을 비판했다. 이들이 현 러시아의 '대중'과 '정세'에 맞지 않다고 저격한 것이다. 그리고 즉각적이고 긴밀한 행동에 나섰다. 얼마 후 임시정부는 무너지고 볼셰비키는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둘의 비판은 같은가? 아니다. 확연하게 다르다. 전자의 비판은 수정주의적이었고 기회주의적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작자들은 자신의 국가가 전쟁에 뛰어들고 국민들이 그것을 지지한다면서, 그런 '대중'과 '정세'를 외면할 수 없다면서 기존에 했던 반전 합의들을 전부 배신했다. 그러고는 그 합의를 지키고자 외롭게 투쟁하던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매국노'라는 딱지를 붙이며 비난했다. 이와 달리 후자의 비판은 혁명적이고 시의적절하였다. 이미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이 임시정부를 비판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상황을 바랬다. 이에 볼셰비키는 '대중'과 '정세'를 고려했을 때 나서야 할 때임을 알았고, 혁명에 미적거리는 멘셰비키 및 타 정파들을 비판하며 직접 행동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혁명의 승리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했을 때, '대중 또는 정세와 유리되었다'는 식의 비판은 철저한 검증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전자에서 볼 수 있듯이, 저들이 말하는 '대중'이니 '정세'니 하는 것은 결국 그 당시에만 해당하는 것이거나 자신들의 모순적인 주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혹은 지금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정으로 '대중'이니 '정세'니 논해야 할 때는 후자처럼 우리의 혁명운동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의 가치들을 온전히 지켜나가면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해야 할 때이다.
대중이니 정세니 하는 말에 우리의 가치를 함부로 수정하는 행위는 결국에는 우리 가치에 대한 포기에 다름 아니다.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대중과 정세에 효과적이고 올바르게 펼칠 것을 고민해야지, 대중과 정세에 따라 가치를 입맛대로 바꾼다면 그건 농간에 불과하다.
2) 포기할 수 없는 가치
그러면 그 '가치'란 무엇인가? 두말 할 것도 없이 사회주의다. 그러면 사회주의에 대해서 논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허나 여기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하자면 이 글의 목적을 벗어나기 때문에 이 글의 목적과 관련하여 '사회주의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첫째, 자본주의와의 투쟁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설령 수많은 변화를 거치며 초기 자본주의의 참상과는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착취적이다.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고, 노동조합은 악질적인 탄압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또한 자본주의는 보다 친근한 가면을 쓰고 우리의 일상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체제가 마치 최선이라는 둥, 현실사회주의 체제보다는 낫다는 둥 떠벌리며 실질적인 도움도 안 되는 위로만 공수표로 떠벌린다.
그렇기에 사회주의자들은 이 '당연한' 세상에 외쳐야 한다. 당연하지 않다고! 우리 스스로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에서 선진국에 있든 중진국에 있든 후진국에 있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자본주의 사회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 착취적인 프로그램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강자와 부자들에게만 집중된 부와 권력을 반대하고 고통받는 약자와 빈자들에게 해방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프로그램으로는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기에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반자본주의 투쟁을 끊임없이 외치는 것이다.
둘째, 제국주의와의 투쟁이다. 이미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맞서서 제3세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반식민주의 투쟁을 전개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해방 이후에는 미국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그 이유는 두 제국주의 국가들이 민중의 바람을 압살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통치를 펼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현 작금의 상황에서 가장 위협적인 제국주의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의 것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은 이전부터도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많은 국가들에 개입하면서 자신에 뜻에 따르지 않는 정부는 무너뜨리고 저항운동은 학살적 진압으로 분쇄했었다. 적대국에 민주주의와 인권은 수도 없이 외치면서도 정작 자국 혹은 자국의 개입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와 인권 침해는 모르쇠였다. 그런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모습이 미국제국주의의 실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 그중에서도 미국제국주의를 향한 투쟁을 중요하게 여긴다. 미국이 현실사회주의 체제를 악마화하고, 갓 생긴 사회주의 정권들을 암암리에 전복시키는 행태, 그리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학살도 서슴지 않는 행태를 비판한다. 이는 한국에서 행하는 미국의 행태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설령 "6.25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식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6.25 전후의 상황에 미국제국주의의 손길이 깊숙하게 파여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들이 한국을 옥죄고 있다는 것도......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은 미국제국주의에 대해서 이론으로나 경험으로나 적대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친(親)미국제국주의 등의 성격을 가지는 현 체제에 대해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주장을 '대중 또는 정세와 유리되었다'고 공격하는 모 동지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한다면 우리는 위에서 말한 두 가지를 모두 포기해야만 한다. 우리 체제가 자본주의의 첨병 미국에서부터 성장하고 혜택을 받은 것은 어쩔 수 없으니 친미를 포기할 수는 없고(미국이 강세인 '정세'를 따르자는 말), "6.25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식의 주장이 대중에게 먹힐리가 없으니('대중'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거니 그런 주장은 옳지 않다) 그만하자면, 우리의 주장이 친미를 넘어 종미를 외치고 6.25를 반공 프로파간다에 우려먹는 반공주의자들하고 다른 게 뭐란 말인가? 당장은 소위 '정세'니 '대중'에게는 듣기 좋은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동지들이 더욱 잘 알 것이다. 바로 우리의 주장을 그들이 말하는 소위 '대중'이니 '정세'니 하는 허울 좋은 장단에 맞춰서 수정하고 우리의 가치들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좋다! 그대의 말대로 '대중'과 '정세'를 고려하여 자본주의적 혜택을 포기하지 말고, 미국제국주의 아래 우리에게 떨어지는 잉여물을 포기하지 말도록 하자. 자, 그렇다면 우리는 '대중'의 지지와 '정세'의 지지를 함께 얻을 것이다. 어쩌면 집권도 가능하리라. 근데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가 가당키는 한가? 미국의 주도한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 봉사하면서 사회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국의 눈치 안 보고 민주적으로 집권해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다 미국의 농간 아래 무너진 아옌데 정권의 실례가 있는데, 자본주의국가 미국의 눈치까지 보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주의를 하겠단 말인가? 우리가 볼 수 있는 결과라고는 구체제의 변화는커녕 구체제의 강화에 불과할 것이다. 도대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문제들을 외면하면서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건가? 소위 민주당계 정당들이 극우 정당들과의 차이점을 표하지만 결국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문제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현 상황과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소련의 반(反)미국제국주의, 반(反)자본주의 포스터.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사회주의가 반드시 이겨내야 할 적수들이다. 이것을 외면한다면 그건 더 이상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다.
3) '대중'과 '정세'를 핑계로 한 기회주의를 배격하자
여기까지 왔을 때, 동지들은 철저한 비판과 이해 없이 대중과 정세를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충분히 알 것이다. 그저 '지금 당장의 현실'과 우리의 주장이 차이가 있다고 하서 '수사학적 말장난'이라고 매도해 버리는 것은 결코 발전적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에 불과하며 당장의 변화에만 기민하게 반응하려고 드는 대중추수주의적 경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우리는 '기회주의'라고 부른다. 레닌는 이미 그러한 경향들과 투쟁하면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우리가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의 기회주의의 특징, 즉 그것의 모호성, 무정형성, 회피성을 결코 망각하지 않아야 한다. 기회주의자는 자신의 바로 그 본성으로 인해 항상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을 회피할 것이며, 그는 항상 중간적인 길을 찾을 것이며, 그는 항상 견해의 두 가지 상호배타적인 관점 사이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면서, 두 가지 모두에 "동의"하고, 그의 의견의 차이점들은 사소한 수정, 불확실함, 결백하고 경건한 제안 등등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 <레닌 저작집 2-2>, 블라디미르 레닌, 전진출판사, p.388. (강조는 인용자)
모호성, 무정형성, 회피성 그리고 사소한 수정, 결백하고 경건한 제안! 이게 얼마나 저들이 말하는 '대중'과 '정세'에 알맞은 주장이란 말인가? 대중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만 우리의 주장과 사상을 제한시키고, 정세에 거스르지 않고자 우리를 억누르는 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뽑아낼 수 있을 최고의 떡고물을 얻어내자! 자- 동지들 이제 보라! 이것이 사회주의란 말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시종들이란 말인가? 그대들은 그러고도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대들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대중'과 '정세'를 떠벌리며 사회주의마저 내버리려고 하는 반(反)사회주의자의 본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론과 운동에 대한 상세한 검토 없이 "정세와 맞지 않다"거나 "대중이 지지하지 않는다"라며 성급하게 수정하려는 자세는 본질적으로 기회주의적이며 반혁명적이다. 우리도 '대중'과 '정세'에 대해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어떻게 '대중'과 '정세'에 펼쳐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대중'과 '정세'에 맞춰서 우리의 가치를 입맛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말하는 '대중'과 '정세'를 고려했다면 맑스가 혁명운동을 했겠는가? 볼셰비키가 러시아 민중을 믿고 10월 혁명을 했겠는가? 호치민과 베트남 인민들이 미국과 프랑스에 맞서 싸웠겠는가? 쿠바의 피델과 게바라가 쿠바 인민들과 함께 밥티스타를 몰아냈겠는가? 산디니스타가 소모사를 몰아냈겠는가? 그들은 사회주의라는 가치를 믿고, 자신들만의 '대중'과 '정세' 안에서 그것을 실현하고자 투쟁한 것이다. 그 대중과 정세가 설령 마땅치 않다고 해서 헌신짝처럼 자신들의 가치를 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장이 "특정 성향 분들 밖에는" 통하지 않을 소리라고? 그것을 극복하고 공론화하고 대중을 설득하고 정세를 바꾸고자 우리의 운동이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의 운동은 어려운 정세와 대중들의 적은 지지에 직면해 있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미국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굳건해 보이는 작금의 시대에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사상을 포기해 버릴 것인가? 그럼에도 우리는 싸워야 한다. 전세계의 노동계층의 투쟁과 함께 하며 구체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구체제에 굴복 혹은 봉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대중과 정세를 운운하면서 우리들의 운동의 목표마저 수정하려드는 기회주의적 행위를 배격해야 한다. 즉 다시 강조하자면,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자들처럼 비판하는 것은 기회주의적이다. 이와 달리 혁명에 미적대던 멘셰비키들을 비판한 볼셰비키처럼 비판하는 것은 혁명적이다. 우리의 로자 룩셈부르크 갤러리에서 나오는 '대중' 및 '정세' 운운은 전자에 가까운가, 후자에 가까운가? 진정으로 '대중'과 '정세'를 모르는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의 주장이 '대중과 정세와 유리된 수사학적 말장난'이라고 비꼬기 전에, 자신들의 주장부터 '대중과 정세라는 표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와 대중추수주의로 가득 찬 수사학적 말장난'인지부터 스스로 검토하길 바란다!
정말로 명문입니다. 로갤에서 그런 주장이 나올 줄은 본인도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참.. - dc App
삘 받아서 몇 시간 자료 조사하고 1시간 동안 열심히 썼는데... 감사합니다 동무
월스에 실어도 됨? 정말로 가치있는 글이라서 이대로 나두기엔 아까운 글임 - dc App
ㅇㄱㄹㅇ
...??? 아나키스트라고 자칭한 사람이 《대중추수》하자고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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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고 내가 비판한 동지의 의견들은 비단 한국전쟁 논쟁에서만의 의견만 겨냥하는 것은 아님. 어제의 다른 글의 댓글 중에서 발생한 논쟁에서의 의견들도 포함한 것.
한국전쟁 떡밥이 읽어볼만한 논쟁이라는 점은 동감.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분단과 전쟁에 있어서의 미제국주의와 반동세력의 책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
ㅇㅇ 동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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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건 몰라도 친미나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 그리고 위 글에서 언급했던 그 유저의 발언 등이 비판할 만하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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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에서의 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목표치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 최종적인 목표는 미제국주의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선결조건들로서 적어도 미군철수 정도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모호하다고 비판한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정치사회적 언어와 주장마다 똑같은 비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미제국주의로부터 필연적으로 파탄이 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지금 당장 해방된다면 몰라도 그 해방투쟁의 길목에서 어떻게 정세가 변할지는 또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따진다면, 님이 동의하신다고 말하는 "사회주의 이념의 관철과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에 대해서조차도 님이 하신 똑같은 질문과 답변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명확한' 목표치라고 하시는데, 그 '명확한'도 어디까지가 님께서 의구심을 거두실 정도인지 '모호'하지 않습니까? 이런 식의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만.
미제로부터 해방은 정치경제적 해방이 제1순위이고, 한미독점자본에 대한 투쟁이 수반되는 것. 합리성이면 어떤 위치에서의 합리성을 말하는 것인지. 계급적 이해에 기반하지 않은 순수도덕적 합리성? 미군 철군을 시작으로 PT독재에 기반한 정부 구성에 사활을 다해야.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은 본디 모순적인 테마가 아님. - dc App
미국 인민들과 혁명적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느정도 동의하더라도 아직도 미국제국주의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해방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운동은 제민족 해방을 추구하면서 국제주의연대도 동시에 강화함. 둘 중 어느 한 쪽도 등한시하지 않음. 오늘날 상황은 정치적으로 미제의 영향력이 두드러지고 그 후견 하에서 아국 독점기업이 각국에서 착취를 일삼는데,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은 함께 견인되는 성질임. - dc App
지금 현실이 그렇다고 그런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한 일입니다. 제가 말했듯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어떻게 '대중'과 '정세'에 펼쳐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지 "'대중'과 '정세'에 맞춰서 우리의 가치를 입맛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의 정세에서 그것을 실현했을 때의 부정적인 면에 매몰되어 그 가치를 전면으로 부정해버리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 글의 비판 대상이 된 동지도 비슷한 논리로 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은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이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 중 어느 한 쪽도 등한시하지 않는다” = 국제주의 노선 옹호고수. 이쪽에서 자체역량을 기르면서 국제조직의 실체화, 체계화로써 미국 동지들과 연대하면 몰라,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 미제 내부에서의 혁명에만 사활을 건다면 크리스마스 선물 이상이하도 아님.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은 함께 견인되는 성질”에 담긴 함의를 상기했으면 함. - dc App
지금 당장 집권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면 이런 비판도 가치가 있기는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니죠. 저희는 운동을 펼치고 성장시켜 나가야 하는 국면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운동을 하다보면 그 '대중'과 '정세'는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나가야지 "지금 당장 이거 하면 뭐뭐하니까 안돼 그건 버려"라는 식의 근시안적 태도는 곤란합니다.
미제국주의의 패권 헤게모니가 영원한 성질도 아닐 뿐더러 최근 위기격화 등으로 인해 단말마적 비명을 연신 내뱉는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음. 제반 상황 속에서 조직을 확대할 기회를 찾는게 우선적인 순리 - dc App
제국주의로 인해 압제 받거나 고통 받는 민족이 있는 한 "무조건 민족주의를 극복하자"는 식의 주장은 허황된 것입니다. 아무리 교통과 통신이 잘 발달해봤자 제국주의가 그것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제국주의의 유용한 무기이지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방편만은 아닐 겁니다.
한미워킹그룹과 주한미군의 존재는 역사성과 현재성 둘 다 동시에 지니며 민족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패러다임임. 이들 기구들은 남측 독점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에 다름 아니고. 민족요소와 계급요소가 밀접연관되어 있는데 둘 중 하나만 버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음. 통신과 교통수단은 한 요소일 뿐 민족을 규정하는 결정요소는 아님. - dc App
또 하나 짚고 가고 싶은 건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의 파괴에 의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의 불능은 비단 일국(日國) 혁명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혁명에서도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의 파괴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고 막말로 싹 다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도 님의 주장처럼 "해당 투쟁의 목표 달성으로 인하여 발생될 사회주의 사회(pt독재)의 실현을 위한 물적 토대의 파괴 그 자체로 인한 사회주의 사회 건설 불능"이 성립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좀 미약한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대중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뀌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그 글에서 말한 바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지키고자 하는 가치들을 어떻게 '대중'과 '정세'에 펼쳐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대중'과 '정세'에 맞춰서 우리의 가치를 입맛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혁명세력을 좌절시키기 위해 지배계급이 각종 대량살상무기를 통해 자폭하는 것"이라... 왜 그게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보시는지요? 아옌데 정권에서처럼 저들이 아옌데 정권을 공격하며 신주단지처럼 받들던 소위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혁명을 좌절시키지 못하자 그 '민주주의'를 무너뜨림으로써 혁명을 분쇄한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만. (짓궃은 웃음)
'일국'별 특수성이라... 세계혁명을 주장하시는 걸 보면 혁명 실패의 그 특수성이 비단 한국에서만 적용되는 건 아닐텐데요. 그 특수성이 모든 국가 각개에 '전부' 적용되는 '일국별 특수성'이랍니까?
일단 동지의 의견은 잘 알았습니다. 서로의 의견에 차이점도 공통점도 있군요.다음에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볼까 합니다. 그때 봅시다.^^ - dc App
근데 저 발언과는 별개로 아랫 토론글은 곱씹어볼 가치가 있었던 거 같음.
한국전쟁의 성격 논쟁?
ㅇㅇ
일단 한국전쟁 논쟁까지 끌어들이면 너무 복잡할 것 같아서 한국전쟁 토론글이나 다른 글들에서 모 동지가 말했던 의견이나 발언 중 맘에 안 들었던 것들만 쏙쏙 빼내서 비판했음.
솔직히 대중추수 운운은 그냥 유념하고 넘어가더라도 그 이외의 말은 나는 상당부분 동의하는 바가 있긴 했었던지라. - dc App
한국전쟁 부분이라면 그렇다해도 그 논쟁이나 다른 논쟁에서나 미국에 대한 태도나 정세 인식 등이 너무했음.
그런가. 이런데서 세계관이 뭔가 되게 다르단걸 느끼게 되는구먼. 나는 동의하진 않을지라도 큰 감흥이 없던게 대부분이었어서... - dc App
그럼 이 반박글은 어찌 생각하슈? 기탄없이 비판도 해주셈ㅋㅋㅋ
잉? 그럴수도 있다, 라는 느낌? 그리고 상당부분은 오히려 내게 있어선 상당부분은 동의할만한 부분임. 왜냐면 그 분의 말 중 대중추수 운운한 것, 그리고 대중과 정세 운운한 것에 대해서 집중한거 아니겠음? 그리고 솔직히 볼셰비키들보다도 레닌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 10월혁명을 주도한 아나키스트 선배들을 둔 입장에서 그런건 조금 그렇기도 하고 - dc App
여기서 더 의견이 진행된 글이 있나요.
아직은 없는 걸로 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