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할 때 마음에 묵힌 소리 쏟아놓고 도망가는 사람이 또 왔다. 오늘은 짧고 가볍게.

좌파라고 하면 분파가 참 많지. 로갤러들한테 뭐 하나하나 거명할 필요도 없을 거고. 각각의 분파들은 대개 20세기의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반영해 만들어진 배경을 갖고 있고, 각 분파들이 갈라서는 포인트를 봐도 대개 20세기의 특정 사건에 대한 해석 문제가 대부분이지.

간혹 여기에 대해서 아니 이러니까 좌파들이 퇴행적인 거라고, 맨날 했던 얘기 또 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 이런 말 한번씩들 들어보긴 했을 거야. 대개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 본인들도 공부가 그리 깊지 않거나, 21세기 최신 부르주아 과학의 성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의 밑밥으로 쓰려고 하는 말인 경우가 많아서, 고깝게 들리기 쉽고 충분히 그럴 만도 하고 말이야.

내가 왜 이걸 하나마나한 소리라고 생각하냐면, 모든 사회이론의 발전은 그것이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세력과 운동의 전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지. 좌파들의 이론적 카테고리가 주로 20세기에 형성된 원형대로 멈춰 있는 건 그때 가장 노동자 정치운동이 좌충우돌 시끌벅적 움직였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지금 같은 퇴조기에 그걸 무작정 버리고 새로운 걸 취하라는 건 단순한 꼰대질일 수밖에.

다만 그런 얘기를 맥락으로부터 떼어내서, 비판의 논지만 놓고 보면 수긍할 만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도 해. 결과적으로 봤을 때 소위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적' 활동이라는 것은 회고적 호교론밖에 남지 않았어. 현재나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면 그 회고적 호교론을 구성하는, 특정 과거 시점 또는 사건에 대한 고정된 틀을 가져와서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걸로 '이론적 전망'이 끝났다고들 생각하고 있지.

난 과거의 경험을 논거로 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야. 그리고 사실 지금 막 새로운 쟁점과 돌파구를 제기하는 흐름이 격렬하게 일어나서 현재의 경험이 과거의 경험을 밀어내게 해주고 있지도 않다는 것도 알고. 하지만 좌파들이 이 과거의 경험을 다루는 방식이 매우 화석화되어 있다는 부분은 문제라고 생각해.

화석화되어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좀 더 설명하자면 이런 거야. 20세기 초중반의 롤모델들을 서사의 중심에 놓고, 그 주변으로 협력자/적대자/배경상황을 배치함으로써, 하나의 극본을 만들지. 그러고 나서 머릿속에서 현재의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각각의 배역을 맡기는 거야. 나는 레닌이고, 날 비판하는 너는 카우츠키고 혹은 뭐 멘셰비키고, 우리가 만들 혁명은 1917년 그날의 풍경과 일치하고... 이런 건 이론적 설명이라고 안 해. 소꿉놀이지.

이런 식의 자칭 이론에 몰입하면 어떻게 되느냐. 가장 대표적인 징후가, 개념화되지 않은 개념을 막 내뱉어. 전위당! 계급성! 혁명적 저항! 기회주의! 우익적 경향! 청산주의! 마치 이름표를 붙이는 게 설명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래서 그게 뭔데? 그 개념들의 이론적 기반이 뭐고, 어떤 보편성과 어떤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발생과 대립과 전화의 각 단계에 있어서의 고유한 계기는 뭔데? 물어보면 몰라. 모른다는 걸 감추고 싶어서 적당히 유사 사례(라고 자기가 생각하는) 단편적 일화를 무슨 우화처럼 제시할 뿐이지.

예시를 들다 보니 비교적 내게 친숙한 볼셰비키주의에 가까운 예시를 쓰게 됐는데, 절대 이쪽만의 문제는 아니야. 개량주의든, 신좌파든, 알튀세르-발리바르주의든 내가 볼 땐 다 똑같아. 그러니 서로간에 소위 '이론적 논쟁'이라는 걸 할 때도, 그냥 서로가 꺼내 온 과거의 단편에서 내가 이입하고 있는 쪽이 주인공인지 네가 이입하고 있는 쪽이 주인공인지를 놓고 해석 싸움을 벌이지.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무슨 팬픽 고증 논쟁하나 싶을걸.

그래서 나는 오히려 우리가 이 화석화된 20세기를 버리고, 19세기를 도구화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봤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시나리오는 갖다 버리고 사전을 갖고 와야 한달까. 지금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과거의 거인들의 초상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정합적으로 설명해 줄 방법이야.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자원은 하나밖에 없지. 당연히 마르크스 자신이야.

마르크스는 세상을 결코 '정세적'으로만 해석하지 않았어. 그는 항상 확고한 방법론을 토대로 현실의 다양한 요소들의 합리적 핵심을 포착해 추상화/개념화했고, 이를 일관되고 정치한 개념 간의 관계로 직조함으로써 진짜 '이론'을 만들었지. 그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정세적 해석을 하는 순간조차도 그 해석은 이론의 연장선에 있거나 다음 이론을 예비하는, 일종의 관측 리포트였지. 만약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 맞다면, 후학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과거에 정통으로 인정받거나 혹은 인정받지 못했던 어떤 정리들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 그 자체일 수밖에 없어.

물론 마르크스 같은 대학자의 성취를 재현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의미한 헛소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야. 우리가 하는 모든 주장과 언명이 '이론'의 수준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최소한 마르크스로부터 이어지는 일군의 '과학자 공동체'를 구성하는 말단 일원으로서 당당하려면, 끊임없는 방법론의 적용 시도와 방법론에 기초한 대화의 노력은 필수적인 덕목이라는 거야.

이게 내가 21세기에 20세기의 모든 유산을 거부하고 19세기의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이유야. 개념과 방법론만 남기고 다른 모든 테제는 유보하기, 모든 역사적 경험은 현재를 변증법적으로 예비한 전개 과정으로서만 파악하기, 개념과 방법론을 항상 직접 현재에 적용하여 미래를 예측하기, 해석한 내용을 공부하기보다 해석의 도구에 숙련되기. 이것만이 좌파가 다시 미래를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거든.

끝맺음이 애매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헤겔의 <역사철학강의> 서론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끝낼게.

"그러나 경험과 역사가 가르쳐 주는 것은, ... 역사에서 무엇을 배운다든가, ...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각 시대는 제각기 특유한 경우를 가져 제각기 극히 개체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각 상태에 있어서, 각 상태 그 자체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해서만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 왜냐하면 퇴색한 과거의 회상 따위는 현재의 생활 태도와 자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