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인가 완성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오늘 올리네 ㅈㅅ;;
글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 알림.
전태일 평전
전태일! 한국 현대사에서 전태일만큼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교훈과 영향을 준 사람은 드물다. 특히 전태일은 지독한 가난과 핍박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아니한 '인간승리'의 기념비적인 인간이다. 노동자, 농민 등 민중으로 하여금 진정한 의미의 자긍심과 주체의식을 갖게 하여 인간해방운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전태일은 횃불이었다.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얼굴을 들추어낸 횃불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횃불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전태일을 옳게 읽고 있는가?" 저마다의 작은 욕망을 위해 읽고 있지는 않은가? <전태일 평전>은 우리가 전태일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지시한다. -신영복
전태일 그는 48년 9월 28일 대구에서 태어나 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죽음을 사람들은 '인간선언' 이라 칭한다. 인간선언. 가난과 질병, 무교육의 굴레 속에 묶인 버림받은 목숨들에게도, 먼지구덩이 속에서 햇빛 한번 못 보고 하루 열여섯 시간을 노동해야 하는 어린 여공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기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그는 죽었다. 그는 말했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약자의 생명도 부자의 생명처럼 고귀한 것이라고. 그는 고발했다. 이 사회의 밑바닥에는 인간이면서도, 짐승이 아닌 인간이면서도 "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그리고 죽어가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다고. 이들은 "모든 생활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말살당하고 오직 고삐에 매달린 금수처럼 주린 창자를 태우기 위해 끌려다니고 있다"고.
전태일 그는 맹세하였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고 착취당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그는 싸웠고, 그는 죽어갔다.
현실 속에서 자라면서 그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끌려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껴지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이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의 싹을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 길들여진다. (128p)
전태일의 경우 우리가 앞에서도 보아왔듯이 어려서부터 가장 철저하게 버림받은 생활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무수히 참기 어려운 고통과 학대를 거쳐왔으며, 점차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현실의 횡포에 대해 반발하고 저항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특히 그가 재단사가 될 결심을 하던 무렵에는 약자인 노동자들이 강자인 기업주에게 당하는 억울함을 시정해보겠다는 결심도 품게 되었다. 그러나 1967년 2월 23일자의 일기가 말해주듯 아직 전태일 그는 정신적인 노예상태를 청산하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끼는, 길들여진 양으로 남아 있었다.
'약은 사람', '현명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현실과 타협'할 줄 알고 '현실에 적응'할 줄 아는, 이른바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다. 강자에게 절대로 저할하지 아니하고,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하더라도 고분고분 고개 숙이고 받아들이며, 반대로 약자 앞에서는 허리를 뻣뻣이 펴고 헛기침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처세 철학 제 1조이다. 그들의 사전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강한 자에 대한 저항이라는 말이 없다. (153p)
전태일 열사와 그의 동지들은 '똑똑한 인간', '약은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바보'라고 선언하였다. 무엇인가 마음을 치는 대의의 부름이 있어 고난의 가시밭길을 스스로 나서는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바보이다.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사회는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되찾으려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향하여 조소를 던지고 그들을 바보라고 낙인찍는다. 노예사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인간이 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비정상적으로 취급한다.
전태일 사상은 각성된 밑바닥 인간의 사상이다. 그것은 오랜 침묵에서 깨어나서 이제껏 현실이 자신에게 강요해왔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오직 스스로 인간적인 체험에 의거하여 그 자신의 가슴으로 느끼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주체적인 인간의 사상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꾸로의 거꾸로, 사회의 거꾸로된 가치관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거꾸로 뒤집어놓는다. 그것은 자기비하에서 자존으로, 비굴에서 긍지로, 공포와 위축에서 분노와 용기로, 의존과 자학에서 자주와 해방으로, 체념과 침묵에서 비판과 투쟁으로 전환하여가는 사상, 노예에서 인간으로 거듭나는 민중의 사상이다. (198p)
위 전태일 사상의 특징은 그의 민중관의 저 감동적인 전환에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전태일 그는 아무 이상도, 희망도, 인간다운 삶의 보람도 지니지 못한 채 그저 버러지 같은 목숨을 이어보려고 아등바등 기를 쓰며 남과 다투며,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매몰차게 이웃을 대하여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품위'니 '인격'이니 '존엄'이니 하는 것들과는 담을 쌓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경멸 당하는 모습이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종교는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법률도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부한 자의 생명처럼 약자의 생명도 고귀합니다. 천지만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모두 고귀합니다. 죽기 싫어하는 것은 생물체의 본능입니다. (212p)
인종이 달라도, 생각이 달라도, 돈이 많거나 적어도 그들은 모두 인간이다. 빈한 자, 부한 자의 재산을 따지기 전에 그들 모두 인간이다. 하지만 일부는 욕심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빈부의 격차는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다른 본능도 존재한다. 우리는 개인들이 자유롭고 충만한 삶을 살 권리를 부정당하면 분노한다. 그 분노는 사람들은 누구나 선천적으로 창의적이고 호기심이 많다는 생각 그리고 부한 자가 빈한 자에게 이런 자질을 자주 억압한다는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더 자유롭고 더 충만한 세계를 갈구한다. 왜냐하면 그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월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215p)
당시에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 보여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요구했지만 노동권이 현재에는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형재해 사건이 기업 내 위험감지시스템의 부재,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므로 사업주의 책임과 이에따른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 처벌법 또한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 어린 동심들, 아니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전태일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건방지다 하는가?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과대망상이라 하는가? 아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목소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전태일이 가난하고 못 배운 밑바닥 인간에게 강요되어온 무력감과 열등의식을 완전히 청산해버리고, 자신의 힘과 인간성의 승리를 확신하는 한 주체적인 인간으로 스스로 선 것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전태일의 성숙한 모습, 한 각성된 청년노동자가 스스로의 인간적인 책임에 대하여 가지는 강한 자긍을 보는 것이다. (241p)
전태일 그는 말하였다.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겠다고. 이것이 그가 원한 모든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사랑이었고, 이것이 그의 슬픔이었고, 이것이 그의 법열이었다. 오직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삶 전부를 던져야 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만 받아온 그들, 고층건물이 곳곳에 솟아 있는 수도 서울에 살면서도, 바로 창문만 열면 삼일고가도로를 호기롭게 달리는 자가용의 화려한 행렬을 볼 수 있으면서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햇빛조차 주어지지 않는 먼지구덩이 속에서 온종일 꼿꼿이 앉아서 손발이 닳도록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던 그들. 굶주림과 질병과 멸시와 천대를 받고서도 세상의 철저한 무관심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던 그들. 좋은 것은 모두 남들의 것, 더욱이 신문이라고 하는 것은 높은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바로 그들이, 바로 그 신문에 하찮은 쓰레기 인간들인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이라도 하듯 실려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깊은 지층 속을 숨죽여 흘러가던 용암이 분출구를 만나 지맥을 찢거 드디어 터져오르는 득 오랫동안 쌓이고 쌓였던 통곡과 탄식과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267p)
오늘날 우리 사회 신문의 독자층은 대부분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외국 헐리우드 배우가 이혼했다!' 같은 이슈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자의 죽음과 같은 이슈는 대부분 보도되지 않는다. 강원도의 어떤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되어 죽었다 하더라고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반드시 알지는 못한다. 신문에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구석자리에 작은 기사로 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을 살찌우기 위한 이윤의 도구로 기계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되기를,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인정받게 되기를, 그리하여 괴로운 노동이 즐거운 노동으로 바뀌는 그날이 오기를 그는 열망하였다. 그가 항상 '나의 전체의 일부'라 불렀던 소외된 밑바닥 인간들, 저주받은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들, 불쌍한 현실의 패자들은 그는 너무나도 뜨겁게 사랑하였다. 그들이 오핸 무기력과 위축과 굴종과 침묵과 자학을 벗어던지고 인간다운 위엄을 되찾아 일제히 궐기하기를, 그리하여 이제껏 자신들을 짓밟고 가두어왔던 억압과 착취의 벽을 온몸으로 두드리며 맞서 싸우기를 그는 애태우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285p)
전태일 열사는 형식상 인간의 나라가 아닌, 진정으로 인간의 나라를 원했다. 약한 자도, 강한 자도, 빈한 자도, 부한 자도, 귀한 자도, 천한 자도, 모든 구별이 없는 평등한 인간들의 '서로간의 사람'이라는 참된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세상, '덩어리가 없기 때문에 부스러기가 존재 할 수 없는' 사회, '서로가 다 용해되어 있는 상태' 을 전태일 그는 바랬다. 부유하고 강한 자들의 횡포 아래 탐욕과 이해관계로 얽힌 '불합리한 사회현실'의 덩어리 -인간을 물질화하는 '부한 환경' - '생존 경쟁이라는 이름의 없어도 될 악마'의 야만적인 질서, 그것이 분해되기를 그는 바랬다.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들이 그 잔혹한 채찍으로부터 구출 되기를 그는 너무나도 절실하게 바랬다.
세계의 어떤 곳, 어떤 시대의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도, 분신항거를 투쟁방법으로 택한 예는 아마 없을 것이다. 또 그런 일은 없어야 마땅한 일이다. 물론 목숨을 걸고 싸운 노동운동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의 목숨을 끊음으로 노동운동을 전진시키려고 한 노동자는 없었다. 전태일 그는 어째서 최후의 투쟁방법으로 죽음을 택하였는가, 아니 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제 2차 세계대전 후의 한반도는 강대국 냉전의 제물로 떨어진 세계사상 유례가 드문 치열한 이데올로기의 격전장이었다. 좌우익이 대립한 동족전쟁에서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되고 학살되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쪽에는 친미파인 우익정부가 자리 잡고 좌익세력을 철저하게 말살해버렸다. 이 과정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좌익 탄압을 핑계삼아 일체의 비판세력 제거, 일체의 대중운동 말살로 연결되었다. (290p)
한반도 남쪽의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장기간 불모지대로 존속할 수밖에 없었다. 6.25 이후의 오랜 기간 동안, 사회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 대부분이 보신책에 급급한 피해망상증 환자가 되어 노동운동은 생각도 말아야 할 터부가 되었다. 이 일로 야당은 물론, 권력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인 지식인들도 노동문제 만큼은 언급하길 꺼렸으며, 노동자들도 자신도 아예 참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득책으로 되어버렸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꺽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게.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루의 세계에서, 내 생에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 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308 ~ 309p)
위의 내용은 청옥 시절 동창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그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유서의 전문이다.
1970 11월 20일, 여공 50명이 상경, 체불노임을 노동청 앞에서 요구하며 농성 / 25일, 조선호텔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가 분회장이 납치당하여 노조를 해산당하였던 호텔 종업원들이, 노동조합을 개선하려다 회사 측에 발각되어 부당해고를 당해 반발, 한 노동자가 호텔 구내에서 휘발유병을 들고 분신자살을 기도 / 27일, 의정부 외기노조원 21명이 사용자 측의 노조운동 방해에 농성투쟁을 벌이며 전원 분신자살을 기도 / 12월 21일,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의 동료 12명과 어머니 이소선 씨가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경찰 처사의 항의, 건물 옥상에서 농성하며 출동한 경찰을 향해 노조 방해책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전원 분산항거하겠다고 위협, 마침내 그들을 굴복시킴 (317p)
이와 같은 몇 가지 사건들은 한국 노동자들의 고통과 분노가 목숨을 거는 항쟁에 서슴없이 나설 정도로 극한적인 데까지 다다르고 있었다는 것을 웅변으로 증명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종래에 볼 수 없었던 노동자들의 이러한 격렬한 쟁의의 폭발도, 바로 전태일이라는 한 청년노동자가 육탄으로 던진 '인간선언'에 바치는 전체 노동자들의 공감과 환호와 분노의 갈채였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는 전태일 열사의 유언은 한 여당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사용되어선 안 된다. 전태일 열사는 착취와 억압의 눈물이자 저항과 투쟁의 상징이자 역사이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정치적 이익에 이용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일부 연사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해 민주노총의 귀족화를 비판한다. 전태일 열사의 이름과 역사를 빼앗고자 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오늘의 살아있는 전태일들에게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만이 살길이라는 반노동자계급적 선전선동에 잉크를 낭비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노동자민중을 버리고 "돈과 직위"를 찾아 나선 사람들 아니던가. 진실을 보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은 정규직 노동자가 양보했을 때 얻어질 수 있는 조건부가 아닌, 헌법이 보장한 보편적 권리이다.
<전태일 평전>은 조영래가 민청학련 사건 이후 수배상태에서 3년에 걸쳐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집필한 '전태일 복음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전태일의 삶과 사상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인 조영래의 사랑과 지혜와 투쟁을 아울러 담고 있다고 보아도 조금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전태일의 삶과 사상을 알고 전태일의 수기, 일기 등을 깊이 알면 알수록, 저자가 저자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이 평전을 썻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책의 서평을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에 완성해 더욱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혁당 학생위의 글을 빌렸음
건설적 비판은 언제나 환영
다른 서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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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로그에 답변하였음.
갤로그 답변을 어찌하는지 몰라서 여기 남김 아래에서 두번째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 문단을 변혁당 학생위 페북에서 빌려온 것. - dc App
ㅇㅎ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