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스탈린이 수천 명의 동성애자들을 박해해 그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을 인정하며 그 점을 부인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점을 알립니다.




우선 글을 게시하기에 앞서 왜 동성애자 인권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두고 소비에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논의를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프렌치 페미니즘과 3세대 페미니즘의 대두 이후 LGBT와 유색인종에 대한 논의는 빠르게 진전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과거의 공산주의자들이 인터섹셔널리티와 페미니즘을 경시했다는 점을 인정했으며, 투쟁의 양태에 있어 계급과 젠더 그리고 인종이 다차원적으로 고려되어야 함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한 일련의 흐름에 따라, 현재 1세계의 사회주의 노선에서는 명백히 3세대 페미니즘과 사회주의의 공존을 추구하는 활동가들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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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그들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을 주축으로 한 스탈린주의와 소련에 대한 비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외려 인터섹셔널 페미니즘을 주축으로 한 사회주의자들은 트로츠키주의에 비판적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는 트로츠키주의가 의도했든 아니든 본질적으로 제국주의와 연대하며 페미니즘을 경시, 심지어는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국제사회주의 노선에 몸담고 있었던 입장에서, 일반적으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태도를 명약관화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홍콩 사태와 같은 경우였다고 생각한다. 홍콩 사태에서 제국주의 세력을 철저히 부정하고 중국 당국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나? 물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수가 아니었다. 조슈아 웡을 주축으로 한 시위 주도 세력은 일본과 영국에 SOS를 보내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에게 도움을 호소하며 심지어는 미국 내의 대안우파 세력들과 철저히 야합했다. 이들은 서구제국주의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홍콩이 민주화되는 것을 우선으로 보았다. 개인적으로 아그네스 차우나 조슈아 웡에 대해 어떠한 악감정은 없다. 그들이 서구세력과 협력하는 식의 자유민주주의 노선을 택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다만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유독 홍콩 사태와 같은 이슈에서 중국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므로 서구의 개입을 통해서라도 홍콩 민중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이러한 주장을 암묵적으로 용인함으로써 홍콩 사태의 친제국주의적 행보를 방관하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인내하기 어려운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일관되게 스탈린주의의 과오를 지적하면서 그 사유로 스탈린주의식의 권위주의란 본태적으로 성소수자와 여성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근본적으로 그 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소련 민중들과 관료층을 지배하고 있던 사고가 여전히 유럽의 기독교 문명을 모태로 한 근대성에 머물러 있었기에 유의미한 개혁이 진척되지 않은 것이지,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수의 민중이 반동성애적, 반여성적 편견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권위주의를 일소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되겠는가? 나는 지금부터 그 점에 대한 반박을 진행하고자 한다. 즉 글의 요지는 3세대 페미니즘을 포용한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 트로츠키주의와 소위 말하는 대안적 사회주의가 동성애나 페미니즘 등을 근거로 해 현실사회주의의 체제적 모순을 지적하는 것이 어떠한 결함을 갖고 있는지이다.   


1917년에 차르정부 시절 시행되었던 반동성애법이 폐지되었던 것은 명백히 커다란 진전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전 유럽의 공산주의 활동가들이 커다란 진일보라고 인식했던 점은 비교적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볼셰비키가 이런 결단을 내린 데 있어서는 레닌보다도 아나키즘 그룹의 영향력이 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나키즘 세력은 명백히 당시 동성애자 인권을 옹호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강력한 그룹이었고, 이런 맥락 속에서 반동성애법이 폐지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 정교회는 소비에트의 문화, 그리고 의식 구조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22년 이후에는 반동성애법의 폐지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 남성 간의 동성애 관계는 여전히 합의 여부나 미성년자와의 관계임을 문제삼아 처벌받는 경우가 발생되고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소비에트의 관료층이 동성애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이나 영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덜했다. 독일이나 영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단순히 동성애를 범죄가 아닌 질병으로 보는 관점을 넘어서서 동성애를 개인의 자유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의 주류 정신의학계는 기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동성애가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었고, 공산주의 진영 내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리고 있었다. 다만 소비에트의 경우 여전히 다수의 핵심 관료층들이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겐리흐 야고다가 1933년 스탈린에게 동성애자를 처벌할 필요가 있다는 서한을 보냄으로써 반동성애법 복원의 결정적 트리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비단 관료층에서만 반동성애 정서가 퍼져 있었느냐에 대한 문제이다. 일부 고위인사들이 동성애자들이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과 결탁하고 있으며, 이들이 공산주의에 이롭지 않다는 논조를 고수해 왔다는 역사적 기록에 따라 비판론자들은 스탈린주의에서 근본적인 퇴행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앞서 작성했던 글에서 1917년 당시의 혁명적 활력이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국가로 변모해 버렸다는 지적을 본 적이 있는데, 아마도 비슷한 맥락에서의 비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맑스가 비록 유물론적 사고를 굉장히 강조했으나 실제 혁명은 다요인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했던 사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기술, 사회적 관계, 정신적 인식 등 다요인 간의 변증법적 긴장(dialectical tensions)을 통해 혁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국가들의 사례에서 이런 여러 요인들이 조화롭게 유니터리티(unitarity)를 갖추고 혁명이 일어났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실제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개중에서도 강조되었던 면들이 존재하고 소비에트의 경우 기술(technology)이, 북한의 경우에는 정신적 인식(mental conception)이 강조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주체사상의 경우 정신적 인식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다른 요인들을 모두 통제하려는 것으로까지 나아갔으니 문제가 된 것이다.


아무튼 소비에트의 경우 여전히 일반 민중들의 인식에 있어 유럽 근대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독교 권력과 부르주아 계급의 유착에 따른 성윤리의 강조와 동성애에 대한 억압은 18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 보편적인 일이 되었고, 러시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19세기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 진행되던 동성애에 대한 진보적인 담론의 수혜를 받지 못다시피 했다. 트로츠키주의 진영에서는 19세기 러시아가 동성애에 관용적이었으나 스탈린의 집권 이후 모조리 엉망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 여전히 러시아 내 민중들에게 동성애란 일반적으로 반성경적인 것이었으며, 다만 차르정부가 귀족들 사이에서 퍼져 있는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은 것이 러시아가 동성애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이었다는 오해를 불러오는 주된 원인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소비에트의 탄생 시점에서 러시아 민중들은 근본적으로 동성애에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소련의 관료집단은 결정적으로 동성애가 부르주아 계급과 야합하는 것이라는 결정적인 인식 오류를 범했지만, 이 오류의 근저에도 궁극적으로는 러시아의 당시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 시기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있어 결정적인 퇴행을 불러온 사건은 단지 러시아 민중들의 일반적인 정서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배적인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봐야지, 스탈린주의라는 체제 자체의 근원적인 모순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물론 역사적 흐름을 역행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동성애에 대한 비범죄화 여론은 아나키스트 그룹을 주축으로 한, 수적으로 소수에 해당하는 세력이 주도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부문에서 의식의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실제 당시의 엄혹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오늘날의 것으로 바뀌기까지 68혁명이 있었고, 70~80년대의 래디컬 페미니즘이 있었고, 이후의 3세대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의 지속적 연대가 있었다. 따라서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전통적인 스탈린주의자들 또는 반수정주의자들과 달리 미시적인 투쟁, 우리 일상에서의 인식전환을 강조한다. 크리스테바가 말했듯 여성의 저술이 여권을 바꾸고, 레즈비언의 글쓰기가 레즈비언 인권의 향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주의라는 체제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미시적 투쟁의 결여에 대한 비판이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스탈린주의, 혹은 역사상 존재했던 특정한 현실사회주의 국가만이 부담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 진영 전체가 고민하고 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마치 소련에서 존재했던 모든 역사적 퇴행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하며 그 근본적 원인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종래는 국제주의라는 명분 하에 반제국주의 투쟁의 결속력마저도 약화시키며, 그들의 주장은 한때 스탈린주의의 비판에 대한 핵심명분으로 삼던 그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조차도 충분히 계급적이지 못하며 부르주아에 영합한다는 식의 비난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정작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소수자와 여성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보기조차도 힘들다.


따라서, 부르주아 제국주의자들의 소련 체제 비판이 온당치 않은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근본적으로 충분히 계급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국제적이지도 않으며 충분히 인터섹셔널하지도 않은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일부 대안적 사회주의자들이 동성애자 인권의 후퇴를 명분으로 해 소련 체제와 스탈린주의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 쓰다 보니 글이 트롯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게 되었네요. 소련과 동성애를 연관지어 제기되는 비판이 일반적으로 그쪽에서 나오고, 또 아까 글을 쓴 것도 그쪽 성향의 잡지를 보고 쓴 나름의 짧은 반박이라 그런 맥락에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