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에는 사회민주주의에서부터 아나키즘까지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의미합니다. 사회주의의 다양한 분파 중 특정 이념만을 겨냥하고 쓴 글이 아니니 이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소련의 선전 포스터. 러시아어로 "지식이 노예의 사슬을 부수리라"라고 적혀 있다.)
사회주의 이론의 집대성을 위하여
- 무지를 넘어 해방으로
"무지가 도움이 되었던 적은 없다" - 칼 맑스가 바이틀링과 논쟁했을 때 한 말
1. 왜 집대성인가
인류의 오랜 역사는 사상의 역사였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자신만의 사상을 펼쳤고, 그것은 당대에 찬양받았든 외면받았든 간에 각자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인류에 끼쳤다.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비록 그 안에서도 수많은 갈등과 분파가 존재했지만, 한때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인류의 1/3이 살았었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지금에도 사회주의 사상의 이론가들은 여전히 호명되고 그들의 저작은 끊임없이 읽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회주의의 역사적 위치를 고려할 때,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서적들은 다양한 출판사로부터 선집 혹은 단행본 형식으로는 우후죽순 출판되어 있지만 정작 한 사람도 본인의 한국어판 '전집'을 가져보지는 못했다. 그나마 맑스와 엥겔스가 박종철출판사로부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전6권) 정도만 가진 실정이고, 레닌은 아고라 출판사에서 전집을 목표로 계속 발행 중이지만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사회주의의 대(大)사상가에 속하는 맑스와 레닌이 이러할진대, 다른 사상가들은 또 어떻겠는가? 이를 고려할 때 한국에서의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전집 발행은 감히 불모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내외 사회주의 운동과 단체들의 자료집 또한 8090년대 인문사회과학서적에서 잠깐 발행된 몇몇 절판서적들을 제외하곤 역시 전무한 실정이다.
이는 한국 지성사(史)에서나, 그리고 한국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에서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한국이라는 국가가 그 출발이 반공주의적이었다지만 이 정도일 수가 있을까 싶다. 이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우리들은 이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사상가들의 저작과 사회주의 운동의 자료들은 우리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투쟁에 있어서, 사회주의 이론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그런 자료들의 부분들만 접해야 하며, 언제까지 번역되거나 소개되지 않은 자료들을 찾으러 '맑시스트 인터넷 아카이브' 같은 곳을 헤메어야 하는가? 만약 그런 곳에서조차 없는 자료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쩔 것인가?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논저들과 자료들의 '집대성(集大成)'이 절실하다. 이 집대성을 통해서 우리는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사상을 더욱 정확하고 낱낱이 알 수 있을 것이며, 역대 사회주의 운동의 흐름과 특징 그리고 한계와 의의 등을 더 정확하게 파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끊임없는 무지와 오해를 딛고, 우리의 사상을 더욱 날카롭게 벼르기 위해서 이 집대성은 피할 수 없는 의무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그 집대성을 이뤄낼 수 있을지 계속 이 논의를 이어가 보자.
(사회주의의 대표적 사상가들인 맑스와 바쿠닌. 둘 다 한국에서는 전집 발행조차 못하였다.)
2. 무엇을 다뤄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다루어야 하는가? 집대성을 위해서 우리가 취급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지만, 그 중 크게 세 가지로 추린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저서와 원고들이다.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작품들은 사회주의 이론의 기본을 형성하기에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상적 흔적들은 빠뜨리지 말고 수록해야 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사회주의도 다양한 분파가 있기에 일부 사상가들은 논쟁이 있을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담당자들의 치열하고 논리적인 논쟁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국내외 사회주의 운동과 단체들의 자료들이다. 맑스와 동시대의 사상가들 이후로부터 사회주의는 1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운동과 단체들을 거치면서 분화 및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이들 운동의 궤적과 각 단체들의 활동상과 사상적 특징을 파악하기 위하여 이 자료들도 필수적이다.
셋째, 사회주의에 대한 기타 자료들이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외에도 우리가 사회주의를 알아감에 있어서 다루어야 할 중요 자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면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예술, 법률, 정책, 사회상(像), 문화 등의 세부적인 내용을 다룬 자료들을 들 수 있겠다.
3. 전집과 선집
우리가 다뤄야 할 것들에 대해 논했다면 이제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출판할 수 있을 지도 고려해야 한다. 일단 사상가들의 논고 혹은 정당, 사회단체의 자료 등을 책자로 출판하는 방식으로는 단행본을 제외하면 두 가지가 있다. 전집으로 모든 논고와 자료를 다 모으는 것, 선집으로 중요한 논고와 자료만 선별하는 것. 물론 집대성을 위해서는 전집이 가장 좋은 방식이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모든 자료를 모은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이 경우에는 선집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사상가나 단체 같이 특정한 인물이나 제한된 분야에서는 전집 발행이 좋을 것이다. 모든 인물은 생애 동안 남긴 저작들이 한정되어 있고, 단체들도 지금은 사라진 단체의 경우에는 역시 그 자료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전집을 통해 모든 저작과 자료를 모아놓는 게 수월하다. 인물이라면 그 인물이 발표하거나 출판한 저서나 원고, 혹은 미발표/미공개 원고나 수기, 그리고 타인과 주고 받은 편지 등을 수록하면 될 것이다. 단체라면 그 단체가 공개적으로 발표한 서한이나 문서, 혹은 내부적인 규약이나 문서 등을 수록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성이 떨어지는 분야거나 헷갈리고 논쟁이 생기는 분야, 또는 광범위한 분야에서는 선집이 전집보다는 오히려 좋을 것이다. 모든 자료를 집어넣는 것이 집대성의 표준이라지만 때로는 그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맑스 이전의 사회주의를 주제로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공상적 사회주의자까지만 다룰 것인지 아니면 프랑스 혁명기의 과격파 혹은 영국의 수평파 아니면 저 옛날 종교개혁 시기 뮌처의 얘기까지 다룰 것인가 논쟁과 혼란을 겪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모든' 자료를 찾아 넣는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과업이 될 것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담당자들이 확실하게 인정할 수 있는 논고와 자료들만을 선별하여 선집을 만드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문학이나 문화처럼 폭이 넓은 분야도 마찬가지다. 다만 인물을 선정해 그 인물을 중심으로 전집을 발행한다면, 이는 선집보다는 괜찮은 해결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앞에서 논한 집대성을 위해 다뤄야 할 것들, 그리고 출판 방식까지 고려한다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이런 목록을 작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예시에 불과하므로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질 지는 향후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1) 사회주의 사상가, 혁명가들의 경우: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전집
블라디미르 레닌 전집
이오시프 스탈린 전집
레프 트로츠키 전집
로자 룩셈부르크 전집
안토니오 그람시 전집
루카치 죄르지 전집
칼 코르쉬 전집
마오쩌둥 전집
호치민 전집
체 게바라 전집
게오르그 플레하노프 전집
페르디난트 라살레 전집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전집
칼 카우츠키 전집
표트르 크로포트킨 전집
미하일 바쿠닌 전집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전집
2) 사회주의 운동 및 단체의 자료 :
맑스 이전 사회주의 사상 선집
제1인터내셔널 자료 전집
제2인터내셔널 자료 전집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 자료 전집
볼셰비키 선집
독일 사회민주당 사상 선집
중국 공산당 사상 선집
영국 노동당 사상 선집
동구권 지도자들의 저작 선집
3) 기타 자료 :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선집
마야꼬프스끼 문학전집
막심 고리끼 문학전집
베르톨트 브레히트 문학전집
동구권 교과서 자료 선집
동구권 법률 자료 선집
(80-90년대 '운동권' 학생들으로부터 공안당국이 압수한 인문사회과학 서적들. 이 당시 사회주의 서적은 물론이고 사회주의 사상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해도 반정부적 논조가 들어 있다고 의심되는 서적은 모조리 '금서'로 여겨졌다.)
4. 우리가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
여기까지 왔다면 우리의 논의는 꽤나 수월하게 흘러온 듯하다. 하지만 위의 논의들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남아 있다. 이는 크게 네 가지로 수렴한다.
가장 먼저 자료 수집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담당자들이 모아야 할 자료의 범위와 수집 방법 등을 들 수 있겠다. 자료의 범위는 그 인물이나 단체 혹은 분야와 관련된 모든 것이라면 최대한 넣어야 할 것이다. 다만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 있는 경우나 논란이 있는 경우에는 전집 혹은 선집 수록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할 수는 있겠다. 수집 방법으로는 먼저 각지에 이미 출판되거나 공개된 자료들부터 모아야 한다. 그 후에는 미발표되거나 미공개된 자료들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유족들이나 재단 혹은 박물관, 도서관 등을 돌아다니는 수고를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본다.
두번째는 번역의 문제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이상 대다수의 사회주의 관련 저서와 자료들은 외국어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참여해서 저서와 자료를 번역해 내어야 한다. 하지만 외국어에도 정통하고 사회주의 사상에도 정통한 사람들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1차적으로는 둘 다 정통한 사람에게 맡기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번역부터 실시하고 이후에 교정하는 방식이 적절하다 본다.
세번째는 이 사업 담당자들의 문제이다. 사업 담당자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집대성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특정 분파나 해석을 막기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분파의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 가장 객관적이고 논란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의 치열한 토론과 점검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집대성 사업의 의의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가 필수적이다.
네번째는 자금의 문제이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는 집대성에 있어서는 어쩌면 가장 치명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이나 후원자들의 개인적인 도움 혹은 단체 차원이나 사회적인 도움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5. 사회주의 이론의 '아카식 레코드'를 위하여
혹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라는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신비학에서 우주의 모든 기록들을 담은 것들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우리의 목표는 사회주의 이론의 '아카식 레코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회주의 이론의 형성 배경과 시작에서부터 치열한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을 거쳐 현재의 이르까지의 최대한 많은 자료들이 담긴 한국어판 아카이브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집대성 사업의 목표이다. 그러면 이를 토대로 우리 사회주의자들은 더 가치 있고 풍부하게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현실에 더 알맞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은 절대로 짧은 시간에 끝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이 사업을 주장하고 이 사업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지만, 어쩌면 필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고 죽어서도 안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운동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이 작업을 언젠가는 해내야만 한다. 맑스가 말했듯 "무지가 도움이 되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1931~2019)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아직 그런 책이 없다면, 당신이 직접 써야 한다." 우리는 이 명언을 이렇게 변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읽고 싶은 사상가가 있는데 그 사상가의 자료와 책이 아직 없다면, 우리가 직접 그걸 모아야 한다." 그것이 사회주의의 이론을 집대성하는 대장정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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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쪽 전집 현황은 잘 모르겠음.
권력 잡으면 한국어판 MEGA 출간 씹가능
MEGA 출간시도한다는 기사를 본거같은데 그게 나온게 있나
동아대 부설 연구소하고 강신준 교수가 출간한다는 얘기는 있었는데, 아직은 진전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