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만화작가 에르제가 그린 <땡땡의 모험>은 유작을 포함하여 총 24권의 만화책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년만화 시리즈이다.)
여러분은 벨기에의 국민만화 <땡땡의 모험>을 아시는가? 아시는 분이라면 다 아는 이 만화는 만화작가 에르제(Herge, 1907-1983)가 그린 소년만화 시리즈이다. 이 만화는 1930년 신문 연재 만화를 시작으로 에르제가 죽는 1983년까지 계속 이어졌고 전세계 60개국 50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부가 넘게 팔렸다. 유작까지 포함하여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땡땡의 모험>은 '땡땡주의자(Tintinologist)'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필자도 어릴 적 도서관에서 <땡땡의 모험> 책들을 읽으면서 낄낄댔던 추억이 있다.
헌데 사실 이 만화는 논란이 될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로 반공주의와 제국주의로 범벅이 된 경향이 초기 만화에 심각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첫 작품 <소비에트에 간 땡땡>과 두번째 작품 <콩고에 간 땡땡>이다. 두 작품은 각각 반공주의와 제국주의를 대표하고 있으며, 소년만화라는 특성상 그 사상과 표현도 진부하고 유치한 모습을 보인다.(다만 이후에 에르제가 이런 경향을 극복함으로써 <땡땡의 모험>은 여전히 사랑 받는 인기 만화로 자리매김 할 수는 있었다.) 그러면 그 '흑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30년에 나온 <소비에트에 간 땡땡>. 이 책은 <땡땡의 모험> 시리즈의 첫 권이라는 의의가 있지만 내부는 근거 없는 반공주의적 프로파간다로 가득 차 있다.)
소비에트에 간 땡땡 : 진부하다 못해 유치한 반공주의
<땡땡의 모험>의 첫 권은 <소비에트에 간 땡땡>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1929년~1930년 동안 에르제가 신문에서 처음으로 연재한 만화들을 모아 1930년 출판되었다. 이 책은 물론 소년만화로서 '모험'과 '재미'에 방점이 찍혀 있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반공주의적 프로파간다로 가득 차 있다. 줄거리부터가 <소년 20세기>의 기자로서 소련에 취재를 간 땡땡이 자신의 취재를 막으려는 공산당 비밀경찰들과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만화책은 땡땡이 소련을 돌아다니는 동안 공산당의 만행과 그로 인해 얼어붙은 러시아 사회를 묘사하는 데 만화 칸을 채우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땡땡과 그의 애완견 밀루가 울타리 안을 들여다보자, 한 마을에서 선거가 치뤄지고 있다. 헌데 선거를 관리하는 공산당원들은 공산당원을 뽑으라면서 총을 들어 마을 사람들을 협박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공산당원들은 만족하면서 "만장일치"로 공산당원이 선출되었다고 말한다. 이를 보는 땡땡과 밀루는 '!?'이라며 놀라워 한다. 이외에도 공산당 비밀경찰이 땡땡을 막고자 기차에 폭탄을 터트린 것을 땡땡이 했다면서 무고하고, 그를 감옥에 가두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적 사실을 분석했을 때, 이 만화가 보여주는 소련의 모습이 사실일까? 만화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에르제의 이 만화는 소련에 대한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다. 당장 예시로 든 마을 선거만 해도 소련의 선거가 저렇게 강압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얘기를 필자는 들어본 적도 없다. 이론적인 비판도 없이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에만 가득 차 있었기에 저런 만화적 표현이 나왔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만화는 진부함을 넘어 유치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소비에트에 간 땡땡>에 나오는 반공 프로파간다 중 하나. 소비에트의 선거가 위협으로 이뤄진 협잡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중간 칸의 공산당원들은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누며 이렇게 말한다. "이 후보자를 반대하는 사람은 손을 드시오! 도대체 누가 '반대'하겠다는 거야?" 하지만 소련의 선거가 저렇게 시행되었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다.)
왜 이런 반공 프로파간다 같은 만화가 나오게 됐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먼저 에르제가 이 만화를 연재한 신문 <소년 20세기(Le Petit Vingtième)>는 신문 <20세기(Le Vingtième Siècle)>의 어린이판이었다. 헌데 <20세기>는 카톨릭 사제였던 노베르 발레(Norbert Wallez, 1882-1952)가 이사로 있었다. 노베르 발레는 극우파였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존경했으며,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벨기에의 극우정당을 지지했었다고 한다. 그런 인물이 이사로 있었기에 신문도 그와 유사한 정견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중립적인 얘기조차도 할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만화를 연재하며 에르제가 참고 서적으로 썼던 책은 대다수가 반공서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벨기에 영사로 소련에 있었던 조셉 두이예(Joseph Douillet, 1878-1954)가 쓴 <베일 벗긴 모스크바(Moscou sans voiles)>였다. 두이예는 소련에서 징역을 살고 나온 적이 있었기에 소련에 대한 반감을 품었고 그렇기에 이 책은 소련에 대한 비판과 날조로 가득했다. 이외에도 만화가 연재될 때는 이오시프 스탈린(Iosif Stalin, 1878-1953)이 소련의 권력자로 자리매김한 상황이었기에 그와 소련에 대한 적색 공포(Red Scare, 일종의 레드 콤플렉스)가 서구 사회에 만연하던 시기였다.
결론적으로, 에르제가 이 만화를 그릴 당시 모든 작업 환경이 그에게 반공주의적 시각을 만화에 투영하도록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만화는 초판본만 5,000부가 팔릴 정도로 꽤나 성공을 거뒀다. 덕분에 그는 <20세기>에 계속 <땡땡의 모험>을 연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그의 잘못된 시각은 바로 교정되지 못했고, 잘못된 시각은 아프리카 식민지를 다룬 다음 만화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1931년에 출판된 <콩고에 간 땡땡>. 이 책은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만화적 표현으로 논란이 되어 에르제는 이 만화를 여러 번 수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2007년에는 한 콩고인이 이 저서가 인종차별을 했다며 벨기에 법원에 고소를 하는 일도 있었다.)
콩고에 간 땡땡 : 제국주의와 백인우월주의의 향연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 중에는 에르제의 조국 벨기에도 있었다.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는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어 콩고 지역을 사유화하는 방식으로 1885년부터 식민지배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콩고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고무를 생산한답시고 원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팔을 잘라 버리는 잔인한 방식으로 학대를 가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원성을 사자 1908년 벨기에는 콩고 지역을 직접 식민지배 하기로 했으나 독립은 시켜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국주의 국가의 농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에트에 간 땡땡> 연재를 마친 에르제는 땡땡을 다룬 새 만화를 그려야 했다. 사실 에르제는 땡땡을 미국에 보내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20세기>지의 이사 노베르 발레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땡땡을 콩고로 보내 자국의 식민지 정책을 홍보하고 싶었다. (덕분에 <미국에 간 땡땡>은 콩고 이후로 미뤄졌다.) 그의 지시에 따라 에르제는 1930년부터 1년 동안 <콩고에 간 땡땡>을 그렸다. 하지만 이전 작처럼 신문은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옹호했으며 에르제가 접할 수 있었던 자료들도 자국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자료들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제가 그려낼 수 있는 건 뻔했다.
1931년 흑백으로 나온 <콩고에 간 땡땡>은 당시 서구 사회에 만연하던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작품에 대한 비판과 지적사항은 너무 많아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콩고의 학교에 간 땡땡이 콩고 원주민 아이들에게 벨기에가 너희들의 조국이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 가하면, 흑인들을 '검둥이'라 부르고 이들이 게으르다며 땡땡이 화를 내는 장면도 나온다. 그림체도 백인들은 다채롭게 그린 반면, 흑인들의 모습은 마치 그 옛날 미국 백인들이 흑인으로 분장하며 조롱하던 '짐 크로우(Jim Crow)'를 연상케 하는 그림체로 일관한다. 흑인들의 행동도 서구제국주의가 익히 선전했듯이 가난하고, 무례하고, 게으른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땡땡이 학교에서 콩고 원주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장면. 땡땡이 아이들에게 "우리의 조국 벨기에" 운운하고 있다. 이 장면은 나중에 개정판에서 2+2를 가르치는 장면으로 변경되었다.)
<콩고에 간 땡땡>에서 드러나는 제국주의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 면모들을 비난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이 만화는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에 적합하기 때문에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를 묘사하는 '전형'을 아주 훌륭하게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땡땡은 벨기에 출신으로서 만화에서 그가 주인공으로 부각됨으로써 그는 제국주의가 그토록 선전하는 '계몽'으로 상징된다. 반면 콩고 원주민들은 미개하고 '계몽'이 필요한 존재로 요약할 수 있다. 그렇게 만화는 제국주의를 홍보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소년만화에 대한 평가 치고 과한 해석 같은가? 이는 땡땡주의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여하튼 시간이 흐를수록 <콩고에 간 땡땡>은 진보적 활동가들과 평론가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들어야 했다. 결국 에르제는 이 만화를 여러 번 고쳐야 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벨기에가 조국이라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수학 지식을 가르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허나 진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7년에는 콩고계 벨기에인 비앙브뉘 음부투 몬돈도(Bienvenu Mbutu Mondondo)가 벨기에 법원에 <콩고에 간 땡땡>이 인종차별을 했다며 판매금지를 요청했다. 법원은 1심에서 이를 기각했으나, 이는 이 책이 인종차별 문제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2010년에는 <콩고에 간 땡땡>을 풍자하며 <아프리카에 간 파파(Pappa in Afrika)>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서 땡땡은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돈에 눈이 먼 악당으로 풍자된다.
그럼에도 1930년대 당시 <콩고에 간 땡땡>은 전작처럼 잘 나갔다. 그래서 에르제는 계속 <20세기>에서 지면을 할애받아 만화를 그릴 수 있었다. 허나 만화의 성공은 그에게는 행운이었지만, 그의 오류에는 불운이었다. 이후 에르제는 몇 편의 만화를 더 그리고 난 후에야 만화를 제작함에 있어서 자신의 태도와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땡땡의 모험>의 작가 에르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기의 초기작들이 "부르주아 계층의 편견"에 물들어 있었다며 자아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땡땡의 모험>을 계속 연재하다가 1983년 세상을 떠났다.)
"부르주아 계층의 편견"
훗날 에르제는 자신의 처음 책들에 대한 비판에 대해 1970년대 이뤄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변했다. "<소비에트에 간 땡땡>은 물론 <콩고에 간 땡땡>을 쓸 당시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부르주아 계층의 편견에 물들어 있었다." 실제로 에르제는 5번째 책 <푸른연꽃>을 그리려고 했을 때, 벨기에의 한 중국인 유학생의 도움으로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대부분 벗어던졌다. 그래서 <푸른연꽃>에서는 중국을 침범하는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적 행보에 대한 비판이 돋보인다. 이후 에르제는 만화를 그릴 때 참고 자료의 중요성과 탄탄한 줄거리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으며, 신문의 정치적 성향에 만화가 영향을 받는 것에 염려하여 신문이 아닌 출판사와의 계약을 통해 판권을 넘겼다.
하지만 설령 그가 회심했고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려 했다지만, 그가 이전에 편견으로 가득 차게 그려넣은 만화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들의 출판사 제공 책 소개에는 앞에서 필자가 지적했던 부분들은 단편적인 부분에만 그치고 있다. 오히려 장점과 의의를 찾기 급급하다. <소비에트에 간 땡땡>에서는 이 책이 에르제에겐 "단련의 시간"이었다는 식으로 운운하고, <콩고에 간 땡땡>은 비록 <소비에트에 간 땡땡>보다는 책 내용의 문제점을 보다 자세히 지적하기도 하나 "주된 매력은... 의례적이고 틀에 박힌 듯한 측면에 깃들어 있다"라는 식이다.
에르제가 한때 빠졌던 "부르주아 계층의 편견"을 우리는 다시 답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땡땡의 모험>, 그 중에서도 초기의 작품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아껴서는 안 된다. 출판사가 아무리 칭찬을 덧칠하며 애써 그것을 포장해주려고 해도 그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우리부터가 앞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이 작품을 사랑하는 '땡땡주의자'라면 더더욱.
P.S.
<소비에트에 간 땡땡>과 <콩고에 간 땡땡>을 다룬 독자들의 리뷰를 보았을 때, 후자는 그래도 에르제의 흑역사를 알고 읽는 경우가 많았다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여전히 반공주의적 시각에 사로잡혀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의 글이 전자와 후자 모두에 대한 좋은 글이 되길 바란다.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편견에 사로잡혔다고 ㅇㅈ한거보면 이원복 같은 애미뒤진 수꼴은 아니었나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