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가치학설사>가 된 맑스의 실제 친필원고 중 일부)
맑스는 속류 정치 경제학의 이 모든 변호론적인 간계에 대하여 <잉여가치학설사>에서 섬멸적인 비판을 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맑스의 이 위대한 저작은 부르조아 정치 경제학 역사를 이해하기 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분쇄된 지 오랜 사이비 개념들을 소생시켜 (...) 더러운 일에 이용하려고 시도하는 부르주아 반동의 현대 대표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하기 위하여서도 거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 소련 공산당 중앙 위원회 직속 맑스-레닌주의 연구소.
자본론 제4권?
인류 역사의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칼 맑스의 주저 <자본론>은 총 3권으로 이뤄져 있다. 1권은 '자본의 생산과정', 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 3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과정'을 각각 다루고 있다.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그 경제체제의 본질과 착취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명저로 평가 받는다. 헌데 맑스가 <자본론>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지만 <자본론>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비운의 원고들이 있다. 바로 훗날 <잉여가치학설사>라고 불리게 되는 방대한 양의 원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원고의 탄생을 이해하려면 먼저 맑스가 <자본론>을 구상할 때로 돌아가야 한다. 맑스는 1858년부터 1862년까지 <정치경제학 비판>의 전체적 구조를 조망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제1권(제1부) '자본의 유통과정' 부분은 5가지의 세부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마지막이 '잉여 가치 학설사'로 되어 있다. 하지만 <자본론>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이 세부 사항은 그 함의가 점점 넓어져 갔고, 자본주의를 분석함에 있어서 기존 경제학 이론들에 대한 맑스의 연구와 비판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쌓여갔다. 이렇게 저술해 나간 '잉여 가치 학설사'는 맑스의 노트 VI권부터 XV권까지에 주로 저술되었다. 이는 총 3부로 나뉠 만큼의 방대한 양이었다.
이 분야에 대한 맑스의 원고들은 <자본론> 제1권이 출판될 때는 포함되지 못했다. 맑스는 이 원고들을 다음 순서들로 미루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맑스가 지인들과 주고 받은 서신을 분석했을 때 그는 이 원고들을 자본론 제4부로 넣으려고 했음이 거의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맑스는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자본론> 제1권만 출판한 채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제2권과 제3권은 맑스의 동지였던 엥겔스가 편집 및 정리하여 출판했지만 그조차도 '잉여가치학설사'를 위해 남겨둔 원고들을 미처 다 정리하지 못했다.
이후 1905년부터 1910년까지 독일의 사회주의자 칼 카우츠키(Karl Kautsky, 1854~1938)가 정리하여 <잉여가치학설사(Theorien über den Mehrwert)>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다. 이 판본은 독일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 번역까지 이뤄지며 여러번 간행됐지만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맑스가 직접 정리해 놓은 원고의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카우츠키가 임의대로 순서를 정한 것이었다. 또한 각 원고의 제목들도 맑스와 부르주아 경제학 사이의 관계를 대립적이 아닌 유화적으로 읽힐 수 있도록 해놨다. 그로 인해 맑스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1952년부터 1962년까지 소련과 동독의 맑스-레닌주의 연구소가 다시 편집하여 새로 발행하였다. 이후의 판본과 번역본은 이것을 따르고 있다.
(<잉여가치학설사>를 정리하여 처음으로 출판한 칼 카우츠키. 하지만 그가 정리한 <잉여가치학설사>는 문제가 많았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맑스-레닌주의 연구소'. 카우츠키가 편집한 <잉여가치학설사>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1952년부터 10여 년을 소요해 다시 편집하여 완전한 판본을 출판하였다.)
<잉여가치학설사>의 구조와 내용
잉여가치학설사의 주요 목차는 아래와 같다. 이 목차는 맑스가 직접 적어놓은 것에 따른 것이다.
(1부) - 7개의 장과 13개의 부록
1장 :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uart) - "양도 이윤"과 부의 적극적인 증가와의 구별
2장 : 중농주의자들
3장 : 애덤 스미스(Adam Smith)
4장 :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에 관한 제 이론
5장 : 네케르(Necker) - 자본주의 하에서의 계급들의 대립을 빈곤과 부 간의 대립으로 묘사하려는 시도
6장 : 케네(Quesnay)의 경제표(보론)
7장 : 렝게(Linguet) - 노동자의 "자유"에 관한 부르주아-자유주의적 견해에 대한 초기의 비판
(2부) - 11개의 장과 6개의 부록
8장 : 로드베르투스(Rodbertus) 새로운 지대론(곁다리)
9장 : 소위 리카도(Ricardo)의 지대법칙 발견의 역사에 관한 의견, 로드베르투스에 관한 보충적 의견
10장 : 리카도와 애덤 스미스의 비용 가격론(논박)
11장 : 리카도의 지대론
12장 : 설명이 붙은 차액지대표
13장 : 리카도의 지대론(끝)
14장 : 애덤 스미스의 지대론
15장 : 리카도의 잉여가치론
16장 : 리카도의 이윤론
17장 : 리카도의 축적론, 그에 대한 비판, 자본의 기본형태로부터의 공황의 도출
18장 : 리카도에 관한 잡기, 존 바톤(John Barton)
(3부) - 6개의 장과 7개의 부록
19장 :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20장 : 리카도 학파의 붕괴
21장 : 경제학자들에 대한 반론 (리카도 이론의 기반하여)
22장 : 램지(Ramsay)
23장 : 세르뷸리에(Cherbuliez)
24장 : 리처드 존즈(Richard Jones)
[영어로 된 목차 및 각 장과 부록의 전체 내용은 https://www.marxists.org/archive/marx/works/1863/theories-surplus-value/ 참고]
1부는 중농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주를 이룬다. 맑스는 중농주의자들이 '잉여가치'에 대해서 가지는 이중성, 그리고 애덤 스미스의 부르주아 경제학이 가지고 있는 속류적인 특징들을 지적하였다. 특히 애덤 스미스에 대한 비판은 그의 이론이 갖는 속류적 개념들이 여전히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도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중에 <자본론> 제1권을 저술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론들과 개념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2부는 고전파 경제학자 중 하나인 데이비드 리카도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핵심이다. 맑스는 리카도에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비판했다. 리카도가 이윤 이론, 가치 이론, 지대론, 공황 문제 등에서 보이는 문제점들에 대해 맑스는 가차없이 대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애덤 스미스의 일부 이론도 함께 살펴보며 리카도 이론의 그릇된 견해와 결함들을 폭로한다.
3부는 기타 저속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맬서스를 비롯하여 몇몇 인지도 없는 경제학자들, 그리고 리카도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언급된다. 이들에 대한 비판을 통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간의 갈등으로 어떻게 부르주아 경제학이 점점 비속화되는 지가 드러난다. 비판 받는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의 부르주아 경제학 이론들을 이용하여 현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들을 뻔뻔하게 변호하려고 하며, 기존의 경제학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이론적으로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맑스는 3부 24장에 이르는 이 방대한 원고를 중농주의로 출발하여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을 거쳐 맬서스를 비롯한 속류 경제학자들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에 이르는 방대한 부르주아 경제학의 역사와 학설을 분석 및 비판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이익이 아닌 부르주아의 이익에만 봉사하고 있는 기존의 이론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잉여가치학설사>는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분석과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발전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사상가인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은 자신의 정치경제학 관련 저술을 집필할 때 <잉여가치학설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소련 공산당 소속의 맑스-레닌주의 연구소도 "속류 정치 경제학에 대한 섬멸적인 비판"이라며 이 책의 의의를 강조했다.
(출판사 '아침'에서 1991년 출판한 <잉여가치학설사1>. 책에 따르면 북한에서 번역하여 출판된 도서를 바탕으로 맑스-레닌주의 연구소 판본의 영어판과 독일어판을 참조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출판사 '이성과 현실'에서 1989년 출판한 <잉여가치학설사2>. 역시 북한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것을 토대로 하였다.)
(출판사 '백의'에서 1989년 출판한 2권짜리 <잉여가치학설사>. 이 책은 북한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도서를 그대로 가져왔다.)
<잉여가치학설사>의 완역을 바란다
<잉여가치학설사>는 한국에서는 아직 많이 생소하다. <자본론>은 인지도도 높고 번역도 여러 번 시행되었지만, <잉여가치학설사>만큼은 한국에서 출판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현재까지 한국에서 <잉여가치학설사>는 총 3개 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으로 기록된다. '아침' 출판사와 '이성과 현실' 출판사가 각각 1권과 2권을 맡아 출판하였으며, '백의' 출판사가 1, 2권을 출판하였다. 이것이 전부다. 번역도 1966년 북한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을 주로 이용했다. (심지어 백의 출판사본은 북한판을 그대로 인쇄하였다!) 게다가 총 3부 중 1, 2부만 출판되었다. 북한판도 러시아어판을 번역한 것이라고 하니, 결론적으로 보면 <잉여가치학설사>는 한국에서 중역된 것조차 불완전하며 원문을 통한 완역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셈이다.
더 심각한 점은 세 출판사가 책을 냈을 때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즈음이었는데 그로부터 3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잉여가치출판사>가 새로 출판되었다는 소식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다만 <자본론>을 번역한 적이 있는 동아대 강신준 교수가 2010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번역에 도전해보겠다고 발언한 것이 유일하다. 현재 위에서 언급한 번역서들은 헌책방이나 중고서점에서 고가로 판매되고 있으며, 역사가 오랜 지역도서관 혹은 대학도서관에서만 그나마 대출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이 <잉여가치학설사>를 접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잉여가치학설사>와 <자본론> 간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잉여가치학설사>는 비록 <자본론>에 삽입되지 못했지만 엄연히 <자본론>을 저술함에 있어서 맑스가 주의 깊게 연구하고 정리한 유고이다. 오죽하면 "자본론 제4권"이라는 별명이 붙었겠는가? 맑스는 소위 부르주아 경제학들의 이론과 이들의 역사를 분석했으며 이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정리함으로써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토대를 닦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잉여가치학설사>는 바로 그 역할의 중심에 서 있는 원고들 중 하나이다. 하루빨리 한국에서도 <잉여가치학설사>가 완역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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