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노동자 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사회적 전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시기상조' 일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결과라는 관점에서는, 다시 말해 권력을 확고하게 유지한다는 관점에서는 필연적으로 '시기상조'일 수밖에 없다. 베른슈타인은 혁명이 너무 빨리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불안해하는데, 이러한 시기상조의 혁명은 다모레스의 검처럼 우리를 위협한다. 어떠한 탄원과 기도도, 또 근심과 경고도 이러한 위협에 대항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간단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회가 자본주의 질서에서 사회주의 질서로 이행하는 거대한 변혁은 결코 한 번에, 즉 프롤레타리아의 승리에 찬 한 번의 타격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는 것은 다시금 순수블랑키주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다. 사회주의 변혁은 길고도 힘든 투쟁을 전제하며,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외관상 한 번 이상 격퇴되며, 그래서 전체 투쟁의 최종 결과라는 관점에서 이야기 할 때, 필연적으로 첫 번째 혁명의 정권 장악은 '시기상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둘째, 무엇보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시기상조'인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의 이러한 '시기상조'의 공격이 바로 그 자체로 최종적인 승리를 위한 정치적 조건들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또한 최종 승리의 시점을 정하는 데 기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노동자 대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개념은 그 자체는 정치적으로 불합리한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은 사회 발전을 기계론적으로 인식할 때 발생하며 계급투쟁에서 승리하게 되는 특정 시점을 계급투쟁의 외부에 그리고 계급투쟁과는 독립적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프롤레티라아는 국가권력을 '시기상조'와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장악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결국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지속적으로 쟁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 '시기상조일 때' 탈취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시기상조의 권력 장악을 반대하는 것은 국가권력을 장악하려는 프롤레타리아의 노력 자체에 대한 반대이다.






요즘 분야를 막론하고 '시기상조'이니 '타협'이니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데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