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주제는 《1980년 전후를 기점으로한 민족해방운동의 변화 - 미국, 그리고 민족주의적 남성성을 중심으로》로 잡았습니다.

대부분의 보수 학자들은 소위 NLPDR이 남성성과 가부장적 민족운동론을 시작하였다고 비판적으로 보지만, 저는 반대로 1960~70년대의 문화예술 속 반미운동, 즉 사회주의적 경향성이나 반미운동의 반파쇼정부적 승화가 존재하기 이전 저작들에서의 가부장 경향이 오히려 NLPDR의 등장 이후보다 강했다는 주장을 해 보려고 합니다.

이유로는
'1970년 반미운동의 민족순수성 강조'가 있습니다.

1960~70년은 양공주와 국제결혼이 사회이슈화되었고. 정부또한 피동적 반미기조를 지니면서 용인되기 시작한 반미 문화요소들이 대부분 '혼혈-혼입'에 대한 제노포비아를 토양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군사정부와 미국의 상생과 반식민지적 경향이 아직 민중운동에서 정립되지 않은 시기 피상적인 공격의 방식으로 '강간당하고 미국놈 애를 낳을수밖에 없는' 민족의 여성과 '이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남성성이 민족주의적 가부장제를 강화하였다는 논지입니다.

이는 '1980년 반미운동에서 '여성'의 주체적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문학과 일부 저항에서 가부장적인 피해와 수동의 대상으로 여겨지던 민족 내의 여성은 이제 민족해방운동론을 만나 능동적으로 저항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이는 1980년대 초중반의 양공주 신원운동, 총여의 기지촌 빈활진행등에서 '목소리'가 생긴 피해자들과의 관계맺음에서 발생하였다고 판단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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